개소리에 대하여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합니다.
그런 날이 있다. 끝까지 헛소리를 들어야 하는 미팅이라거나, 잘못이 있는데 딴 소리를 하는 면담이라거나, 실없는 소리로 채워진 사담자리 등 유익하지도 즐겁지 않고 '이게 뭔 소리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 말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러한 쓰레기 같은 말들은 때로 굉장히 당혹스러워서 당시에는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고, 이후에 되새김질하듯 장면이 생각나 울분을 삭이기도 한다.
아, 제 멋대로 배설하는 말이라 기분 더럽고 따지자니 열 내는 내가 유난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화법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 찾았다, 이것이 '개소리'라는 것을. 유레카!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의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제목과 두께를 가진 통찰력 넘치는 책이다. 저명한 철학자가 사회에 만연한 개소리란 무엇인지, 왜 많은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진지하게 짚어주는데 안 읽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교수님 감사합니다. 오래전부터 알아차렸으나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것, 그런 미묘한 심리를 찾아 언어화해 주는 석학분들 덕분에 저 같은 일반인들은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쾌감을 느낍니다.)
저자는 개소리를 거짓말과 구분하며 정의 내리고 그 위험성을 강조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말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주는 데 반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든 거짓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가 된다.
더군다나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편리하다. 알다시피 완벽한 거짓말을 하려면 꽤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진리인 줄 모른다면 그 반대의 거짓말을 할 수 없고 곧장 들통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소리는 어떠한가,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가 없고 뻔뻔함만 있으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은 거짓임이 들통나면 비난이 쏟아지는데, 개소리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칠 뿐이다. 개소리에 대해서 정색하고 달려들면 웃자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역공을 받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개소리가 실패에 대해 자유롭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더 이상 진리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 간다. 오히려 희석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은 이런 개소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거짓말쟁이에게 대응하듯 팩트를 가지고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폭로하려 하나, 개소리쟁이들은 거짓말로 들통나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왜? 개소리는 애초에 진위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해제 발췌)
읽다 보면 여기저기 기시감이 드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작게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상황에서라든가, 현실세계와 단절된 디지털 공간에서 편향적인 동질집단 속 확신으로 바뀐 개소리가 점점 퍼져나가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던가, 국가적으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참인지 거짓인지 관심 없는 발언들, 그리고 그 지지자들도 진리값이 중요하지 않아 진 지 오래된 것 같다. 여러 인물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이렇게 개소리가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가로막고 공동체를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개소리가 많은 날.
나도 함께 개소리를 뱉어내고 싶은 마음을 눌러낸다. 그 개소리에 대응 말고 나는 내 논리와 프레임대로 갈 길을 가는 게 최선의 방어이자, 공격이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아님 말고'가 아니라 '진리'를 찾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하는 당연한 자세가 뿌리내리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