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VE] 자동차를 팝니다 #3-이 차는 얼마예요

이 차는 얼마예요

by 김아침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살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상품은 망라하고 "이거 얼마예요?"가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를 구매할 때, 가격을 고려하지 않는 소비자는 없고, 제조사 또한 가격을 설정함에 있어 깊은 고민에 빠진다.

가격은 신차 개발을 시작하면서부터 고려되기 시작하여 출시 직전까지 유관 부서 간 치열한 논쟁과 미세조정을 통해 완결된다. 부문 간 의견 차이와 이해 충돌이 반복되는 가격 주요 결정 고려 요소를 간단히 살펴보자.

1. 라인업 내 인접차종과 카니발라이제이션을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브랜드 내 라인업을, 제원 기준으로는 작은 차급부터 큰 차급, 파워트레인 기준으로는 내연기관부터 하이브리드, 전기차, 그리고 세단과 SUV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차량 역할들이 겹치지 않도록 세밀하게 운영하고 있다. 만약 차종간 역할과 콘셉트가 겹친다면 한 브랜드 안에서 제 살 깎아먹기를 하는 것이니, 이보다 비효율적일 수 없다. 가격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잠식이 되지 않으려면 각 차종별로 '담당'하는 가격대가 명확해야 한다.

2. 타사 경쟁차종을 설정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어떤 차를 출시하든 시장 내에 경쟁자가 존재한다. 경쟁차는 기본적으로 유사 수준 브랜드의 비슷한 차급 차종으로 설정되는데, 경쟁차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가격 포지셔닝도 크게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경쟁차종에 대한 부문 의견도 다양하게 된다. 최소 3-4개 경쟁차종을 후보에 두고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출시 시점까지 지속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3. 신차 콘셉트를 유지하되 시장의 수용도와 경쟁차종과의 사양을 비교해야 한다.
경쟁차종을 설정했다면, 해당 차종과 신차의 사양을 비교하며 가격 포지셔닝을 정교화한다. 신차는 승차감을 위해 서스펜션을 기본으로 장착하나 경쟁차는 옵션으로만 운영하는 경우 등 사양을 하나씩 비교하면서 같은 가격이라도, 또는 조금 높은 가격이라도 우위에 있을 수 있도록 조정한다.
이 과정 속에서 각종 신사양으로 신차 가격이 지속 상승하게 되는 경우, 사양을 덜어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신차의 콘셉트를 대표하는 사양들은 유지하고, 어떤 사양을 선별해 소거할지 디자인/연구소/영업/기획/재경 등 각 부문별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기도 한다.

4. 무엇보다 해당 신차의 손익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결국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제품을 만든다. 신차의 예상 판매량(=달성해야 할 판매량)을 기점으로 하여 대당 손익이 일정 수준을 상회해야 한다. 이 손익을 달성하기 위해 Q(물량)을 조정하기도, P(가격)을 조정하기도 하는데 Q는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몫이 될 수 있으니, 통제 가능한 P 안에서 최대한 마진을 남길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진행한다. 손익이 나지 않으면 그 어떤 결재선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전 부문의 뼈를 깎는 노력이 단계별로 이어진다.

5. 타깃 고객들의 가격 민감도를 고려해야 한다.
가격포지셔닝을 할 때 가망 소비자군이 갖는 가격 민감도를 고려하기도 한다. 소비자 조사를 통해 타깃 소비자들이 수용하는 가격대를 기준으로 가격이 높거나 낮아질 때 이탈하는 정량적 분석을 통해 운신(運身)의 폭을 파악한다.
가격이 오를 때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구매가 단절되는 성향의 그룹이 있는 반면 가격을 올려도 판매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성향의 그룹이 있는데 우리의 소비자가 어떤 그룹에 속해있는지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가격 민감도의 평균선과 가깝거나 먼 그룹들이 갖는 특성들을 데이터로 추론하며 가설을 세우는 과정도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가령 가격에 둔감하여(즉 수요의 탄력성이 낮아) 가격을 높여도 이탈이 거의 없어 평균선에서 멀리 떨어진 그룹은 실제로 응답상 보유 차종이 초럭셔리 브랜드이거나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한 지불용의가 굉장히 높은 특수 그룹으로 추정된다.

가격 민감도 곡선을 분석하며 야근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평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이 분석 모델에 따르면 그 요소가 나를 어떠한 그룹으로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게 나의 특성이고 정체성일 텐데, 3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바로 찾아내 정의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는 생각날 때마다 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
우선 확실한 건, 나는 누구보다 매일 퇴근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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