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생각을 씁니다 #5 - 현재를 살아

현재를 살아

by 김아침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합니다.




해 질 녘 하늘이 여느 때와 달리 달콤한 주홍빛이다. 한 명, 두 명, 세 명,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다 멈춰 핸드폰에 담는다. 예쁜 장면을 보고, 시간을 멈추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바쁜 와중에 잠깐이라도 여유를 내어 그 순간을 온전히 품는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 심지어 나이와 상관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종종 동서양을 떠나, 먼 과거와 현재 떠나, 모든 석학과 어른들이 전하는 동일한 깨달음들을 발견한다. 공간과 시간에 무관하게 추구해야 하는 진리를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동일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러한 진리는 당시에는 와닿지 않다가 가끔 시차를 두고 진실로 깨닫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중에 하나가 "현재를 살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사실 현재를 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금은 힘들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버티라고 말하고, 더욱 노오력을 하라고 다그친다. 한병철 교수의 저서인 피로사회의 유명한 첫 구절을 생각해 보자.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과거 규율사회에서 현재 성과사회로 구조적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나타난 병폐가 있다. 성과사회의 긍정성 과잉은 현대인들을 타자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하게끔 한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저 높은 곳 누군가는 이러한 우리를 흡족히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이 시대의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고 말하였다.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 오늘의 나를 신경 써주지 못한다. 매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침대에 널브러질 뿐이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 몸과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작은 자극에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오늘따라 아주 남탓을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현들은 "현재를 살라"는 조언을 따듯히 건넨다.

내일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아 오늘을 수단으로 희생한다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내일은 언젠가 오늘이 되고 마니까.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양보하지 않는 삶을 생각하라 한다.

싯다르타는 '제행무상'을 통해 무상에 직면하고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며칠 뒤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오늘 하루'의 완전하고 충만한 아름다움에 몸을 맡기라고 설파하였다. 나의 오늘, 나의 삶, 나의 하루가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하고 기적 같은 순간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벤야민은 현재의 모든 순간은 메시아가 들어오는 작은 문이라고 하였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면, 진리에 목마른 파우스트가 탐내는 것 역시 영원한 현재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시간을 잃어버린 늙은 파우스트를 유혹할 때 제안하는 것도 '생생하고 충만한 현재'를 선물하겠다는 것을 보라.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니체의 주장이다. 무상의 철학자이자 사고실험의 철학자, 니체. 서양의 직선적 시간관을 무너뜨리기 위해 신을 죽인 기백의 철학자. 그는 과거와 미래는 현재 이 순간에 의해 결정되며, 우리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 밖에 없다며 동일한 삶이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회귀'라는 사고 실험을 우리에게 던진다. 동일한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실이 저주가 되느냐 축복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나와 당신이 흘려보내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는 이 삶을 최고로 긍정하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순간을, 현재를 나는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는가.

나도 현재를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
너무 무겁게 살지 않겠다. 너무 비장하게 임해 내 일상이 경직되고 위축되게 만들지 않겠다.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고 가볍고 무던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 삶의 무게에 눌려 소중한 순간을 지나쳐버리지 않겠다.

다시 한번 해 질 녘 주홍빛으로 물든 구름을 한참 쳐다봤다.
그 순간을 품기 위해 멈춰 섰던 행인들, 아니 오늘의 철학자들처럼
온전히 나의 마음이 저 불그스름한 하늘을 가득 품고 그 순간을 살았다.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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