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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Jan 08. 2017

큰 비행기가 돈을 더 잘 벌까?

비행기 크기의 전략

**글이 좀 깁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가장 큰 비행기', '점보기'라는 표현을 꽤 자주 접하게 된다. 흔히 '점보기'라고 부르는 비행기는 400~500명의 승객들과 그들의 짐, 수십톤의 연료를 싣고 하늘에 뜨는 기이한 존재인데, 비행기를 전공하는 입장에서도 항상 신기하게 느껴지는 물건이다.

  아무리 싸져도 몇 십만~백만원 대의 단위를 생각해야 하는 항공권 가격을 떠올려보면, 한 번에 수백명의 승객을 싣고 떠오르는 비행기는 돈을 꽤 잘 벌겠다 싶다. 항공사 입장에서도 한 번 비행기를 띄울 때 많은 수의 승객을 태우는 것이 이득일테니, 그럼 비행기는 클 수록 좋은 것일까?


  비행기의 크기와 항공사의 전략에 대한 재미 쏠쏠한 이야기를 해보자!




비행기 크기와 마케팅 전략

보잉과 에어버스 이야기


  여객기 제작 분야의 양대산맥인 보잉(Boeing)과 에어버스(Airbus)의 공장에서 오늘의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미래 여객기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이 두 회사는 2007년과 2008년, 비슷한 시기에 각각 '기존의 기록을 깨는' 신기종을 야심차게 발표한다. 보통 제조 회사 간 경쟁이라 함은 비슷한 두 제품이 등장, 서로의 미세한 성능 우열을 가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시기 두 회사가 내놓은 비행기는 비슷하기는 커녕 그 개념부터 판이했는데...


  즉, 비행기의 성능 경쟁이 아닌 마케팅 전략 경쟁이었던 셈이다.


Ultra BIG vs Ultra LIGHT

A380 vs B787


에어버스의 자신감, A380

  2007년, 유럽 연합의 에어버스가 내세운 카드는 여객기 규모의 역사를 새로 쓴 초대형 여객기 A380 이었다. 무게, 바퀴 수, 탑승 승객 수 등 다양한 수치들에서 신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국제 표준 항공기 분류에 A380만을 위한 새로운 카테고리가 추가될 정도였으니 기존의 틀을 깨기는 제대로 깼다. 거기에 기존의 항공기보다 월등한 친환경적 특성(승객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승객당 연료 소모량, 소음 발생도 등)까지 보이며 크기만 큰 괴물스러운 이미지 대신, 친환경적인 이미지까지 겸비할 수 있었다.

  자세한 공학적 성능지표를 떠나, 처음으로 보는 전체 2층 비행기는 그 모습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대형 항공사들은 '하늘의 호텔'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앞다투어 항공기를 주문했다. 그 간 보잉747이 차지했던 '가장 큰 여객기'라는 타이틀을 A380이 거머쥐면서 에어버스는 여객기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하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공돌이의 노트 #1
보잉747의 '하늘의 여왕' 애칭에 뒤이어 A380은 '하늘의 왕'이 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지만 우아하게 통통한 이미지 덕에 결국 '하늘의 고래'라는 애칭을 얻고 말았다는 후문.


유려한 곡선형 날개가 특징인 B787


  한편, 보잉은 2008년 'Dream Liner'라는 애칭의 B787기를 하늘에 띄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787은 신기종임에도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점보기 축에 끼기는 커녕, 1980년에 첫비행한 767과 체급이 비슷했다. 대신 보잉이 내세운 슬로건은 "Ultra high efficiency", 초고효율성이었는데, 실제로 787은 이제껏 어떤 비행기보다도 가볍고 공기역학적으로 효율이 좋았다. 쉽게 말하자면 이는 동급 항공기와 비교할 때 같은 거리를 날아도 연료를 훨씬 적게 쓴다는 의미이며 이는 같은 양의 연료를 싣고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의미와도 동치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보잉은 탄소섬유, 시스템 전자화, 곡선형 날개, 새로운 엔진 등 사용 가능한 최신 기술을 모두 787에 적용시켰고 (정말 웬만한 신기술은 다 사용한 것 같다) 디자인 측면으로도 신경을 써서 마치 미래의 비행기를 보는 아스트랄한 느낌을 주는 데 성공했다. 


-공돌이의 노트 #2
첨단 기술을 집약시킨 탓에 가격도 아스트랄했는데, 동일 부피의 금보다 비싸다.


Heo Jiyoung님께서 정정해주셨습니다!
  "787이 같은 부피의 금보다 비쌀정도로 고가라는 언급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787-9의 경우 기체중량이 129톤, 가격이 265m 달러(한화 3200억)입니다.부피가 아닌 무게로 계산해도, 129톤의 골드바는 최소 5조 8천억원 이상입니다. 부피로 계산하면 차이는 훨씬 크겠죠."




  하나는 거대한 비행기, 하나는 작고 효율 좋은 비행기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거대함'과 '고효율'이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지 아직은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보기에도 너무 다른데, 비교가 가능하기는 한걸까?


  특징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위키피디아를 켜고 이 둘을 자세히 비교해보자.

  열심히 숫자들을 비교하다 보면 재밌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동일한 목적

상이한 전략


  항공기가 크면 일단 연료를 많이 실을 수 있기 때문에 비행거리는 항공기의 체급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대륙 간 장거리 국제선에 작은 비행기가 배정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효율과는 관계없이 일단 멀리 못 나니까.. (하이라이트 처리된 이유는 나중에!)



  당연하게도, 거대한 380은 체급에 걸맞게 대부분의 국제공항은 직항으로 연결할 수 있는 수준의 장거리 항공기다. 단, 380은 멀리 나는 편에 속하긴 해도 '체급에 비해' 멀리 나는 비행기는 아니었다. 많은 물자를 싣도록 설계된 탓에 부피가 커 절대적으로 공기저항이 클 수밖에 없고 무게도 상당하기 때문. 결과적으로 하늘의 고래 A380은 550명의 승객을 태우고 약 15000km 정도를 비행하는 장거리 초대형 항공기로 요약할 수 있다.


  재밌는 건 787이다. B787은 A380보다 훨씬 작은 체급으로 최대 실을 수 있는 연료의 양은 380의 40%에 불과하다. 그런데 비행거리는 무려 14000km로 A380보다 1000km 적을 뿐, 거의 비슷하다. 787과 같은 체급의 기존 항공기들이 10000km 내외를 날아다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787은 기존 항공기들에 비해 40% 정도 더 멀리 날면서 체급 족보를 무시하는 반항아였다. 초고효율성을 추구한 보잉의 노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듯 380보다 절반 정도 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크기였지만 380의 40% 정도의 연료로 비슷한 거리를 날 수 있는 787은 장거리 중형 항공기로 표현할 수 있겠다. 


787의 유려한 날개는 고효율의 상징이다. 787이 이 경쟁의 승자일까?


  자, 넘쳐나는 숫자들에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재밌는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통점을 우선 보자.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둘의 공통점은 비행거리다. 14000~15000km 거리를 한 번에 비행할 수 있고 이 수치는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공항을 직항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성능이다. 즉, 둘 다 항공사의 항로 선택에 제약이 거의 없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제 몇 가지 다른 수치들을 종합해 생각해 조금만 더 자세히 비교해보자. 위에 이런 말을 적었다. "787은 380보다 절반 정도 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크기였지만 380의 40% 정도의 연료로 비슷한 거리를 날 수 있다." 절반의 승객을 40% 연료로, 1000km 적은 비행거리를 비행한다는 것은 결국 승객 당 소비되는 연료량은 비슷하다는 뜻이다. 


-공돌이의 노트 #3
  사실 787이 '단위거리당' 승객당 연료 소모량에서 약 20% 우세하긴 하지만 380이 1000km를 더 멀리 비행함으로써 그 차이는 10% 정도로 좁혀진다. 즉, 다소 억지스럽게 '최대 거리 비행당' 승객당 연료 소모량을 비교하면 787이 10% 정도 적다. 그렇지만.. 글의 흐름을 위해, 비슷하다 하고 진행해본다! 뭐. 뭘 봐.


380의 두꺼운 날개와 거대한 엔진의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거대한 규모는 승리를 안겨줄까?


  승객 당 연료비는 곧 승객 한명을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과 비슷한 말로, 비행기의 경제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승객 당 운송비라는 측면에서, 두 비행기의 효율은 거의 동일하므로 간단히 얘기하자면, 두 비행기는 비슷한 경제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380은 연료를 많이 쓰지만 많은 승객을 태움으로써, 787은 승객을 적게 태우는 대신 연료를 아끼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비슷한 경제성을 달성한 것이다.


이제 상황이 단순해졌다. 380과 787은 승객 한 명을 비슷한 돈으로 비슷한 거리만큼 날릴 수 있는 비행기이다. 둘의 차이는 단 하나. 한 번에 운송할 수 있는 승객 수, 혹은

비행기의 크기.




  어차피 승객 당 비슷한 비용으로 비슷한 거리를 날릴 수 있는 것이면, 380처럼 한 번에 더 많이 옮길 수 있는게 더 나은 것 아닐까? 아니다, 그래도 787이 조금은 승객 당 비용이 저렴하니 이게 더 나은 것일까? 자, 이제 공장에서 떠나, 직접 비행기를 운용하는 항공사에 가서 물어보자.


"큰 거 살래요, 작은 거 살래요? 둘 다 비슷한데."


항로를 결정하는 두 가지 전략

Hub to Hub & Point to Point


  특정 수요에 공급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곧 그 회사의 경쟁력이다. 항공사에게 하늘길은 곧 상품이요, 승객은 시장이므로 항공사 입장에서는 승객들이 원하는 항로를 저렴하게 비행할 수 있는가가 주관심사라 할 수 있다.



  항공사들이 노선을 어떻게 결정하는 지 우선 알아보자. 어떤 노선을 원하는 지 알아야 어떤 비행기를 살 지 알 수 있을테니.


노선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 '가능성'


공급 '가능성'? 공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맞다.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람들마다 제각각 가고 싶은 곳은 다양하다. 인천에서 LA을 가고 싶은 사람도 있고, 한국 내에서 김포에서 제주를 가고 싶은 사람도 있다. 조금 특이하게 김해 공항에서 양양 공항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고, 대구에서 독일 뮌헨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천에서 LA, 김포에서 제주는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즉 수요가 매우 많은 노선. 김해에서 양양이나 대구에서 뮌헨은 수요가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인천-LA 노선이나 김포-제주 노선은 운항이 시작되었고 현재 가장 붐비는 노선들 중 하나가 되었다.


-공돌이의 노트 #4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노선은 한국에 있다. 바로 김포-제주 노선!


  그럼 김해에서 양양을 가고 싶은 사람이나, 대구에서 뮌헨을 가고 싶은 사람은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것일까? 놀랍게도 김해-양양 구간 노선은 존재한다. 코리아 익스프레스 항공사에 하루 한 번 왕복하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니, 찾아본 나도 좀 놀랐다. 하지만, 대구-뮌헨은? 대구에 사는 친구가 뮌헨을 가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수요는 존재하지만 노선은 없는 듯 하다. 어쩔 수 없이 대구에서 뮌헨을 가기 위해서는 대구-인천-프랑크푸르트-뮌헨 순으로 가야 한다.


  위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항로는 수요와, 비행 거리로 분류가 가능하다.


1. 다수요 & 단거리 - 김포-제주

2. 다수요 & 장거리 - 인천-LA

3. 저수요 & 단거리 - 김해-양양

4. 저수요 & 장거리 - 대구-뮌헨


저수요 단거리 노선을 공략하는 대표적 저가항공사, easyjet. 교환 생활 중 참 많이 탔다.


  1번은 큰 비행기든 작은 비행기든 다 날아다닐 수 있는 구간이다. 수요가 많기 때문에 되는대로 많은 비행기를 투입하게 된다. 반면, 2번은 다수요 장거리 노선으로 대형 항공기의 전문분야이며 주요 공항 간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Hub to hub 라 부른다. 많은 수요를 감당하면서도 장거리를 날아갈 수 있는 대형 항공기가 사용되고 A380은 이 분야에 해당되시겠다.

  3번 노선은 수요가 적게나마 존재하는 구간으로, 주로 저가항공사들이 노리는 노선이다. 이용료가 저렴하고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소형 공항을 다니기 때문에 point to point 혹은 hub to point라고 표현한다. 빈 좌석이 생기면 항공사 입장에서 손해이기에 좌석 수가 적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날아가는 소형 항공기들이 이 노선에 투입된다.


  문제는 4번 노선이다. 대구에서 뮌헨을 가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왜 대구-뮌헨 노선은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불가능'하기 때문. 거리가 멀기에 큰 비행기를 띄워야 하는데 수요가 적어 큰 비행기를 배정하자니 빈 좌석이 많아지고 결국 표가 너무 비싸지거나 항공사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작은 비행기를 띄우자니, 거리가 멀어 애초에 갈 수 조차 없다. 이에 장거리(long haul) point to point 노선은 전세기나 전용기와 같은 특수한 비행편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다.


1. 다수요 & 단거리 - hub to hub - 대형 & 소형

2. 다수요 & 장거리 - hub to hub - 대형

3. 저수요 & 단거리 - 단거리(short haul) point to point - 소형

4. 저수요 & 장거리 - 장거리(long haul) point to point - 불가능


  이처럼 항공 시장에는 수요는 있어도,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 구간이 존재한다.


hub and spoke 가 보인다. 밝은 곳이 hub 공항, 거기서 뻗어나가는 선들이 point to point 노선.


그림의 떡인 장거리 point to point

과포화된 장거리 hub to hub


  3번과 4번은 둘 다 point to point 노선이지만, 4번은 장거리 노선이라는 이유로 직항편 공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구-인천-프랑크푸르트-뮌헨 을 이동하는 것처럼 point 에서 hub로 이동한 후 hub to hub  이동을 하고, 다시 hub to point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허브에서 가시처럼 다시 뻗어나가는 모양이라 해서 hub and spoke model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hub and spoke model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여행시 인천 공항을 이용하지만 대부분 인천 근처에 사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hub 공항 이용 승객들은 hub 근처에 살지 않는다. 즉, 항공사에서 서비스할 수 없는 장거리 point to point 수요가 모두 hub로 몰리게 되고 장거리 hub to hub 노선은 과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항공 운송 수요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마당에, hub to hub 노선은 이미 그 수용 한계치에 이른 구간이 많으니, 미래 항공 수요를 감당할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


  덜 붐비는 point 공항들을 이용하는 단거리 노선들은 문제가 덜하지만, 장거리 노선들이 문제다. 그림의 떡인 장거리 point to point 노선의 부재로, 장거리 hub to hub 구간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는 것. 밀도가 너무 높아지면 비행기가 있어도 띄우지를 못하니 공급에 제한이 생기게 된다. 


착륙하는 787


point to point를 가능하게? 

hub to hub를 더 효율적으로?


  길이 너무 막히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길을 내어 그 길로 차들을 우회시키는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길을 넓히는 것이다. 장거리 노선의 과포화 문제도 비슷하다.


  미어터지는 hub to hub 노선은 막히는 길과 같으니 위의 해결책을 적용시켜보자. 첫 방법은 과포화된 hub to hub 노선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선을 신설하는 방법으로 이는 곧 불가능했던 장거리 point to point 노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방법은 hub to hub 노선의 수용력을 높이는 것으로, 비행기의 대당 운송 능력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비행 거리와 경제성이 비슷했던 380과 787의 차이는 크기 뿐이었다. 자, 이제 무엇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는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다시 비행기 얘기로 돌아와보자.


**결론!!

결국엔 장거리 노선 시장 경쟁!

비행기 크기의 전략


  위에서 알아봤듯이 장거리 point to point를 비행하려면 크기는 작지만, 멀리 날 수 있는 비행기가 필요했다. 자, 이제 보잉의 노림수가 보이는가! 보잉은 계륵과 같았던 장거리 point to point 시장을 개척해 포화된 hub to hub 노선을 피하는 전략을 택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항공 노선계 블루오션을 경쟁의 각축장으로 끌고옴으로써 폭발적인 수요를 기대했고, 그 야심을 이루어줄 B787을 내놓은 것이다. 


  반면 에어버스는 노선 개척보다는 hub to hub 노선 내에서의 해결책을 모색했고 대형기가 날아다니는 hub to hub의 수용력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한 번에 많이 실어나르는 것을 의미했는데 노선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비행기의 '대수'에는 한계가 있으니, 대당 더 많은 사람과 물자를 싣는다면, 노선의 수용력이 증가되는 원리다. 이에 에어버스는 '슈퍼 점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550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으면서 연비도 훌륭한 초대형 여객기 A380을 개발해냈다.


Hub 공항 터미널을 가득메운 A380. Emirates는 380기 57대를 한 번에 구매했다. 부자들...

  재미있게도, 787과 380은 컨셉부터 다른 비행기지만, 같은 장거리 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상대가 되었다. 787이 새로운 노선들로 기존에 붐비던 hub to hub 노선의 수요를 옮겨버린다면, 380의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반면 장거리 point to point 노선이 반응이 별로 좋지 못하다면, 늘어나는 항공 수요는 hub 노선에 집중될 것이고 결국 380은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다. 

  실제로 B787은 메이저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 모두에게 주문을 받았다. 'Long haul Budget Airline'(장거리 저가항공)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노선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고 380이 다닐 수 없는 작은 공항들까지 취항하며 그 영향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A380은 Emirates와 같은 메이저 항공사들에 대량으로 항공기를 인도했고 hub to hub 노선에서 맹활약중이다. 서로가 서로의 시장을 뺏어오는 땅따먹기와 같은 경쟁을 하니, 팝콘감!


-공돌이의 노트 #5
  그런 와중에 상대 회사의 전략도 눈치가 보였는지, 보잉은 A380에 대항하는, 에어버스는 B787에 대항할 기종을 순차적으로 개발했다. 보잉은 기존의 747기에 787에 사용된 기술들을 대거 접목시키고 크기를 키워 B747-8 이라는 신기종을 내놓았고, 에어버스는 787보다 조금 더 크되 초고효율성을 지향한 A350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대형 항공기 분야에서는 380이 앞서고 있고, 초고효율 분야에서는 787이 앞서니 각자 사이좋게 '원조' 분야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380에 대항하는 747-8i. 380보다 조금 작다.
787에 대항하는 A350. 787보다 조금 덜 잘생겼다.




  지금까지 항공기의 크기 뒤에 깔려있던 치열한 전략에 대해 다뤄보았다. 비행기 크기 뒤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경제논리와 함께 전략적인 선택이 숨어있는 것이 재미있게 다가왔길 바라며, 긴 글을 마무리한다.


굳나잇.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com/2014/04/03/euro-air-traffic-time-lapse-video_n_5085610.html
https://vishal1mehra.com/2014/02/05/a380-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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