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저녁이었다. 7시 반부터 9시까지는 영어 강의를 듣고, 9시부터 출판사 줌 미팅이 있었다. 다 끝나고 나니 아차, 오늘 브런치 글 올리는 날인 것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요리한 것을 모아서 브런치 북으로 묶으려고 저번 주에 "화요일 연재"로 만들어놨는데 첫날부터 빵꾸를 낼 순 없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까, 바깥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쓰레기봉투도 마침 다 찼겠다, 책 배송 된 상자들도 같이 들고 우산도 들고나갔다. 차 소리가 싫어서 저녁 내내 창문을 닫고 선풍기도 안 켜고 있었더니 너무 더웠나 보다. 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쓰레기봉투 하나 처리! 상자도 시원하게 보내고 빗소리를 들으면서 걷다가 어떻게 문장을 시작할지 생각났다.
밥이 너무 하기 싫다.
요즘 정말 밥하는 게 너무 싫고, 밥시간이 오는 게 싫다. 그걸 썼다. 그랬더니 왜 싫은지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이은경 작가가 역시 글쓰기 신인가 보다. 정한 건 아니지만 아침 30분 쓰기처럼 해보자 하며 혼자 마음속으로 30분을 생각했다. 그랬더니 아침처럼 글이 마구 써졌다. 이은경 작가님을 뵙게 되면 꼭 "덕분입니다" 해야지. ㅋㅋㅋㅋㅋ
아래 글은 브런치 글을 막 써 내려가다가 오늘 이야기도 나왔다. 이것도 같이 발행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글의 주제와 맞지 않아서 뺐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오늘 해야 속 시원할 것 같아서, 오로지 나를 위해 여기로 가져왔다. 밥이 싫어 죽겠는데 오늘도 밥을 했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호박전, 곤드레 나물 무침, 치즈 돈까스! 장하다 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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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서 그리워서 미국에서 집밥>
1화 "출발할 땐 몰랐다"에 못다 한 이야기
하지만 오늘도 밥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비닐봉지에 부침가루 부어 넣고 턱턱 썬 호박을 넣었다. 뱅뱅 돌려 입구를 막고 마구 흔들었다. 이러면 밥하는 게 재밌어질까 하면서 한 번 더 흔들었다. 좀 스트레스가 풀린다.
계란 4개를 팍! 깨서 톡 떨어트린다. 오 노른자가 안 깨지네? 4번 계란인데 싱싱하네. 미국은 온통 오가닉이라 오가닉 아니라고 쓰인 게 있으면 찾고 싶을 정도인데, 오늘 이 4번들은 오가닉보다 더 싱싱했다. 운수 좋은 날!
휙휙 촬촬촬 맘껏 저었다. 이렇게 그릇과 숟가락이 닫는 소리가 크게 나게 저으면 미국 할머니는 "너 화났니?" 하셨을 텐데 내 집이니 내 맘대로 더 크게 촬촬촬! 하얀 가루 입은 얇고 둥근 호박을 노란 계란 물에 담그고 요즘 완전히 빠져버린 들기름을 붓고 부쳤다. 고소한 냄새가 머리를 쨍 울린다.
오늘 학교에서 호박전 그림을 보고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해주네? 와~!!!
큰 애가 유난히 오늘 호박전을 기대했다. 내가 좋아해서 자주 부쳐먹던 호박전을 애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호박전 하나를 입에 쏙 넣더니 "음~~~~~ 너무 맛있어~~~" 한다. 마치 스테이크를 한 입 크게 베어 문 표정과 똑같았다.
애호박 하나로 쌓아 올린 호박전을 거의 다 먹었다. 갑자기 매우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나보고 계속 밥을 하라고 맛있게 먹는 건 아닐 텐데 밥이 조금 하고 싶어진다. 안돼, 그럴 순 없어, 밥 안 하고 싶다고!!!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자꾸 눈앞에 그려진다.
내일부터는 조금 더 신나게 해 볼까? 아무래도 오늘 호박 넣고 흔들기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일도 호박을 흔들어대면 애들이 뾰로통하겠지. 하아... 고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