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밥 하다 질려버릴 줄은
귀국 후 두 달이 지난 시점. 밥이 너무 하기 싫다. 냄비밥 안 해도 되고 아들이 용돈, 세뱃돈 모아 2년 전에 사준 쿠쿠 밥솥이 누룽지까지 만들어주는데도 싫다. 밥상도 싫고, 가스레인지도 싫다. 장을 봐도 이상하게 냉장고는 계속 비고, 그래서 장 보는 재미도 없다.
아침밥은 미국에서 먹던 대로 빵 굽고, 달걀 후라이 하고, 딸기잼, 땅콩잼 꺼내고, 야채 좀 꺼내고 그러면 되는데 아침이 오는 게 싫다.
점심은 보통 나 혼자 먹는데 아주 간단하게 라면이 딱 좋다. 준비 시간도 적게 걸리고, 먹는 시간도 적게, 냄비 하나 휘휘 물에 헹궈서 식세기로 툭 내려놓으면 끝나니까!
대망의 저녁. 요즘 한창 크기 시작한 아이들은 "엄마 오늘 메뉴는 뭐야?" 하고, "뭐 먹고 싶어?" 하면 둘이 다른 메뉴를 당차게 말하니 이제 내가 딱 정해서 말한다. "고등어 구워줄게."
미국 가기 전에도 내가 해 먹는 음식이 좋았다. 바깥 음식 맛이 너무 짜거나 달거나 매워서 요리를 했다. 이상하게 대충 해도 맛있었다. 계량 따윈 없고 짜면 물 더 넣고 싱거우면 소금, 간장 넣는 방법으로 하는데 희한하게 맛있다. 처음 도전하는 것도 인터넷 레시피 쓱 한 번 훑어보고 휘휘 양념 내 맘대로 넣으면 맛있다. 손과 미각이 아주 천재인가 보다.
한국에서도 점점 물가가 올라서 장보기가 두려웠었는데 미국에 가니 정말이지 후들후들했다. 그나마 아시안 마켓인 H마트에 가면 야채가 미국 마트보다 쌌다. 쪽파 한 묶음, 마치 파스타 계량할 때 엄지와 검지로 한 묶음 계량하듯 묶인 쪽파. 볼 때마다 파스타가 생각났다. 세일하면 한 묶음에 25센트에 살 수 있었고 그런 날은 4묶음 집어왔다. 파전을 신나게 부쳐먹을 수 있는 날이다.
남편 월급에서 3천 달러 월세로 나가고 나머지 돈으로 아끼고 아껴 살아야 했다. 그런데 환율도 도와주지 않았다. 1450원을 넘기기 일쑤였고 소비는 사치였다. 외식은 남의 나라 이야기. 여행자 보험을 들고 갔지만 얼전 케어(Urgent Care)에 가도 진료 기다리다 지쳐 죽는다고 하고, 청구서 보면 기가 찬다고들 했다. 환급받을 수 있다 해도 일단 아프면 몸 고생, 마음고생, 돈 고생! 그러니 아프지 말아야 했다. 특히 중이염 달고 살았던 둘째 귀가 아프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밥을 했다.
캘리포니아라고 해도 가을부터 으슬으슬 너무 추웠다. 나무집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가 거세질수록 가스레인지 불은 하나씩 더 켜졌고 겨울엔 가스레인지 4구에 오븐까지 돌렸다. 밥솥 비싸서 냄비밥을 했고, 없는 재료 대신 비슷한 것 구해다가 비슷한 우리 음식 맛을 냈다. 반찬가게에서 김밥 한 줄에 10달러, 작디작은 족발 10달러, 김치 한 병에 20달러. 가격을 보면 두 번 망설임 없이 재료를 살 수밖에 없다. 그냥 내가 좀 애쓰지 뭐. 그게 돈을 버는 거지 뭐. 내 마음을 달래 가며 온갖 것을 만들고 밥을 하다 왔더니 이제는 밥이 정말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