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s 한국
뽜아아아아앙!!!!!!!! 패서디나 델마르 길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 트럼펫 1000개를 한꺼번에, 그것도 아주아주 세게 부는 소리 같은 소리를. 밤낮없이 아무 때나 온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며 출동한다. 번쩍번쩍 광나는 미국 소방차는 한 대 갖고 싶을 정도로 멋있었는데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죠."의 노력이 무엇인가 보인다. 소방서 앞에 세워진 소방차를 닦고 정리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소방차 소리를 들었을 때 무슨 천재 지변이 났나 깜짝 놀랐고, 두 번째 들었을 때도 화들짝 놀랐고, 일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우리 집은 소방서에서 세 블럭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출발할 때는 애애앵 소리 정도 내다가 우리 집 근처에 오면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두 블럭 더 올라가면 레이크 길이었다. 거기엔 트레이더 조스도 있고, 메이시스 백화점도 있고, 요거랜드 아이스크림, 던킨 도넛, 월그린스, 시티 뱅크, 왜 줄서서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샐러드 가게, 남들은 내가 그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나의 소울 푸드 팬더 익스프레스, 레고가게, 스시, 카페, 스무디 한 잔에 20달러 하는 에레혼, 에르혼 이름도 헷갈리는 LA 스타들이 좋아해서 유명해졌다는 유기농 중 유기농, 일반 마트 가격 서너배하는 마트까지 우리동네를 대표하는 길이었다.
소방차는 얌전하다가 앞에 차가 보이기 시작하면 울리기 시작한다. 트럼펫 100개 정도는 우습다. 잘 불어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처음 배우는 사람이 그냥 냅다 불어재끼는 소리라 참 난감하다. 이래도 안 비키는 용감한 차가 있다. 벌금도 무섭지 않거나 허둥지둥하다가 못 섰겠지. 미국 운전면허 시험에서 잊지 말하야 할 차 세 대가 있었으니, 소방차, 앰뷸런스, 스쿨버스 삼총사다. 얕봤다간 충격적인 벌금과 함께 어디 법원에 출석하라는 등의 편지가 온다고 했다. 천불나게 천 달러 가까운 벌금에 법원이라니. 애초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소방차에게 용감하게 맞서는 차는 벌금이고 뭐고 일단 소방차에게 한 번 크게 된통 혼난다. 트펌펫 100개 불던 소방차는 갑자기 1000개 소리를 내며 그 차를 뒤에서 확 밀어버릴 듯 바짝 가까이 붙는다. 어서 소방차가 가는 길을 터줘야 한다. 옆에 차가 혼나도 자기 갈 길 가겠다고 용감하게 계속 소방차 앞에서 운전하는 용자는 청력 검사를 권하고 싶다. 그 소리 듣고도 괜찮다면 귀에 큰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길 걷다 이런 상황을 벌어지면 귀를 아무리 두 손으로 막아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강렬하고 찌릿찌릿한 소리가 울린다.
내 귀만 뚫는 것이 아니라 전화기 너머 한국까지도 전해지던 소리다. 친정 엄마랑 보이스톡을 하며 걷고 있었는데 소방차가 저 앞에서 쌍라이트를 깜빡이며 막 달려왔고, 이미 심술 가득난 소방차는 여지없이 우리 집 근처에서 울려댔다. 점점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엄마한테 내 목소리가 들릴지 안 들릴지 모르지만 "잠깐만, 소방차!"하고 기다렸다. 5초, 10초, 15초. "소방차라고???" 그러게, 우리나라에선 소방차가 왜엥 하는 소리내는 것만 들었지 이렇게 당당하게 클락션을 있는 힘껏 끝까지 눌러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 소방차는 어디서 저런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일까?
불이 났을 때만 출발하는게 아니었다. 한 대만 출발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서 너대에 앰뷸런스까지 한꺼번에 출발한다. 어떨 땐 사방에서 소방차가 한 대씩 오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레이크 길에 선 소방차에서 내리는 소방관을 봤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불이 난 건도 아니고 왜 출동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소방관 몇 명이 한 사람을 향해서 갔다. 노숙자였다. 노숙자 때문에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앞에 상가 관리인인지 주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 보이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상가 주변에 있으니 신고한 것인지, 어디 아픈 것 같아서 구급차를 불러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소방차는 "내가 지나간다!!!" 크게 외치며 출동했다.
얼마 전에 집 근처에서 소방차를 만났다. 아주 소심한 소리, 애애앵..... 들릴 듯 말 듯... 소리가 난다는 건 출동하고 있다는 신호인데 퇴근 시간이라 도로가 꽉 막혔다. 북유럽 어느 나라를 본따 자전거를 더 많이 타고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려고 도로를 일부러 좁게 계획했다하는데, 꽉 막힌 도로에서 소방차를 위해 비켜 줄 공간이 없고, 소방차는 갖히고 말았다. "엄마, 미국 소방차 속도랑 너무나 비교되는데? 미국 소방차는 막 달려가는데 우리 소방차는 못 가고 있잖아! 도착하기도 전에 다 타겠어!" 가장 통행이 수월한 넓은 도로가 이런 상황이면 소방차는 한 블럭 뒷 길로 다녀야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안전을 위해서 큰 소리를 내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차에 위협에 가까운 들이대기를 하던 미국 소방차의 자신감과 기세등등한 자세를 우리 소방차에게도 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