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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쓰기] 10. 이은경작가 책을 보다가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by 엄마다람쥐

이은경 작가의 <오후의 글쓰기>를 찾으러 갔는데,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대출중은 아니었는데 누가 읽고 있었나 보다. 그냥 갈 수 없어서 저자 이은경으로 검색했더니 몇 권 더 나왔다. 이미 읽은 책은 두고, 안 읽은 두 권을 찾으러 갔다. 500번대라니?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쓰셨구나.


아침에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는 <오후의 글쓰기>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쓰셨다. 차분하게,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게, 민원 무서워서 아주 몸 사리는 듯한 글. 그게 내가 쓰던 방식이었으니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안다. 글 썼다가 이렇게 쓰면 이렇게 악플이 달리겠지 하며 이미 악플이 달린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리고, 이내 지우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잘한 일이다. 글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나중에 내가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닌데 잘 못썼네 할 수 있으니까 지우고 다시 순화해서 아니면 관점을 달리해서 쓰는 건 참 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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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온화하던 프롤로그 쓴 이은경 작가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들 둘 키우는 이야기, 장애를 가진 둘째 이야기와 공부 바람이 들어온 큰 아이에 대한 글에서 정말 찐으로 이분 속이 다 보인다 ㅋㅋㅋㅋㅋ 우아한 건 어디 가고 우왁스럽고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열정 엄마로의 모습이 대놓고 다 보인다. 그냥 다 쓰셨다. 솔직하게 쓰겠다고, 부끄러운 거 다 버리고 쓰겠다는 말도 얼마나 곱고 얌전하게 프롤로그에 쓰셨는지 모른다. 그 후로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마구 쓰셨다. 아하하하하


어릴 때부터 막 달리게 하는 우리나라 교육 상황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책인데, 다들 안다. 옳지 않다는 걸. 애들은 놀아야 하고, 그래야 창의력이 생기고, 행복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우리는 달린다. 그렇게 안 살면 이상하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찍힌다.


나도 유난인 엄마다. 애들 핸드폰 없이 키우고, "이 겨울에 산에 왜 가는 건데? 따뜻하게 키즈 카페나 데려가!" 해도 쌀포대 주문해서 산에 데려가고, 학원 안 보내고 잠수네로 집에서 영어하고 유난의 조건을 다 갖췄다. 아이들 영어는 절대 내가 안 가르치겠다, 학원 보내겠다 했는데 큰 애가 초1 때 영어학원 이제 안 다닐 거라고 하며 선생님께 선포를 하고 돌아왔다. 영어 선생 아들인데 영어 못한다는 소리를 내가 듣기 싫었고,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고 당연히! 그래서 집에서 시작됐다.


막 달리지 않는 건, 고2 담임 할 때 우리 반 아이를 보고 느낀 게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 모범생이었고 싱글싱글 잘 웃는 남학생이었는데 1학기 중간고사 이후였나, 그쯤부터 갑자기 애가 무조건 잠을 자기 시작했다. 깨워도 소용없고, 그냥 내리 잠만 잤다. 마구 잤다. 어머니도 속 터지신다고 했는데 애는 일어나질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 매일 왔다. 결석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될 무렵, 책상에 엎드려 있던 아이 손에 샤프가 들려 있었다. 웬일이지, 샤프를 들고 있네? 뭔가를 끄적이면서 그림을 그렸다. 내내 자던 아이가 끄적이니 놀라웠고, 드디어 일어나려나 하며 기쁜 마음에 "와! 너 그림 그리는구나!" 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갑자기 일어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교무실에 와서 갑자기 예전 순둥이 눈빛으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네요?" 무슨 말인지... "내가 너를 왜 포기해?"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럴 리가. 말을 듣든 안 듣든 우리 반이면 어떻게든 더 잘 되기를 바라고 애를 쓰는 것이지.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사촌들이 공부를 다 잘했고 의대에 갔다고 했다. 거기서 오는 압박감에 그냥 다 놔버렸었다고 했다. 그만 살고 싶어서 어떻게 죽을지 아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었다고 했다. 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담임인 내 입장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아줘서 고맙다!!!


착한 아이들이 폭발하면 무섭다. 부모님 말대로 곧이곧대로 반항 한 번 없이 큰 아이들은 착한 아이들이라고 불리고, 그 아이들의 마음속 꾹꾹 눌렀던 온갖 스트레스가 한방에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다. 부모님 말대로 살던 아이들이 대학 원서 쓸 때 느닷없이 부모님 원하는 대학은 안 써요! 하는 경우도 봤고, 착한 애였는데... 우리 애가 이럴 줄은 몰랐네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걱정 많은 나는 결혼 전부터 내 아이가 생기면 채근하지 말아야지, 많이 놀게 해야지, 공부만 닦달하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되나? 이은경 작가는 '비교대상이 없는'(64) 캐나다에서 평온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누가 뭘 배우는지 알 길이 없는 미국에서 우리 가족끼리, 우리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공부시키는 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 이야기도 딱히 들을 일 없었고, 1년 살고 갈 것이기 때문에 적응해서 지내다가 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성공이었다.


돌아온 한국, 아이 둘 다 여전히 학교 적응 중인데 속도 때문에 힘들다. 큰 애가 며칠 전에 그랬다. "엄마, 친구들은 다 6학년 수학을 공부한대. 중학교 것도 하고." 어쩐지 아이가 불안해 보였다. 5학년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6학년 수학은 숫자가 조금 커지고, 새로운 것이 한 두 개 나오는 정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걱정했다. 그래서 재활용장에서 주워다 둔 한 장 도 안 푼 6학년 1학기 수학 문제집을 같이 봤다. "이것 봐, 여기도 분수 나오지? 도형은 기둥, 뿔, 이런 거네." 하며 훑어봤다.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김현주 작가의 사교육은 없다에 나온 이야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시간에 5학년 수학부터 다시 풀면서 복습했대! 그게 중요한 거래!" 조금 더 안심한 듯했다.


둘째는 구구단 지옥에 빠졌다. 학교 진도 속도가 있으니 어서 외워야 하고, 못 외우니 점점 "나는 느린 아이잖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도 "너 빨리 해!" 하며 친구들이 소리를 친다며 "엄마, 나는 느려..." 한다. 미국 친구들이 그립다고 한다. 같이 가다가 한 명이 넘어지면 그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다 멈춰 서서 기다려주고, 모른다고 하면 알려주는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생일 영향도 있는 것 같다. 9월 학기 시작인 미국은 9월 생인 둘째가 제일 어른인 셈이다. 그래서 언니 같이 친구들을 보살피고, 선생님 도와드리며 자신감 있게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 더 큰 아이들에게 보살핌은커녕 채근당하고 그러다 자신감을 잃고 있다. 휴....


어쩌겠는가! 내 자식 기운 빠진 마음 풍선을 엄마가 불어줘야지! 빵빵하게 다시 채워줘야지! 더 자주 이야기해 준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예쁜 엄마 딸, 아들이야. 기특하고, 대견하고, 정말 멋지다고! 그러면서 더 자주 안아준다. 마음이 허하지 않도록, 어깨가 축 처지지 않도록 도닥여준다. 그러려면 일단 내 마음도 좀 채워야 하는데 ㅎㅎㅎ 글로 한바탕 풀고 나면 채워지니 다행이다. 글밥으로 배부르진 않지만 마음 부르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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