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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May 25. 2023

파란 수국이 뭐길래

주말에 다시 화훼단지를 찾았다.


겨울이 끝날 무렵 그곳에서 오렌지레몬나무와 애니시다를 데려와 함께 봄을 기다렸었다. 한 계절을 밀어내고 다른 계절을 끌어올 시기가 되면 식물들은 꽤나 힘을 낸다. 터질 듯 말듯한 꽃망울을 보면서 계절의 힘겨루기를 느꼈다. 가만히 응원하며 창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게 하고 햇살을 향하여 화분을 돌려주곤 했다. 꽃이 많이 피는 식물들이었기에 마침내 무더기로 피는 봄을 보니 벅차고 아찔했다. 덕분에 계절의 바뀜을 시각과 후각을 모두 동원하여 꽤나 촘촘하고 풍성하게 느꼈던 봄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그런 식으로 감각해 보긴 처음이라 그 피고 짐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여름이 오고 있으니 이번엔 여름식물을 데려오자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식물은 몬스테라였다. '식알못'이라 여름이면 떠오르는 건 몬스테라정도다. '에헴! 내가 바로 여름이요!' 하는 커다랗고 푸른 잎의 자태가 근사했다. 베란다가 좁은 집이고 이미 들여놓은 식물도 있으니 딱 몬스테라 정도만 사야지, 생각했는데 화훼단지에 도착하여선 느닷없이 파란 수국에 꽂혀버렸다.

청초하면서도 새침한 파란빛 때문에 여름이 우아할 수도 있구나, 처음 느꼈다. 어디선가 시원하고 달큼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수국은 밖에서 키워야 하는데" 소리를 카트에 담을 때부터 들었지만 파란 수국의 빛깔에 이미 넋이 나가버려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 오니 역시나 남편도 "수국은 밖...."(그 뒤부턴 자체적으로 음소거해 버렸다. )이라고 중얼거린다.

됐고. 다들 조용히 해 봐. 내가 어떻게든 베란다에서 잘 키울 거야.


파란빛이 잘 어울리는 크고 예쁜 하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여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었다. 정말이지 너무 매혹적인 모습이라 동화 속 공주님을 보듯 조금 설렜다. 어린 왕자의 별에 나타난 장미를 처음 봤을 때 어린 왕자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미 파란 빛깔의 수국이었지만 그 예쁜 파란빛을 잃을까 걱정되었다.

'파란 수국 만들기'를 검색해 보니 블루베리 상토로 분갈이를 하거나 구연산을 탄 물을 주면 된다고 했다. 올타커니! 구연산이라면 집에 너무 많지. 수국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니 물을 듬뿍 주자며 구연산을 타서 몇 번이고 주었다.


그날 저녁엔 파란빛을 뽐내고 있는 수국이 너무 이뻐 사진을 찍었다. 같이 화훼단지를 갔다가 '수국은... 밖에서...'를 말하며 나를 말렸던 지인들에게도 잔뜩 뽐을 내며 수국사진을 보냈다.

어때, 집에서도 이쁘지? 공주님 같지?

공주같이 청초하고 우아한 내 수국

그런데 나의 공주님이 그다음 날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잎이 다 떨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하며 놀라고 있으니 아들도 덩달아 놀라며 "엄마, 내가 안 그랬어. 나는 정말 손도 대지 않았어." 한다.

하루만에 잎이 다 떨어진 수국

사람이 건드린 흔적이 아니라 저절로 잎이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뭐지? 왜 이러지? 바람이 안 통했나? 직광이었나?

놀라서 물을 더 주고(이때는 구연산 물이 아니었다) 통풍이 잘 되는 바깥 베란다로 꺼내놨지만 다음날은 아예 꽃잎 끝에서부터 타 들어가고 있었다. 여린 꽃잎이 바스러질 듯 타들어가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꽤 아팠다. 그제야 혹시... 구연산 때문인가, 싶었다.   

구연산 물을 준 3일째 수국

"내가 더 파랗게 되라고 구연산을 물에 타서 줬는데... 그거 때문일까?" 남편한테 말하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뭐야? 진짜로 그랬다고? 농도 같은 거 알아보고 줬어?"라고 한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봤는데 구연산 탄 물을 주면 파랗게 된다기에... 많이 주면 좋은 줄 알고... 변명해 봤지만 아들마저 마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계모를 보듯 나를 본다.

"엄마, 정말로 그렇게 잔인한 짓을 했단 말이야?"

아들은 잔인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반성하고 있다고, 반성 중이라고. 거듭 사죄했지만 나의 수국에겐 이미 그 사과가 필요가 없어진 듯했다. 남편이 들여다보더니 뿌리까지 다 죽어가고 있는 거 같다고 했다.

"얘는 이미 죽은 거 같은데? 대체 구연산을 얼마나 부은 거야?"


이미 파란 빛깔의 수국이었는데 나는 뭘 더 욕심내었던 걸까. 바보 같은 욕심 때문에 수국 하나가 며칠 만에 생을 달리하고 있다. 토질에 따라 색을 달리했던 것은 그저 악착같이 생을 유지하기 위한 예민함이었을 테다.

가진 힘을 몽땅 쏟아부으며 파란 여름 하늘을 열어내던 중이었을 텐데 나를 만나 새파랗게 질린 채 타들어가는 수국을 보니 부질없던 욕심과 허영이 너무 후회된다. 그깟 파란 수국이 뭐라고. 그 파란빛이 뭐라고.


 점심시간에 학교 정원을 산책하다가 화단에 핀 수국을 봤다. 이 아이들도 열심히 여름을 열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 화단의 수국

하늘 그대로의 하늘 아래서 바람에 흔들리며 가끔은 비를 맞고 가끔은 풀벌레들이 건드려주고 있는 수국은 건강해 보였다. 내 수국의 잎도 처음엔 이런 빛이었는데. 다시금 많이 속상하고 너무 미안했다. 집에 갔을 때 수국이 살아있다면, 만약 아직 조금이나마 힘이 남아 있다면 내일은 이곳에 옮겨 심어야지, 다짐했다.

오늘도 이렇게 덧없는 허영과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을 배운다. 그 당연한 걸 다 잃은 후에야 깨우치고 있다.


어린 왕자는 다시 돌아간 별에서 장미꽃을 만났을까. 서로의 진심을 전했을까. 

문득 그 동화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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