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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Aug 07. 2023

생일 선물

오늘은 남편 생일이다.

그럴 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어제 갑자기 생일 선물로 브런치북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잠들기 전까지 제목과 목차를 생각했었고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업무 시작 전까지 브런치북을 만들고 있었다. 원래라면 새벽에 만들어서 남편이 출근할 때 "햅삐뻘스데이!" 라는 말과 함께 날려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 오후에나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아, 이거 아닌데 싶어 목차를 다 틀어서 다시 배열해 봤지만 조급해져 오는 마음에 비해 머릿속은 천하태평이었던 것인지 그럴듯한 것이 나오진 않았다. 퇴근 전이라도 꼭 날려주고 싶어 결국은 아침에 했던 그대로 발행했다.  

이럴 거면 출근 시간 전에 만들어서 날려줄 것을 그랬다.



 발행한 후 남편한테 카톡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남편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의 다정한 이웃님 중 한 분은 늘 '남편분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길래 이런 사랑을 받나요?' 같은 반응을 보여주시는데, 내 남편은 그 사실을 알려나? 이제라도 조금쯤은 황송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돌아오는 내내 키득거렸다.


어린 시절 친구한테서 "야, 쟤가 너 좋아한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언제부터 좋아했대? 왜 좋아한대? 나의 어디가 제일 좋대? 내가 왜 그렇게나 좋대? 나랑 마주칠 때면 다리에 힘이 풀렸대?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온갖 것을 잔뜩 궁금해했던 그 순간의 기분과 비슷했다.

뭘 봤어? 어땠어? 어디가 제일 좋았어? 봐봐! 솔직하게 말해도 돼. 겁나 좋지? 대한민국 어딜 가도 나 같은 남편 덕후 없을 걸? 짱 행복하지? 완전 살맛 나지? 좋아 죽겠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혼자 부풀어 있다가 너무 붕 떠버리고 말아 밀려드는 피곤함에 슬며시 늘어져 있을 때쯤 남편이 싱긋 웃으며 들어왔다.


남편은 나와는 다르게 조금 무던한 편이다. 싱긋,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내가 무얼 묻든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쳇! 치사해서 안 묻고 만다. 살짝 체념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사무실에서 보다가 자꾸 눈물이 나와서 밖으로 나갔는데 누가 봤으면 어쩌지. 아무도 안 봤겠지?"


누가 뭐 너만 보고 있냐,라고 대답하며 안심시키고 싶었는데 무언가 잔뜩 의기양양해져 버려 아무 대답을 못했다.

선물은 내가 줬는데 이상하게 내가 선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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