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큐어를 가지런하게 바른 손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손톱을 드러내며 양손을 펼쳐 보였을 때 "좋은데? 너한테 잘 어울려." 이런 화사한 칭찬들이 내 손등 위로 쏟아졌으면, 하고 바라던 때가 있었다.
맵시 좋게 손질한 긴 손톱 위로 반짝이는 매니큐어가 곱게 미끌어진 손은 정말 예뻤다. 차분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야릇해서 섹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얗고 가느다랗고 어른스러운 느낌의 그 손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20살 때. 같은 과 선배를 짝사랑했다. 모 의류 브랜드의 전속모델과 흡사한 외모를 지녔던 선배는 우리 과뿐 아니라 다른 과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엄청났고 나는 선배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번 하지 못한 채 그저 친한 후배라는 이름으로 옆에 있었다. 선배한테 여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을 나한테 하며 다리가 되어주길 원했던 이들의 접근이 꽤 많았다.
20살의 나는 누가 봐도 촌스러운 아이였다. 치마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아 언제나 헐렁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발머리를 고수했다. 또래보다 많이 어려 보였고 '여대생'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여러 이미지 중 그 어느 것 하나 지니고 있지 못했었다. 청순함, 발랄함, 상큼함, 세련됨 등등…… 뭐 그런 것들. 나는 여대생이라기보단 일요일이라 잠시 교복을 벗어던진 여고생에 가까웠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모. 작은 키에 통통하고 촌스러운 단발머리의 옆집 동생 같은 여고생. 누구나 쉽게 말 걸 수 있고 장난 삼아 놀려대면 금세 울먹거리고 마는 소심한 여고생.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마땅히 해줄 얘기가 없어 "그래도, 너는 귀여워"라는 말을 적당히 둘러대곤 했지만 '밥 한번 먹자' 만큼이나 그냥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언제 먹을까요?' 하며 다이어리를 펼쳐 들면 안 되는 것처럼 귀엽단 소리에 '구체적으로 어디 가요?' 라며 따져 물어선 안 되는 거다.
선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그러지 않으면서 나한테만은 유독 짓궂은 장난을 많이 쳤었고 밉살스러운 농담을 던졌다. 무안함과 섭섭함을 느낀 내가 '선배는 왜 나한테만 못되게 구냐'라고 투덜거리면 '넌 귀여우니깐 그러지'라는 대답을 하곤 했지만 선배가 말하는 귀엽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못난이 곰돌이 인형도 귀엽긴 귀엽다. 동물원에 있는 뚱뚱한 하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귀엽다. 그러고 보면 돼지는 또 얼마나 귀여운데. 분홍빛의 토실토실한 그 엉덩이. 그러니 선배한테는 나도 귀여웠을 테지. 아주 정확하게 다 알고 있었다. 그 '귀엽다'가 어떤 의미의 '귀엽다' 인지. 그래서 선배한테 고백하지 못했던 거다. 선배처럼 멋진 남자가 나같이 그저 ‘귀여운 여자애’를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깐.
누가 봐도 멋진 선배가 좋아서 한숨이 절로 났던 것만큼 누가 봐도 매력적이지 않은 내가 한심하여 한숨이 절로 났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는 말. 물론 그렇긴 하다. 외모가 전부인 세상에 살기엔 내 신경구조가 너무나도 가냘파서 세상은 반드시 외모가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엔 그런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뿐더러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하며 세상을 향해 두 주먹 불끈 쥐어 보이며 세차게 따지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런 가식적인 말 따위! 다 쓰레기 같으니 입 좀 다물어 줄래!?” 당시 내 심정이었다.
"넌 왜 화장 안 해? 방학 지나고 오니깐 다른 여자애들은 삼단 변신을 해서 오던데 넌 왜 그대로야?"
"저는 그런 게 안 어울리니까요. 삼단 변신 정도가 아니라 합체라도 하고 싶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서요."
무척이나 침울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했는데 선배는 마치 코미디 채널이라도 보고 있는 듯 크게 웃었다. 남자 후배 대하듯 내 어깨를 툭! 세게 치며 말했다.
"괜찮아. 그런 거 안 어울리면 어때? 화장 안 하고 치마 안 입어도 넌 귀엽잖아."
또, 그 소리. 그래, 귀여워서 문제였다. 못난이 곰돌이 인형처럼 그저 귀엽기만 해서 문제였다. 그러다 어느 날 예쁜 미미인형이나 늘씬한 바비 인형이 나타나면 구석으로 밀려나야 했기에 문제였다.
선배가 술자리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가증스러울 정도로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사귄 거예요? 선배랑 잘 어울려요.
나의 말에 선배는 신이 나서 키득거렸고, 그런 선배를 따라 나도 같이 웃었지만 사실은 펑펑 울고 싶었다.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선배 옆에 꼭 붙어 앉아 이것저것 선배를 챙기던 손. 옅은 빨강과 짙은 분홍의 중간쯤 되는 빛깔의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테이블 위의 뿌연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색깔이 예쁘다고 칭찬하며 선배가 그 손을 꼭 잡았다. 선배가 손가락 사이를 남모르게 만지작거리자 그 손톱은 유난히도 빛을 내며 반짝였다. 둘만의 그런 은밀함이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내 마음만 바싹바싹 말라갔다.
얼마 후, 선배는 그 여자애와 헤어졌다. 왜 헤어졌냐고? 차였어, 내가 차였다고. 짐짓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선배는 여전히 멋진 인기 남이었다.
“선배, 나도 선배 좋아해요. 왜 나를 안 봐요?” 선배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못난이 곰돌이 인형이었으니깐. 선배한테는 예쁜 미미인형이나 늘씬한 바비 인형이 훨씬 더 잘 어울렸으니깐. 거울 앞에 남몰래 서서 립스틱을 발라보기도 했고 부들거리는 손동작으로 붉은색 매니큐어를 칠해보기도 했지만 나한테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으니까. 그때의 내가 그런 것들이 잘 어울리는 여자애였다면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 선배는 군대를 갔고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어색해졌고 어느 사이엔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벌써 20년쯤 전의 일이다.
오래 전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며칠 전 티브이를 보며 남편과 했던 대화 때문이다.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이 새로 시작했나 보다. 출연진들이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고 있던 남편이 '나는 사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왜 특별한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남편의 말이었다.
남편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고 남의 이야기에 흔들리는 편이 아니며 감정의 진폭이 일정한 사람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 어쩌면 남편에겐 당연한 이야기겠다, 싶었다.
"음... 너는 그게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아니야. 나는 내가 싫었어.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남들이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꽤 오래 고민했어. 늘 포장된 상태여야 했어.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걸 좁혀가는 과정이야, 지금의 나는."
남편과 그런 얘기를 하다가 오래 전의 그 기억들도 불려 나온 것이다.
'되고 싶었던, 아니 되어야 했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 그 틈에 끼어 많은 좌절을 했던 순간이 바로 그즈음이었으니까.
아주 가끔씩 선배 생각이 난다. 아니, 정확히는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스스로가 얼마나 빛나는지 알지 못 한채 어딘지 모르게 늘 기죽어 있던 그 시절의 내가 조금 안쓰럽다. 그때의 네가 그렇게 이뻤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여전히 예쁘고 멋진 건데...
"선배, 내가 아직도 못난이 곰돌이 인형으로 보여요?"라고 이제는 물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의 물음에 혹시나 선배가 "응! 너는 언제까지나 못난이 곰돌이 인형이지."라고 대답한다고 해도 그 말속에 담긴 뜻을 내 방식대로 자신 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지금의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멋진 여자가 되어가는 중인데... 세월이 너무 지나버렸나? 조금 아쉽다.
눈치 빠른 손톱이 나의 표정을 살피다가 불쑥 말을 걸어온다.
매니큐어 한번 발라볼래?
손톱 끝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싫고 계속 관리해줘야 하는 것이 귀찮아 언제나 늘 짧게 잘라버리는 손톱이지만 괜스레 말랑거리며 늘어지는 날이라 매니큐어를 꺼내어 발라볼까 싶다.
너는 그때 정말로 귀여웠고, 정말로 예뻤고, 정말로 매력적인 아이였어. 그리고 아직도 여전해!!
그 시절의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오늘의 나에게 잔뜩 퍼부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