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뜬 해랑 오늘 뜨는 해가 뭐가 다르냐는 아들의 물음에 한참을 머뭇거렸다. 왜 새해가 되면 사람들이 해를 보러 가느냐고 묻는 아들의 눈동자는 맑고 깨끗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보단 언제쯤이면 이런 질문에 쉽고 명쾌한 답을 내놓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를 더 오래 생각하다가, 사실은 똑같은 해인데 그냥 상징 같은 거야, 아빠가 1월 1일부터 금연하겠다고 한 것처럼 어떤 시간 위로 점선을 그어서 여기까지!라고 해로 구별해 주는 거지, 그래야 새로 시작할 수도 있고 잘 가라고 인사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새해라고 말할 때의 해가 하늘에 뜨는 그 해는 아니네?라고 하는 걸 보니 알아듣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에게 말하는 동안, 같은 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다른 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라카이에서 노을을 볼 때면 나의 일상 속에서 보던 노을과는 전혀 다른 현상처럼 느껴졌었다. 온갖 감정과 서사를 다 품고 있는 듯한 이런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라니...
코끝이 저릿해질 정도의 감동은 어쩌면 끊임없는 자기 최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들기도 했지만 끝내 모른 척했었다.
문득 그때를 떠올리다가 지금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러한 모른 척이 아닐까, 싶었다.
머나먼 하늘 저 너머 우주 공간 속에 해는 그저 무심히 존재할 뿐인데 그 해를 향한 지구의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거야말로 진정한 최면이 아닐까. 각자 품고 있는 사정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의미를 최선을 다해 부여하고 있는 집단 최면. 거기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눈을 꼭 감는 간절함까지 더 해지고 있는 2025년 새해맞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우울한 12월이었다. 근래 이렇게까지 답답하고 무기력했던 12월은 없었던 거 같아서 그 12월이 끝났다는 사실이 그저 반갑다. 어제와 오늘은 결국 하나도 다르지가 않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반갑다.
어느 때보다 열심히, 다가오는 해를 향하여, 아니 그보단 떠나는 해를 향하여, 최면을 걸어본다.
썩 사라져 버려! 라며 훠이~ 훠이~ 내쫓듯 보내버리면 서운한 맘에 잔뜩 약이 올라 멀리 가지도 않을까 봐 등을 살살 어루만지면 달래 본다.
잘 가, 그 길로 곧장 쭈욱- 가. 어쨌든 너도 고생했어. 사실 괜찮은 시간이었는데 끝이 좀 아쉬웠다, 그렇지? 우리 모두 참 애썼어.
어떤 시간 위로 점선을 긋고 꾹꾹 눌러 접은 후 "자, 우리는 여기까지야!!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 본다.
아직은 새해 다짐까진 할 여력이 없고, 지금은 그저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으니 멀어지는 해와 다가오는 해 사이에 서서 안녕, 안녕, 을 잘 건네며 끝났다는 안도와 시작되었다는 기대를 조금은 차분하게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