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뉴스만 보며 지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초등학생 아들이 "계엄령이 뭐야?"라는 질문을 했고 "엄마, 나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유튜브에서 찾아봤어. 탱크로 사람을 밀었대."라는 말까지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좀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어린 아들에게 아직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였다. 정말로 이런 식으로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근데, 지금 왜 저러는 거야?"라는 질문엔 그냥 입을 닫았다.
엄마도...... 잘 모르겠다는 말이 아들에게 너무 무기력하게 들릴까 봐(11세 아들은 아직 무기력함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장면과 표정들과 분위기 속에서 어렴풋이 학습하게 될까 봐) 살짝 걱정되었다.
대통령의 사과와 계속 바뀌던 여당 대표의 태도. 독립적인 입법기관임에도 그 지위를 압도하는 당론. 투표가 불성립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다 조금은 허탈해져 맥주 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살짝 웃었다. 대단하네. 참 대단하네. 앞으로 투표 안 해도 되겠네. 선거 때마다 찍을 사람 없어서 진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 안 해도 되는 건가. 혼자 중얼거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러다 문득 최근 내가 지니고 있던 일상 속의 분노들. 가령, 누군가의 비겁함에 대한 짜증이라든지, 입으로만 정의를 이야기하는 자에 대한 경멸이라든지, 무능함에 대한 피곤함 따위가 얼마나 사소했고 하찮았는지를 깨달았다.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음을 이런 일을 통해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니 조금쯤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지난 몇 주간 내가 지녔던 곤란과 분노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아무 일도 아니었구나. 어쩌면 그저 나의 옹졸함이었구나. 내가 아주 조금 너그러워지면 될 일이었구나.
그렇게, 살짝 허망한 방식으로, 몇 주간 나를 괴롭혔던 분노가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엔 꽤 묵직한 답답함과 무기력함이 자리했다.
이 와중에 한강 작가의 인터뷰가 가슴을 울린다.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는 말.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행위이며 그런 행위들을 반복해 가면서 어떤 내적인 힘이 생긴다는 말.
그러므로 문학의 언제나 우리에게 어떤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말.
그 인터뷰를 보는데 차분하고 영적인 듯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이상하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고 했다.
'가부 결정 없는 투표 불성립'
화면 속의 글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체념하지 않기로 했다. 문득 몸에 좋은 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질 좋은 호밀빵과 무화과, 샐러드 채소를 주문했다.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라 어제저녁에 주문한 것들도 오늘 아침에 만날 수 있다. 달고 싱싱한 무화과와 깨끗하고 부드러운 샐러드 채소를 씻으며 무탈하고 평온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내 아들도 꼭 누릴 수 있게 해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데 이상하게 조금 거창하게 느껴지는 다짐이었다.
우선은 몸에 좋고 입에 알맞은 것들을 먹으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 또한 희망이라 생각한다는 작가의 소설을 읽을 생각이다. 오래전 한강 작가의 책을 읽다가 내게는 너무 어두운 듯하여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둠을 버텨낼 힘이 조금쯤은 생기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희망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테지.
읽지 않은 작가의 책이 꽤 많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며 희망을 생각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