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내가 잊지 않기 위해 하는 기록이다.
'도대체 발리에 뭐가 있길래?'라는 궁금함으로 시작된 여행이니, 그곳에서 무얼 보고 들었는지 기록해 본다.
++ 나의 브런치는 방문객이 아주 드문 곳인데, 가끔씩 누군가 찾아줄 때의 검색어를 살펴보니 보홀이나 보라카이 관련 검색어였다. 그래서 미리 밝혀두는데, 이 글은 여행기가 아니다. 발리 관련으론 알차고 좋은 글들이 넘쳐난다. 나 또한 그런 글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러니, 혹여 여행기를 기대하고 이 글을 클릭하셨다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건 발리와는 관계없을지도 모를, 그저 내 기분으로 버무려진 사진과 조금 쓸데없는 메모입니다. ^^;;
1. 발리 가는 날
오후 5시 비행기라 출근했다가 점심때 조퇴를 했다. 집에 가서 짐을 마저 챙기고 남편과 아들에게 짧은 편지를 쓴 후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휴가철이 지난 계절에 대낮부터 혼자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가니 어색했다. 우르르르. 늘 설레었던 바퀴 소리가 요란스럽게만 들려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 막상 가려니 뭔가 가기 싫은데. 이제 와서 머뭇거려졌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2011년의 유럽 여행 이후 처음이다. 정말 괜찮을까. 살짝 겁도 났다.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도 내내 걱정되고 긴장되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공항은 한산했고, 체크인은 빠르게 끝났다. 배가 고파 던킨에 들렀는데 멍허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도넛을 한입 베어 물자 슬슬 실감이 났다. 공항 특유의 소리, 층고가 높고 넓은 장소에서 울리는 술렁임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 불편했던 걸까. 그 와중에 도넛의 딸기잼을 흘려버려 속상했다. 더 흘리지 않기 위해 입 안으로 한방에 밀어 넣었다. 나이쓰!
출국장도 한산했다. 혹시나 싶어 세 시간 전에 공항을 갔다니 면세품을 찾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연재 중인 글을 하나 썼다. (이때 쓴 글이 '쓰다만 소설') 예상대로 비행기도 한산하여 옆자리에 아무도 없이 아주 편안하게 갔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비행기 값이 훅 떨어지더니만... 역시 여행을 가려면 비수기를 노려야 하구나.
출발할 땐 흐렸는데, 점점 맑아지더니 구름 위로 해가 반짝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상견니를 봤는데 '엥? 이런 내용이었어?' 하며 좀 놀랐고(재미없었고) 후배 중 하나가 제발 이거 좀 봐달라 해서 다운 받았던 크라임씬도 봤는데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었고(범인이 누구지?) 상연과 은중을 보던 중에 드디어 발리에 도착했다.
생각보단 세련되고 화려했던 공항
0.5박 숙소는 딱 2만 원짜리 같았다. 침대 위에 바퀴벌레가 있어 남편한테 '나는 드디어 숙소에 도착. 오늘 밤은 얘랑 같이 자.' 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하늘소네? 잘 자.'라고 했다. 나는 저 녀석이 바퀴벌레라고 확신하는데 남편은 아직도 하늘소라고 한다.
암튼 다소 배고프고 정신없고 긴장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전혀 기대되진 않았지만 배가 고파서 뭐라도 좀 먹고 싶었는데 조식 만드는 데에 한 세월이라(이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이렇게 음식이 천천히 나오는지 몰랐다) 끝내 주문한 조식을 먹지 못 한 채 배를 타러 갔다.
2. 길리 첫째 날
숙소에서 항구까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정신없다는 후기를 많이 봤는데 생각보단 괜찮았고 날씨가 맑아 기분이 정말 좋았다. 빠당바이를 떠나,
드디어 길리 도착.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바다에 대해서라면 보라카이 바다가 아름다움의 기준인 내게 이곳은 좀 애매했다. 예쁘긴 한데, 비행기를 타고 7시간 날아와서 다시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달려와 배까지 2시간을 타고 와야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았다. 음... 일단, 바다는 무난한 편. 투명한 뽕따색 바다는 여전히 보라카이가 최고인 걸로.
길리를 말할 땐, 다들 윤식당을 먼저 말한다. 누군가는 길리는 발리가 아니라는 말부터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윤식당 촬영지라는 말부터 한다. 난 윤식당을 제대로 보진 않아서(조금 보긴 했던 거 같은데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나 보다) 이곳이 어느 예능의 촬영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발리도 잘 모르는 곳이니 이곳이 발리든 아니든 그것도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근데 여길 왜 오고 싶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지금이야 길리를 조금 알지만, 그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대체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걸까.
누군가 나에게 길리를 물으면 아마도 마차 이야기를 먼저 할 것 같다. 말한테 미안했지만, 숙소는 북쪽이라 캐리어를 끌고 가기 멀었고 길리는 차가 없는 곳이라 마차를 타야 했다. 마차는 생각보다 빨랐으며 그런 식으로 달리며 바라보는 풍경들이 신비로웠다. 지금도 짤랑짤랑하던 방울과 말발굽 소리가 생각난다.
숙소에 짐을 던져두곤 동쪽으로 달려갔다. 북동쪽에 있는 까사보니따. 구글 후기에서 이곳은 마치 몰디브 같다고 하던데, 몰디브는 안 가봤지만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하여 내가 상상하는 그곳과 닮아 있었다.
길리는 해변을 따라 이런 바가 쭈욱 펼쳐져 있다. 음료 하나 시켜놓고 수영도 하고 책도 보고 일기도 쓰며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어도 된다.
오자마자 풍경에 감탄하며 맥주만 마시고 앉아 있으려니 로빈(카사보니따의 풍경만큼이나 유명한 직원, 아주 아주 친절하다)이 거북이 보러 안 가냐고 물었다.
"난 우선 목이 말라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오는 길에 두 번이나 넘어졌다고ㅠㅠ) 이것 좀 마셔야 해. 근데 거북이는 어디 있어?"
"저기 한국 사람들 모인 곳 있지? 저기에도 있고 이 바로 앞에도 있고, 여기, 저기. 세상에, 오늘은 온통 다 거북이야."라고 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맥주를 한 모금 더 삼킨 후 로빈이 알려주는 곳으로 헤엄쳐 갔더니 정말로 거북이가 있었다. 엥? 이렇게 바로 본다고? 고작 무릎정도 깊이인데 거북이라고? 수영을 하는데 바로 옆에선 거북이가 해초를 뜯어먹고 있었다.
동네 개마냥 볼 수 있어 개북이라더니, 길리는 개는 아예 없고 바다 안엔 거북이가 잔뜩 살고 있었다.
혼자 온 여행이라 사진은 인증샷 정도로만 찍고 있었는데 거북이가 너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어 다시 물 밖으로 나가 휴대폰을 가지고 왔다. 거북이를 찍어 남편한테 보냈다.
나 거북이랑 수영 중. 헤헷.
그곳에서 조금 더 멍하니 앉았다가 다시 숙소로 가 옷을 갈아입곤 이번엔 서쪽으로 갔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여 멋진 노을은 보지 못했다.
일단, 노을도 보라카이 승!
그렇지만 여기가 훨씬 느긋하고 평화롭네. 이건 길리 승!
동쪽에서 거북이를 보고 서쪽에서 노을을 보고 나면 길리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그게 뭐라고... 이상하게 너무 행복하고 충만했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그게 뭐라고 말이다.
3. 길리 둘째 날
다이빙을 하는 날이었다.
6시 반까지 항구로 가야 해서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동쪽을 향해 쌩쌩 달려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맘에 드는 풍경이 있어도 사진 찍기가 힘들었는데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금빛 풍경은 자전거를 세워야만 했다. 무언가 벅차오르게 하는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한참을 멈춰 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그 금빛을 향해 달렸다.
"아, 나 여기 좀 좋은 거 같아."
"진짜 재밌다. 늠 쒼나."
"자기야, 여기 다음엔 같이 오자."
아무도 없는 아침의 거리를 자전거로 누비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바다에선 거북이 따라 들어가, 거북이를 쫓아다니다가, 거북이가 숨 쉬러 나올 때 같이 나왔다.
유명한 동상 포인트는 그저 그랬다. 점점 사람이 많아져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예쁜 물고기가 많아서 그냥 뒤쪽에서 혼자 물고기 구경을 했다.
길리 섬의 중앙은 덜 다듬어진 흙길이다. 자전거를 타기엔 조금 불편하지만 소도 있고 염소도 있고 닭도 있다. 숙소가 북쪽에서도 안쪽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 첫날엔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좀 외진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위치였기에 길리 안쪽을 여기저기 볼 수 있어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흙길을 달리다가 소도 만나고 염소도 만날 때면 뭔가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 신비로웠다.
해질 무렵이면 당연히 서쪽이다.
오늘도 제대로 된 노을은 못 보겠구나, 생각하며 서쪽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맘에 드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앉았다. 처음엔 나 혼자 저기에 있었는데 나중엔 어느 커플이 해변가에 나타나 깔깔거리더니 내가 앉은 곳 아래에 자리 잡았다.
애네 내가 뒤에 있는데도 뽀뽀하네?
어? 너무 그러지 말지? 야, 나도 남편 있거든?
자꾸 그러면... 확 넘어진 척하면서 그 위로 떨어져 버린다?
결국 그냥 구름이 낀 채로 어두워져 버렸다. 서쪽 바다는 동쪽보다 좀 더 연하고 하얀 빛깔을 띄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도 뽀얀 빛을 잃지 않아 신기했다.
숙소로 가기 전에 거북이 사롱과 엄마랑 어머니, 여동생에게 선물할 진주 목걸이, 마그넷이랑 거북이 팔찌를 샀다.
사롱은 개당 150k, 목걸이는 250k
마그넷이랑 팔찌는 가격을 잊었는데 아무튼 싸게 사진 않은 거 같다. 숙소에 와서 검색해 보니 사롱도 목걸이도 모두 100k는 더 비싸게 준 듯했다. 그치만 길리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고 가격을 흥정하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그 가격이면 내겐 만족스러웠으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제대로 된 거북이 사롱을 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집에 돌아와 세탁을 하니 물이 다 빠져서 걸레가 되고 말았다. 버릴 수도 없고. 힝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