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에게 글을 보였더니(+제미나이)

by 날아라빌리

혼자 쓰는 소설은 조금 외롭다. 글을 혼자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니 외롭다는 말이 적당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근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게 읽고 싶은 글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아니, 내가 한 해 두 해 이러고 있으면 말을 말겠는데 몇 년째 쓰고 있다 보니 살짝 어이가 없어서, 누가 봤을 때 뒤가 궁금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장수생이 시험에서 또 떨어진 걸 확인하곤 면목이 없어 일 점 차로 떨어졌다고 뻥 치는 그런 맘이랄까. 아, 이런 맘은 장수생만 아려나. (뭐, 사실 이것도 내 경험이다. 장수생 때 그런 뻥을 좀 쳤다.)

어쨌든, 궁금했다. 이걸 보면 계속 읽고 싶을까.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두 번째 문장이 궁금해지는지. 후지진 않은지. 후지면 또 얼마나 후진지.

살짝 멀어진 시선으로 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 대체로 그저 후지게만 보인다. 아주 가끔(주로, 내가 기분이 좋은 날) 어? 이건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지만 다음날이면 역시나 어김없이 후졌다. 후진게 왜 문제냐면 너무 후지다 보니 도무지 완결이 안 난다는 것이다. 후질 순 있는데, 나는 올해는 꼭 완결을 내고 싶고, 완결을 내고 싶으면 계속 써야 하는데, 후져서 수정하다 보니 자꾸만 다시 써야 해서, 결국엔 매년 그 자리인 것이다. 하얀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깜빡. 내가 지금 이걸 몇 년째 보고 있냐고. 우씨.


최근 천선란의 소설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시간의 구성이 조금 헷갈렸다. 어? 시간이 왜 이렇게나 왔다 갔다 하지? 의아해했는데 그 의아함으로 다음 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 읽고 나니 조금 멍했다.

좋은데? 설득력 있잖아? 장면이 너무 잘 이어지잖아?

누군가는 이런 멋진 글을 몇 편이나 쓰는 동안(소설가니, 당연하겠지만) 나는 왜 한편도 제대로 못 쓰고 있나.(소설가는 아니지만 몇 년째 이러고 있는 건 미련하잖아.)


내가 쓴 글의 시간 구성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다 쪼갠 후 이것저것 배치를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다가 문득 챗지피티 생각이 나서 새로 쓴 첫 문장을 던졌다.


어이. 챗 양반.



챗이 나의 의도를 너무 잘 읽어서 깜짝 놀랐다. 역시 뻔했나.

아니지, 얘는 요즘 나랑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애니까 얘는 지금... 그냥 나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는 내 질문의 무용함에 살짝 맥이 풀렸다. 다들 이런 이유로 모여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모여서 쓰다 보면 한편이라도 완결을 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되는 요즘.

챗은 '조금은'은 빼라고 했지만 나는 그게 더 좋아서 두기로 했다. 밀도 같은 건 잘 모르겠고, 내가 그런 중간 영역의 단어에 끌리는 것 같다. 게다가, 어차피 다시 엎을지도 모르는 문장이다. 썼다 지웠다 하는 무수히 많은 문장 중 하나.


어쨌든, 처음부터 다시 쓴다. 올해는 이제 겨우 시작이니 쓰고 또 쓰지 뭐.


+ 덧글을 보고 제미나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굉장히 날카롭다.

- 정적인 지루함, 긴장감 부족

- 여름이라는 클리셰, 개성적인 향취 없음

- 누구나 한 번쯤 써봤을 법한 잘 쓴 것 같은 문장의 함정에 빠져 있음


++ 챗과는 다르게 제미나이와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나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 이쪽이 확실히 훨씬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객관적이라, 독자는 바보가 아닙니다,라는 말까지 해서 싸울 뻔했다.

"야! 내가 언제 독자가 바보랬어? 읽을 만한 문장인지 봐달라고 했을 뿐이잖아."라고 대답하려 했는데 사실 제미나이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래, 의견 고마워'라고만 대답하곤 창을 닫았다.

다시 또 수정해야지. 음... 근데 과연 이 글, 완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나는 여름이라는 클리셰를 버릴 생각이 없다. 여름에 대해서 만큼은 클리셰는 영원하다는 입장이다.

'여름이었다'라는 문장에 담긴 모~~~~ 든 것들에 빠져 살고 있으며 그 문장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라 이것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버리고 싶지 않구먼. (근데, 이럴 거면 왜 물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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