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코와 넙치의 저주

어떤 계절의 꼭 필요한 만큼의 시련

by 날아라빌리

공무원 시험에서 연이은 불합격을 하고 있던 어느 날에(지금은 아닌 거 같은데 그때는 잘만 하면 한 해에 4번 정도까진 시험이 가능했다. 덕분에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낙엽도 아닌데. 우수수...) 길에서 팔딱팔딱거리는 넙치를 보았다. 엄청난 높이로 파닥거리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머, 쟤 왜 저래? 어디서 왔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근처에 횟집이 있었다.

앗! 저 횟집 수족관에서 떨어진 건가? 후다닥 달려가 횟집 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주머니, 넙치가 죽어가요.

앗, 그래?! 하며 손잡이 달린 그물과 커다란 대야를 들고 나오는 아주머니를 향해 넙치를 가리켰다.

저기예요!

아주머니께서 넙치를 무사히 수족관 안으로 옮기는 모습까지 본 후 그제야 안심이 되어 다시 가던 길을 갔다. 휴우, 넙치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때쯤의 내 맘 속엔 어떤 바보 여자애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걔때문에 좀 짜증이 나던 중이었다. 학원강사일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있던 때였는데 우연히 대학생 알바들끼리 모여 내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저렇게 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하면서 "또 떨어졌대?" 하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얘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안녕~" 인사했다. 매번 그런 식이었고 그런 쪼다 같은 날들이 계속되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에 사치코란 이름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어째서 사치코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동네 바보가 있다면 이름이 딱 사치코겠다 싶어서 내 안에 살던 여자애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이게 다 사치코 때문이다,라는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날들이었고 어떻게 해야 나한테 엉켜 붙어 있는 이 바보 사치코를 떼어낼 수 있을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며 사치코 생각에 빠져서 걷던 중에 넙치를 보게 된 거였다.


넙치를 수족관으로 무사히 돌려보내고 돌아가던 길에 문득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트럭에 치일뻔한 고양이를 구해준 여고생에게 고양이들이 밤에 찾아와서는 "댁이 구한 고양이는 우리 고양이 왕국의 왕자님이랍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왕자님의 신부로 그대를 맞이하겠소" 라며, 고양이 왕국으로 초대를 하게 된다. 실은 초대라기보단 납치에 가까운 것이지만. '와아- 나도 넙치들이 찾아와서는 그대를 넙치 왕국의 신부로 맞이하겠소!라는 거 아냐?' 하는 생각에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넙치가 나타나면 나 대신 사치코를 데려가달라고 얘기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날밤. 정말로 꿈에 넙치들이 나왔다. 넙치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대는 우리 왕자님의 탈출을 망쳐버리고 말았소. 겨우 수족관에서 탈출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대 때문에 코 앞에서 왕자님이 다시 횟집 수족관으로 끌려가고 말았소. 우리 넙치의 이름을 걸고 그대를 두고두고 저주할 테요. 기대하시오, 이 넙치님의 저주를!"

그건 모두 사치코가 벌인 일이에요, 라는 얘기를 하기도 전에 넙치들은 사라졌고 꿈에서 깨어났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세상에나, 넙치님의 저주라니. 사치코만으로도 힘든데 넙치까지? 난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기대하시오, 이 넙치님의 저주를! 으하하하!

넙치의 웃음소리 뒤로 바보 사치코가 비굴한 표정으로 납작 엎드려 있던 나날들이었다. 넙치의 저주는 생각보다 오래갔었고 사치코는 꽤 긴 시간을 나와 함께 했었다.

본격적인 시험시즌을 앞두고 혼자 교토여행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야스이콘피라궁 신사를 찾아갔었다. 끊어내고 싶은 인연을 부적에 적은 후 이상하게 생긴 바위를 통과하면 그 연이 끊어진다기에 사치코넙치불합격을 부적에 적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바위에 난 구멍을 통과했었다. 제발 다들 꺼져라. 간절히 기도했다.

그 간절함 덕분인지, 부적의 효력 덕분인지. 그 해에 나는 간신히 합격하여 넙치와 사치코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조금은 느닷없는 이별이라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가끔 넙치와 사치코 생각이 난다. '이게 모두 넙치의 저주와 사치코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며 두 팔 가득 스스로를 꼭 끌어안고 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넙치와 사치코 옆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여전히 쓸모 있는 척, 아직은 할 수 있는 척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울음을 삼켜야 했던 작고 여린 내가 있었다. 멍이 드는지도 모르고 두 주먹을 꼭 움켜쥔 채 과하게 웃고 과하게 미안해하던 시절이었다.

'굳이 그럴 거까진 없었는데'라는 말은 이미 지난 일이니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때는 그래야만 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를 지켜줬던 건 오히려 넙치와 사치코였는지도 모른다. 넙치는 좀.... 그렇지만(미안해 넙치야) 사치코는 때때로 그립다. 사치코가 있어 나는 덜 외로웠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하며 원망을 쏟아내어도 가만히 나를 끌어안아줘서 금세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브런치에 아들의 성장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필명도 아들의 태명으로 했던 것인데, 이렇게나 내 얘기를 많이 할 줄 알았다면 필명정도는 사치코로 할 것을 그랬나, 조금 후회된다. 남편한테 느닷없는 연애편지를 한통 써서 '사치코로부터'라고 해놓곤 몰래 지켜볼까 잠시 생각했다가 남편이 정체 모를 설렘을 느꼈다가 난 줄 알면 실망할 테니 그건 안 되겠고, 마니또 게임 같은 걸 하게 된다면 '너의 사치코로부터'라고 할까 싶기도 한데 요즘은 도통 그런 게임을 하지 않으니 그것도 안 되겠고, 하는 수 없이 내가 유명해져서 예명으로 사치코를 써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뭘로 유명해질지는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내가 이제 와서 제임스 본 같은 첩자가 된다거나, 아이유 같은 연예인이 된다거나, 250(디토 작곡가다) 같은 작곡가가 될 순 없으니 꽤나 오랜 시간 심사숙고하며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자! 그러니, 그동안 누구든 나의 사치코를 본다면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까지 풀 죽을 필요 없었다고, 조금 한심해도 괜찮았는데 나까지 너를 미워해서 미안했다고, 내가 유명해지면 반드시 사치코라는 예명을 쓰면서 엄청 멋지고 환하게 웃을 테니 그때까지 어디서든 씩씩하게 잘 지내야 한다고. 나의 작은 사치코에게 잊지 말고 꼭 좀 그렇게 전해주세요.

나 대신 한번 꽈악 안아준다면 소심하지만 따뜻한 우리 사치코는 당신께 진심으로 고마워할 거예요. ^^

넙치와 사치코와의 인연을 끊었을 때. 사치코란 예명에 꼭 어울리는 모자이크처리라 흡족하다.


구꿈사에서 합격수기를 볼 때면 늘 부러웠다. 언젠가 내가 합격수기를 쓰게 된다면 나는 빨리 붙는 요령 따위는 없으니 넙치와 사치코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요령을 써야지, 했었는데 사실 그런 요령 같은 건 애초에 없고 그저 어떠한 계절은 충분히 괴로워해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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