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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Mar 12. 2023

골목길 산책

전포동 카페거리

Y 나는 전포동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나는 고등학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지만 Y 직장 때문에  도시를 떠날 때까지 서면 근처에 살아서 우리는 종종 그곳에서 만나곤 했다. 태화쇼핑이 있던 자리와 미니몰이 있던 자리, 롯데백화점 근처 정도는 그럭저럭 익숙하여 가끔씩 가게 되어도 ", 뭐야  이리 변했어?"라고 할지 언정 크게 놀라진 않았는데 어제는   만에 Y 만나는 터라 서면도 꽤나 오랜만이어서 낯설게 느껴졌다.


-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날까?

- 인터넷 검색해 보니 요즘은 거기서 안 만난대. 꼰대들이나 거기서 본대.

- 요즘 핫한 곳이 어디지?

- 핫하다는 표현은 우리 나이엔 좀...... 근데 우리가 핫한 곳에 가도 돼?

핫한 곳은 기 빨려서 싫은 나는 아직은 핫한 곳이 좋은 Y와 오전 내내 카톡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었고 결국 전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급하게 검색한 블로그들에선 다들 전포역 6번이나 7번 출구에서 만남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요즘은 전포역이란 말이지?

카페가 많은 가보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전포역에서 내려 출구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부터 뭔가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워 어리둥절했다. 여기가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가.


출구를 나와 사람들 사이를 살피며 Y를 찾았는데 Y 역시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야! 여기 뭐야? 사람 왜 이렇게 많아?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안부를 묻는다거나 잘 지냈냐는 인사보단 이곳의 변화에 대한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때문에 비명 같은 감탄사부터 쏟아내었다.


- 너무 두리번거리지 마.

- 이런 거 사진 찍어도 되나? 나 지금 좀 촌스러운 거 티 나?


믿기 힘들지만 이 곳은 카레가게다. 다음에 꼭 여기 가보자, 했다.
여전히 생활이 묻어있는 주택가 골목 사이사이엔 아기자기한 카페가 함께 있었다.
골목 입구에 있던 고무 다라이. 골목 저 안쪽엔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고개가 돌아가는 각도를 단속하며 '너나 두리번거리지 마세요.'라고 서로를 타박했으나 결국은 벌어진 입과 내려앉은 턱을 수습하지 못한 채 "우와, 우와..."를 연발해야 했다.

중학교 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가끔씩 떡볶이를 사 먹으며 친구들과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고르던 기억도 났다. 그때 지나다녔던 곳이 이 골목 같기도 하고 저 골목 같기도 한데 이제는 너무 변해서 잘 모르겠다, 하며 Y와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른 채 골목 여기저기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 중학교 때 이 골목으로 다녔던 거 같아. 저기 분식점이 있었고 좀 더 가면 헌책방 있었던 거 같은데...  

- 동고 오빠들이 이 쪽길로 하교해서 나도 이 쪽으로 다녔는데.

- 동고 오빠? 오빠 맞아? 동고 학생들 들으면 깜짝 놀라겠다. 신고당할라.

- 저기는 대우자동차 자리 아니야?

- 언제 적 대우자동차야? 그러다 88 올림픽 얘기까지 나오겠다?


골목 여기저기에 어둠이 내려앉고 양꼬치 냄새가 짙어질 때쯤 우리도 밥을 먹고 적당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 느끼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Y는 작년에 차를 바꿨고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를 하여 새 가구로 집을 꾸몄으며 드디어 승진을 했다.

나는 Y가 너무 부럽다고 말했지만, Y는 생각보다 좋지 않다고 했다.

"새 아파트에 입주했고, 갖고 싶었던 차를 샀고, 승진도 했고, 그 모든 것이 작년 한 해에 한꺼번에 일어나서 물론 좋았는데 또 막상 그게 그렇게까지 좋진 않은 거야. 이상하지? 허무하고 조금 우울해서 약간 아팠어."라고 말했다.


헌 아파트에 살면서 중고차를 타고 다니고 있지만 가까스로 했던 승진에 대한 나의 감상 또한 Y의 것과 크게 다르진 않아서 "아... 나 그거 무슨 기분인지 조금 알 것 같아."라고 했다.

결국은 너무 늙어버린 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분명히 어린애였는데... 이 골목에서 떡볶이를 사 먹으며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사곤 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뛰어다녔던 골목이 어딘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 변해버렸고 지금 내게 남은 건 그저 한참 나이 들어버린 나뿐이었다.  

이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왔을까, 싶어서 나도 며칠 아팠고 아직도 계속 너무 허무하고 조금 우울하다고 털어놓았다.

"야, 나 이제 뭐 하지? 나 뭐 하면 돼?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거야.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랐어. 이 늙은 여자는 누구지? 이 나이 되도록 나 뭐 했을까? 지금 와서 내가 나를 위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라는 말이 불쑥 나와버렸고 눈물도 같이 흘러내렸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소리였다.  


Y는 그동안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새로운 운동으로 골프를 시작했다고 했다.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밥을 챙겨 먹으며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고 했다.

내가 매일 뭘 먹었고 뭘 했는지 하나씩은 꼭 기록해 두기로 마음먹었다며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아, 그런 거라면 나도 있지, 하며 사진첩을 열었다.

나도 내 튤립과 레몬오렌지 나무, 수선화꽃과 율마를 보여줬다.

나 얘들 매일매일 사진 찍으며 보고 있어. 튤립이 졌는데 너무 속상해서 진짜로 울 뻔했어. 갱년긴가 하던 중이었는데... 겨울 내내 들여다보곤 해서 엄청 마음이 기울었나 봐.


혼자 사는 Y는 소소한 뭔가를 이룬 듯해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는 외로움을 얘기했고, 나는 내게 묻어있는 생활의 먼지들과 그 먼지들의 지긋지긋함을 얘기했다.

다들 이렇게 살겠지? 한 시절이 지날 때마다 작은 안도와 허무함을 함께 느끼며 가끔씩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기도 하는 거겠지?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늘어놓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계절이 바뀔 때쯤 이 골목에 다시 오자 얘기하며 헤어졌다.

이 골목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느끼며 어린 시절의 나와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나를 함께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갈 곳이 어딘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지 마음먹었다. 내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뛰어다녔고 학교에서 조금 늦을 때면 젊었던 우리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해 지나쳤던 이 골목들이 너무 낯선 곳이 되진 않도록 가끔씩은 산책하듯 걸어야겠다.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깊이 들이마신 숨을 조금씩 뱉어내며 느릿하게.

가벼운 보폭으로 살포시. 그렇게 걸어야겠다.

그러다 맘에 드는 카페가 나타나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게 된다면 다시 또 마음이 일렁이진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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