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다이빙은 다음에
피피섬에서 다이빙을 마치고 푸켓의 중심이라고 하는 빠통 해변으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다음날은 바로 이번 태국 여행에서 하이라이트로 일정을 짰던 시밀란 투어였죠. 다이버들이라면 배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다이빙만 열심히 하는 리브어보드 프로그램으로 여기를 몇 번씩 가보셨거나 시밀란이라는 지명은 들어보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시밀란에서의 리브어보드도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지만 짧지 않은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섬에서 숙박을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예전 호주 케언즈 여행 당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일주일 조금 안되게 리브어보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눈곱을 떼자마자 커피 한잔 들이켤 틈도 없이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바로 바닷물에 몸을 담갔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상쾌한 아침 샤워가 또 있을까요. 그리고 아침 먹고 다이빙, 점심 먹고 다이빙, 쉬었다가 다이빙, 자기 전에 야간 다이빙까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지만, 몸무게 40kg 남짓의 체구가 작은 아내에게 꿀렁이는 배 위에서 하루에 몇 번씩 다이빙 기어를 메고 풀고 하는 것이 조금 체력에 부치긴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고, 분명 다른 곳에서 다시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이번 태국에서의 짧은 일정에 무리해서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빠통에서 시밀란으로 가는 여정은 만만치는 않았지만, 몸이 힘들 뿐, 딱 맞게 짜인 시스템 덕분에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약할 때 픽업 장소로 남겼던 호텔 입구로 새벽부터 시간 맞춰 승합차가 데리러 왔습니다. 차량으로 또 배로 가야 하는 먼 길이다 보니 이른 새벽에 맞춰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호텔 조식도 챙겨 먹기 어려우니 아침부터 시밀란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 있으시다면, 대충 적당한 곳에서 하루 주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시간을 한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항구였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나면 예약한 프로그램에 맞춰 각기 다른 색깔의 손목띠를 채워줍니다. 섬에서 숙박을 하고 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섬에서 필요한 짐만 작은 가방에 챙기고, 캐리어 같은 큰 가방을 맡아 주는 곳도 따로 있었습니다. 짐을 맡기고 나오면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관광대국 태국이어서 그럴까요. 새벽부터 모시고 온 손님들이 배고플까 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습니다. 호텔 조식처럼 예쁘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느 뷔페 못지않게 다양한 음식이 즐비했습니다.
잘 차려진 아침을 먹고 나면 손목에 채워진 밴드 색깔에 맞춰 사람들을 정돈해서 모터보트에 태웁니다. 이 여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빡빡하게 어깨를 대고 채워 않은 작은 모터보트가 파도를 올라타고 부숴가면서 몇 시간을 또 가야 하거든요. 물은 계속 들이치고, 잠을 청하기에는 자리가 편치 않죠. 한참을 가다 보면 '나중에는 리브어보드 같은 큰 배를 타고 천천히 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착할 때쯤 되면 항구에서부터 보트마다 같이 탑승한 가이드들이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합니다. 태국 악센트 가득한 영어로 아직은 바람소리가 가시지 않은 보트 위에서 뭐라 뭐라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금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이 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뭍에 도착하여 내리라고 하는 신호에 따라 내리고, 모여있으라고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면, 손목 밴드 색깔에 따라 당일치기 여행자들은 조금 큰 배로 갈아타고 바로 스노클링 투어를 떠나고, 숙박을 예약한 사람들은 섬을 조금 걸어야 나오는 방갈로와 텐트촌으로 안내해 줍니다. '이 사람들이 내가 무슨 투어인 줄 알고 어떻게 하려고 하지'라는 의문이 쌓이다 못해 막 터질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목적지에 도착을 해 있더군요. 전 세계 사람들이 오래도록 찾았던 관광 대국의 위엄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방갈로를 예약했습니다. 텐트보다 가격이 조금 나가기는 했지만, 캠핑을 별로 즐기지 않는 아내의 성향도 있고, 화장실이나 욕실을 다른 사람과 셰어 하는 것도 별로 내켜하지 않은 데다가, 방갈로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전기도 들어온다고 해서 카메라나 휴대폰 충전도 하는데 편할 것 같아서 그랬죠. 야간에 몇 시간 정도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은 '보통은 계속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면, 테이블도 있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조금 큰 투어용 배로 갈아타서 시밀란 제도의 다른 섬들도 구경 가고 스노클링도 떠납니다. 역시 물은 깨끗하고 아름답더군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도 많았습니다. 조금 큰 배에 앉아서 주변들 둘러보고 나서야 정신이 좀 들고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여기를 이렇게 많이 찾았다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말고 한국사람은 젊은 아가씨 한 팀 정도, 일본인 서양인 몇 명, 그리도 나머지 90%가 중국인이더군요. 투어용 선박에 탑승한 인원 대부분이 중국인이어서 그런지, 중국인들은 대놓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결혼식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시끄럽게 큰 소리를 지르고, 식탁으로도 사용하는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앉는다거나, 음식이 서빙되는 타임에 당연하게 순서를 무시하는 등 계속 신경 쓰고 있으면 괜히 저 혼자 휴가를 망칠 것 같아서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도 혹시 제가 다수에 포함되어 있을 때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저도 모르게 남들에게 함부로 대한적이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면 투어용 보트에서 식사와 간식을 하고 스노클링을 몇 번 더 한 뒤, 오후에 돌아가는 보트로 갈아타고 몇 군데 다른 섬을 구경한 다음 다시 항구로 돌아갑니다. 꾹 참고 머나먼 모터보트 여정을 버티고 나면 다시 처음 그 항구로 데려다줍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전에 도착한 항구에는, 어제 아침에 차려져 있던 것보다 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좀 요기를 하고, 짐을 찾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도 하나 딱 받아가지고 저희 드롭 위치가 적혀있는 차량을 찾아서 탑승하면 이 투어 프로그램이 끝이 납니다.
이틀간 긴 이동으로, 그리고 물놀이로 노곤해진 몸을 에어컨이 나오는 승합차 한쪽 구석에 구겨 넣고 나면 모터보트에서 청하지 못했던 잠이 솔솔 옵니다. 혹시나 내려야 하는 곳을 놓칠까 봐 대충 도착시간 즈음으로 휴대폰 알람을 맞춰놓고 잠시 졸다 일어나면 어제 새벽 떠날 때처럼 깜깜한 빠통 해변에 도착해 있더군요. 호텔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은 이미 든든하게 먹은 터라, 잠시 나와서 이런저런 푸드 텐트에서 간단한 스낵 몇 개 시켜서 맥주 한잔 마시고 들어가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1박 2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꿈같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를 자고 자고 왔으니 당일치기 여행보다는 여유가 있었지만 여전히 시밀란 바다를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더군요. 나중에 버킷리스트에 있는 시밀란 리브어보드를 꼭 한번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