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디지털 캠코더'를 버립니다.

스마트폰이 많은 물건을 못쓰게 만들었구나

by jim

주말 아침, 아직 해가 다 올라오지 않은 어수룩한 시간에 쌀쌀해진 거실로 나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립니다. 요즘 하는 일은 새벽 3시 정도에 일어나서, 슬슬 걸어서 사무실에 나가 4시 정도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주말에 몇 시간 늦잠을 잔다고 자도 결국 여섯 시면 일어나버립니다. 평일에는 매일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래도 추석 전까지는 주말에는 저보다 해가 먼저 올라와 있었는데, 벌써 한 해가 얼추 저물어가는지 요 근래에는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도 해가 조금 더 늦게 올라옵니다.


아직은 어둡고 쌀쌀한 거실에 잠시 앉아있다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물을 한잔 마시고 나니 오늘은 무언가 하나를 더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얼추 한 달이 되어가는데, 이제는 저도 모르게 조금 재미가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다가 잡동사니 서랍 깊숙한 곳에서 몇 번 쓰기는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손바닥보다 작은 디지털 캠코더를 발견했습니다. 아마 2008년 해외 파견 당시, 귀국을 얼마 남기지 않은 11월 즈음, 추수감사절 세일 코너에서 몇만 원 정도로 싸게 나와있어서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물건으로 기억납니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은 아직 없었고, 외국에서는 '마이스페이스'를 했고, 우리나라는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이었죠. 갤럭시 S1이 처음 나온 게 2010년이니, 아이폰 3~4 정도의 초반 모델도 2010년을 넘어서 우리나라에서 많이들 쓰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와 인터넷 연결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기 전까지는 '찍는' 것과, '올리는' 것은 별개로 구분된 행위였고, 각기 다른 기기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대대적인 확산은 어쩌면 스마트폰이라는 다양한 기능이 합쳐진 기기가 나온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유튜브는 2005년에 첫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6년에 구글에 인수가 되었죠. 요새는 방송사, 전문 제작사들도 모두 유튜브에 진출해 있고, 방송보다 더 퀄리티가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당시에는 홈비디오 수준의 영상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영상을 편집할 수 있을 정도로 프로세싱 파워가 좋은 컴퓨터들은 고가였고, 고화질의 디지털 영상을 촬영할 만한 장비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거리가 좀 있었죠. 구글의 전 세계적인 데이터센터도 동영상을 처리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수준이었고, 인터넷 속도도 지금보다는 느린 수준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버렸습니다. 그 디지털카메라로도 동영상을 찍을 수는 있었죠. 하지만 처리속도, 발열, 배터리 등의 문제로 몇 분 이상의 긴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제한되었습니다. 지금 유튜버들처럼 VLOG를 찍는다거나, 카메라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것을 촬영할 수는 없었죠.



앞서 이야긴 했던 것처럼 당시만 해도 '싸이월드' 시절이었기 때문에, 영상보다는 사진이 더 관심이 가는 분야였습니다. 딱히 이 캠코더를 살만한 이유는 없었는데, 그냥??% OFF라는 할인 문구에 혹해서 샀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 동영상을 한 번 찍어볼까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당시 컴퓨터에 편집할 만한 프로그램도 없었고, 편집 프로그램을 돌릴만한 성능의 컴퓨터를 또 사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해서 이 핸디형 캠코더를 제대로 써본 적은 없었습니다.


핸디형 캠코더라는 것이 그 가격대의 부품으로 조립된 그 당시 '적당한 성능'의 기계이다 보니, 결과물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물리적으로 카메라보다 작은 렌즈를 가지고 있다 보니, 조금만 어두워도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해상도가 더 깨지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런저런 이유로 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네요.


2010년대를 지나 스마트폰이 일상이 되고, 집에서 쓰는 적당한 가격의 랩탑의 성능이 제법 올라오면서 추억을 기록하는 방식이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초창기부터 스마트폰에 달려있던 카메라는 이미 2008년도에 구매했던 이 디지털 캠코더보다 성능이 좋았습니다. 이 물건을 자연스럽게 쓰지 않게 될 수밖에 없었죠. 가만히 보면 이 장비를 산 것은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주식'이 '전보다 싸다'는 이상한 이유로 매수한 것과 같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돈 몇만 원이었지만 말이죠.


앞으로 이런 소비를 주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연하게 한번 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불필요한 소비를 하거나, 물건을 들이는 것은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것일 뿐이니까요. 삶의 패턴이나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움이 안 되는 루틴을 만들기보다는, 불필요한 습관들을 정리하는 것이 더 여유롭고 성장 여력이 있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겠죠. 한번 써 볼 요양으로 쓰지 않은 물건을 늘리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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