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Surface
오랜만에 영화를 봤습니다. '딥 워터'라는 강렬한 제목에 스쿠바 다이빙 장비가 보이는 포스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이빙을 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공감하시겠지만, 물속에서 간단한 '장비'에 완전히 의존한 상태에서 각종 절차를 지켜가면서 통제되고 절제된 모험을 즐기다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곤 합니다.
10년 전에 '생텀'이라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스쿠바 장비를 메고 동굴 탐험을 하다가 벌어지는 재난 영화죠. 다이빙을 할 때 천장이 막혀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천지 차이입니다. 비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바로 물 밖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니 까요.
이번에 시청한 '딥 워터'는 '생텀'과 같은 대단한 모험이나 오지 탐사를 다룬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다이빙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라는 점에서 비슷한 긴장의 선을 가져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그 가벼운 호흡 한 모금이 없으면 몇 분, 몇 초 만에 생이 마감되는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영화입니다.
'생텀' 뿐 만 아니라 우주 재난영화인 '그래비티'도 이 영화와 맥을 같이 하는 영화입니다. 호흡 한 모금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니 말이죠.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일까요. 어벤저스를 비롯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우리가 본 적도 없는 악당들이나 우주 괴물들의 위협을 그립니다. 전쟁영화에서는 총포탄이 빗발치는 생지옥을 그립니다. 범죄나 공포 영화에서는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사이코패스부터 초자연적인 악령까지 다양한 공포의 대상이 나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위협과 공포가 공감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서울 수도 있고, 긴장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호흡은, 잠깐 1분만 숨을 참고 있어도 가슴이 턱 막히면서 등에 한줄기 땀이 흐를만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두려움'입니다.
물론 예전에 봤던 '생텀'은 당시 한창 유행했던 3D 스크린으로 제작되기도 했고, 제법 유명한 배우들 적잖게 출연한, 꽤 스케일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그에 비해 '영어가 아닌 언어로' 대화가 오가는 이 스웨덴 영화는 '유럽 영화스럽다'는 느낌이 배어납니다. 실제적으로 영화 속에서 제대로 연기를 하는 배우는 단 두 명이고, 그중 한 명은 구조 대상이기 때문에 실제 연기 비중이 크지도 않죠. 그 배우보다는 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의 연기 비중이 크기도 하고요.
스케일이 조금 작기 때문에, 이야기의 폭과 공간적 폭이 조금 좁기 때문에 초중반 전개가 조금 답답한 느낌도 있습니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조치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계속 품게 되죠. 사람이 당황하면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영화 속에서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바로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영화 속 주인공에 너무 익숙해졌던 것은 아닐까요.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이빙 자체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는 점이 영화에 더 몰입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들을 설명해주면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다이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계속 의문만 생기고 집중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바로 수면 위로 올라가면 안 되고 안전정지를 해야 하는지, 왜 에어포켓에서 호흡을 많이 하면 안 되는지, 왜 드라이슈트에 구멍이 나면 안 되는지 등등. 그래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히 갈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해양 재난 영화는 따뜻한 남쪽 나라 바다가 많이 나옵니다. 반면 이 영화는 아직 직접 가본 적이 없는 노르웨이를 보여줍니다. 그냥 노르웨이 어디 도시도 아니고, 한 겨울 설산을 마주하고 있는 깊고 깊은 물속을 말이죠. 앞서 이야기했지만, 주인공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미국식 접근이 아닌 유럽식 감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도 조금 다른 색깔로 풀어냅니다. 귓가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맴도는 것도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재난영화이긴 하지만, 이국적인 정취에 쌓여서 겨울바다를 보고 있자니 드라이슈트를 입고 유빙 다이빙이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하나 굳이 아쉬운 부분을 찾자면 '제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넷플릭스에 떠 있는 제목은 '딥 워터'이더군요. 깊고 깊은 바다에서 벌어진 사고를 다루는 영화로는 괜찮은 제목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 평이한 제목이어서 그랬을까요. 원래 영화의 제목은 'Breaking Surface'였습니다. 원래의 제목이 깊은 바닷속에서 벌어진 사고를 극복하고 '수면(Surface)'를 깨고 올라와야(Breaking)했던 주인공의 싸움을 더 잘 표현하고 있는데, 번역 제목인 '딥 워터'는 너무 직관적이고, 고민 없어 보이고, 영화 전체를 담고 있지 못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넷플릭스에 동명의 드라마가 이미 있는 상태여서 제대로 찾아보기도 어렵기까지 하네요.
물론 저에게 다른 번역 제목을 지으라고 한다고 해도 딱히 뾰족하게 떠오르는 제목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브레이킹 서피스'라고 한국어로 적어 놓으면 왠지 더 이상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말이 참 다양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표현의 한계도 명확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