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시한부 인생의 블랙코미디 로드무비
천국의 문을 두드린다는 Knockin' on Heaven's Door라는 제목을 보면 어릴 적 여기저기를 통해 들었던 록 음악이 떠오를 뿐, 동명의 영화가 있는 줄은 사실 모르고 있었습니다. 노래가 나온 것이 '87년이고, 영화가 개봉한 것이 '97년이라고 하니 아마 음악의 영향을 받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틀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평상시 같으면 몸은 집에서 쉬고 있으나, 머리와 마음은 벌써 출근해 있는 것이나 다음 없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시간이었겠지만, 이번 주는 추석 연휴로 아직도 달콤한 휴식의 한복판에서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화려한 특수효과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영화일 수 있으나, 생각해볼 만한 소재, 적당한 블랙코미디, 과거로의 추억, 그리고 독일, 유럽을 배경으로 한 로드 투어라는 점에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주인공들과 함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즐겼습니다.
확실이 유럽의 로드 투어는 미국의 로드 투어와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올해 보았던 기억에 남는 미국의 로드무비 '델마와 루이스'도 삶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가는 사람들의 막다른 길을 보여주었는데, 일단 미서부의 광활한 자연의 스케일이 화면상으로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보여주는 방식이나 보이는 것들이 많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유럽의 로드무비는 차도 아기자기하고, 길도 아기자기하고, 이야기하는 방식도, 제가 좋아하는 '아재 개그' 느낌의 블랙코미디이더군요.
배경은 꽤 오래전입니다. 97년이면 지금 유럽 각지에서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유로화가 있기도 전입니다. 영화 속 은행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르크' 단위를 쓰고 있는 것이 시절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차량 번호판에 EU 마크도 없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유럽은 유럽인데 제가 가본 유럽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길을 떠나는 여행은 항상 즐겁습니다. 물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무작정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두 젊은 사내의 일탈은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되는 도망이었습니다.
이런 소재는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재미있게 잘 풀어냈습니다. 아기자기한 화면 구성도 좋습니다. 주인공의 의상 색깔을 대조적으로 가져가서 캐릭터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연청색의 메르세데즈 스포츠카와 핑크색의 캐딜락의 색상 대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스케일도 크지는 않지만 무엇하나 신경 쓰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 같달까요.
남들 다 보는 뻔한 영화 위주로 보다 보니 사실 지금까지 딱히 기억에 남는 독일 영화는 없었습니다. 아마 이 영화가 당분간은 최고의 독일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