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에서 자고 일어나 태평양 바닷속으로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난날이지만 가끔씩 하와이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사이판에서 오픈워터를 처음으로 취득하고, 필리핀 세부로 처음으로 다이빙만을 위한 여행을 다녀오고, 보라카이에서 어드밴스드 과정을 배우고, 강원도, 제주도, 울릉도 등 국내 몇 군데에서 다이빙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던 차에 큰 맘먹고 시간을 내서 (지갑도 열어서)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물론 하와이라는 것이 워낙 전 세계적으로 유명 여행지이다 보니, 다이빙만 계획하지는 않았고 호놀룰루 국제공항과 와이키키 비치가 있는 오아후 섬에서 하루, 마우이 섬으로 이동해서 2일 정도만 다이빙을 하고 남은 일정들은 다른 관광과 체험으로 채웠습니다. 다이빙을 다룬 글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겠지만, 쇼핑도 하고, 말도 타고, 이것저것 정말 할 것 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은 지상낙원이 바로 하와이이지 않을까요.
하와이 오아후에서의 다이빙을 시작으로, 드디어 아시아 로컬(?) 다이버를 벗어났다고 아내와 함께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진출해서인지 다이빙을 계획한 날 아침부터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더군요. 보통 필리핀에서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스탭이 숙소로 태우러 왔습니다. 물론 별도 비용 없이요. 하와이를 비롯해서 이후 경험한 미국 다이빙 샵이 다 마찬가지였지만, 직접 약속된 시간까지 해당 장소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다이빙할 때는 거의 일행이 없거나, 보통 한국분, 가끔 외국인이었는데, 우르르 모여있는 수많은 다이빙 참가자들 중에 아시아인은 저희 부부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공기통은 물론이고, BCD 등 장비들도 모두 스태프들이 준비해주었던 것에 비해, 여기서는 내가 쓸 모든 장비를 직접 옮겨야 했습니다. 아내가 공기탱크까지는 제법 무거워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만에 하는 다이빙이었지만 보통 다이빙 전에는 기내에서 PADI 교육영상을 다시 한번 정도 시청하기 때문에 장비 결합 및 조작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다이빙을 경험했던 강사나 스태프분들은 현지인이거나, 현지인만큼 새까만 동양분들이었는데, 이 일정에 스태프들은 다 백인이었고, 계속해서 사진기를 들이대는 발랄한 금발의 아가씨도 있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다이빙인데,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고, 제가 직접 해야 될 역할도 달라지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던 기분이 들더군요.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긴 했지만, 필리핀이나 국내 다이빙이 그리워지는 포인트도 있었습니다. 배는 크고 좋았지만, 간식은 그냥 크래커 몇 종류로 딱히 손에 가지 않더군요. 필리핀에서 다이빙 끝나면 한 점 먹고 쉬라고 썰어주던 망고가 떠오르고, 제주도에서 다이빙 중간 쉬는 시간에 먹었던 자장면에 생각났습니다. 필리핀에서 숙식과 이동이 다 포함된 것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예약한 당일치기 다이빙이었는데, 끝날 때쯤 되니 수고한 스태프들을 위해서 팁을 꼭 남겨달라고 합니다. 문화의 차이겠고, 물가의 차이겠지만 두사림이 수십 불을 또 팁으로 낸다는 게 아직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는 않더군요. 저도 모르게 계속 이전에 했던 다이빙과 '가성비'를 따지는 모습에 '하와이까지 와서 뭐하는 짓이야!'라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이빙 자체는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볼 수 있었던 것들은 작은 리프 샤크였고, 이 동네에서 유명한 게 바닷장어인지 가이드가 계속 장어 머리만 찾아서 보여주더군요. 아! 바닷속에서 거북이를 보았던 게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매번 비늘과 지느러미로 둘러싸인 물고기들만 보다가 유유히 헤엄치는 거북이를 보니 매우 신기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처음 거북이를 봤다고 하니 다들 축하해주더군요. 거북이는 평화를 상징하니 앞으로의 인생에 평화만 가득할 거라도 좋은 이야기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게 시작이었을까요? 굳이 다이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와이에서는 이런저런 해변에서 계속 거북이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평화로운 나날이었습니다.
오아우에서는 서핑도 하고 말도 타고 쇼핑도 하고 분주하고 알찬 여행을 보냈습니다. 다이빙은 하루밖에 안 했지만, 워낙 하와이 바다가 좋다 보니 굳이 다이빙을 여러 번 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마우이로 넘어가면 더 좋은 포인트가 있다고 해서 2일을 예약해 두었거든요.
오아후에 있는 동안 하루는 날을 잡고 하나우마베이에 갔습니다. 지형에 둘러싸여 파도 없이 잔잔하게 이루어진 산호바다로 유명한 곳입니다. 물이 얕고 물살도 없어서 온 가족이 놀기에도 좋은 곳 같았습니다. 저희는 오후에 다른 일정도 있고 해서 해 뜨자마자 아침 일찍 눈곱만 떼고 출발했는데,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입장료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돈도 아끼고, 아침 햇살도 부서지듯 찬란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산호로 구성된 바다이다 보니 얕은 물에도 물고기가 엄청나게 많더군요. 아무래도 유명한만큼 손상도 많이 올 텐데, 나중에 다시 오더라도 이런 곳이 계속 더 보존되고 오히려 더 잘 가꾸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여기적 좋은 해변이 참 많았습니다. 세부에서는 해변이 별로 없어서 여행하다가 좀 쉬고, 한적한 여유를 느끼기가 마땅치가 않았었는데 하와이는 차만 주차하면 다 쉴 곳으로 보였습니다. 오아후 북부 노스쇼어 쪽 여행을 하다가 우연찮게 반나절을 보낸 푸푸케아 비치도 참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모래사장이다 보니 물속에서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깨끗한 바다에서 북적이지 않고 평온하게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우이섬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에 꺼내어 보겠지만, 그곳에서도 여기에서도 바다가 좋아서 참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들어가 있어도, 나와 있어도, 바다가 주는 그 편안함은 다른 것에 비할 수가 없겠죠. 그래서 하와이를 태평양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