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후에서 보다 좀 더 멀리, 좀 더 깊이
2주 간의 하와이 여행, 기간으로 보면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길 수도 있는 일정입니다. 몸과 마음과 (지갑도) 여유 있는 분들에게는 짧고 바쁜 일정이겠지만, 휴가 며칠 쓰기 어려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사실 은퇴 전까지 기회가 있을까 싶은 기간이기도 하고요.
하와이는 크게 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하와이 여행의 관문이 되는 호놀룰루 국제공항과 유명한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오아후, 그리고 마우이, 카우아이, 가장 큰 섬인 빅아일랜드까지 말이죠. 물론 구분하시는 분들의 기준에 따라 마우이 옆에 조금 작은 섬인 몰로카이와 라나이도 '큰 섬' 대열에 끼우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건 섬이라고 하면 자동차로 아무 때나 갈 수 없고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숙소도 옮겨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언제 또 하와이에 가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 가보자는 욕심' 보다는 '갈 수 있는 곳만 그래도 좀 여유 있게 다니자'는 생각으로 어차피 항공기로 들려야 하는 오아후와, 깨끗한 바다를 가지고 있다는 마우이, 이 두 개의 섬을 가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아후에서는 서핑과 쇼핑, 다양한 관광 위주로 여행을 하고 다이빙도 하루 했었죠. 마우이에 와서 보니 아무래도 외지인들이 편하게 다니는 곳이고 국제공항이 있어서 그런지 마우이에 비해서는 '시내' 느낌이었고, 마우이는 조금 '한적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여행 전문가는 아니지만 마우이까지 이동하는 여정을 짜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와이 항공사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하와이에 오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건지, 아니면 섬 간의 이동이 대수롭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천-오아후(호놀룰루) 왕복 티켓 가격과, 인천-오아후 경유-마우이 티켓 가격이 똑같더군요. 분명히 인천-오아후 티켓을 끊고, 오아후-마우이를 따로 구매하면 돈이 더 드는데 말이죠. 암튼 공짜 같은 느낌의 티켓까지 구했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우이 여행을 즐겼습니다.
마우이에서는 이틀간 다이빙을 진행했습니다. 예약할 때부터 원하는 포인트를 남길 수 있는 칸이 있더군요. 작은 상어나 레이 종류들은 사이판이나 필리핀에서 제법 보았고, 거북이도 얼마 전에 오아후에서 만났고, '대물'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다른 다이버분들이 빠뜨리지 않는 '만타 레이'를 볼 수 있는 포인트가 마우이에서도 있다고 하길래 그 포인트를 포함하여 예약했습니다.
아쉽게도 바다 상태 문제로 만타 레이를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이틀 모두 가볼 수 없었습니다. 뭐 강사, 가이드, 선장님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못 간다고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죠. 미국에서 하는 다이빙이 그렇지만, 소수 인원만 다니는 것도 아니고, 큰 배에 여러 명이 우르르 다니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와이여서 그랬을까요. 별로 서운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각 포인트들은 포인트대로 좋았고, 환경보호 내용이 꼭 들어가 있는 각 포인트별 다이빙 전 브리핑 내용도 좋았습니다. 첫날에는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구에서부터 집에 돌아가는 내내 '아쉬워하지 말고 내일 또 즐겁게 다이빙하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쌍무지개가 펼쳐있었습니다.
십수 년 전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체험 다이빙을 할 때면 손님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보여주기 위해 빵가루 등을 가지고 피딩을 한다거나, 체험의 일환으로 산호초를 만져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매 다이빙마다 그런 행위를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에 강조를 하더군요. 특히 거북이나 몇 가지 종류에 대해서는 손만 닿아도 벌금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사진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고 주의에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때 프랑스 분이셨나, 스위스 분이셨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아들과 여행을 오신 신사분께서 'Touch with your eyes'라는 표현을 하면서 미소를 지어주시더군요. 아들이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다이빙을 부자간의 취미로 하고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다 헤어진 웨트슈트가 그 왠지 더 멋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때 배운 고급진(?) 저 표현은 나중에 다이빙할 때마다 되새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난파선 포인트가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가라앉아 있는 배가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산호초로 가득한 곳에서는 다 거기가 거기 같아 보여서 혹시 길을 잃을까, 가이드를 놓칠까 걱정하면서 인생의 버디인 아내 뒤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가며 다이빙하기 바쁜데, 난파선 포인트는 누가 봐도 길을 잃을 것 같지 않은 구조물이 떡 하니 있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복잡한 구조물 사이를 요리조리 헤쳐나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물고기들을 찾아내는 것도 좋고, 볼거리가 많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도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러고 보면 사이판에서 오픈워터를 마치고 첫 펀 다이빙을 갔던 폭격기 포인트가 다시 생각나네요. 지금 다시 가면 더 재미있는 다이빙이 될 것 같습니다.
비록 기대했던 만타레이는 보지 못했지만 첫날은 물 위에서 무지개가, 두 번째 날은 마지막까지 배웅을 해준 거북이 덕분에 아내는 인생 샷도 남기고 행복한 기억만 가득하게 하와이에서의 3일에 걸친 다이빙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우이가 아무래도 오아후보다 덜 발달한 탓이겠지만, 다이빙으로 갈 수 있는 깊은 바다 말고 장비 없이 편하게 수영할 수 있는 해변에도 좋은 수영, 스노클링 포인트가 많았습니다. 오아후에서도 좋았지만, 더 깨끗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Black Rock Beach라고도 불리는 Ka'anapali Beach는 수심도 충분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스쿠바 다이빙하시는 분들도 많고, 물 위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바위 근처로는 물고기도 조금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모래사장 연결된 바다여서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숨을 참고 깊이 들어가서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허벅지 터지도록 올라오는 재미를 느끼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비치에서부터 저렇게 수영을 하면서, 해안절벽을 타고 조금씩 조금씩 나가기를 수십 분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목도 마르고 살짝 지쳐서 돌아오기에 조금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바글바글한 우리 해운대 바닷가에서 사람 피해 다니기 바쁜 여름휴가에 익숙해져 있다가, 온 바다를 전세 낸 것처럼 수영을 하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더군요.
저는 프리다이빙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럴만한 신체적인 능력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경험을 통해 '왜 맨몸으로 다이빙을 하는 줄 알겠다'를 조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뭔가 내 호흡에만 집중하고, 바닷물 한 방울 한 방울을 온 피부로 느끼는 그 기분 말이죠.
장비를 메고 들어가는 스쿠바 다이빙에서는 내 호흡소리를 나에게 들으면서 집중했다면, 숨을 참고 들어간 물속에서는 내 기도에, 폐에 차있는 공기 한 모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유가 생긴다면 프리다이빙도 안전하게 해 볼 수 있도록 배워보고 싶더군요.
카아나팔리 비치에 갔던 날도 계속 즐거운 여행을 하라는 하와이 마우이의 인사였는지, 돌아오는 해변까지 거북이가 배웅을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내가 가장 기억에 남아하는 수영 명소는 아히히 코브입니다. 돌로 잔뜩 둘러싸여 있는 지형이어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갔던 날은 지나가는 비였지만, 한두 방울 떨어지고 조금 바람이 부는 날씨여서 아무도 없이 오롯이 둘이서 저 해변을 독차지하고 수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날이 좀 쌀쌀하다 보니 물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물 밖에서 보는 바다가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까만 돌멩이 바다에 이런 형형 색색의 물고기들이 가득할 수 있을까요. 조금 흐린 날씨였는데도 물고기들이 선명한 것이 더 좋은 날 한번 더 와보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모래바닥이 아닌 복잡한 지형이다 보니 물고기들이 많았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노클링을 했었죠.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우마 베이 중상급자 코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물고기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깊이도 있고 조금씩 조심해 가면서 수영해야 할 것들도 있고 해서 말이죠. 두 곳 모두 딱 한 번밖에 못 가본 곳이라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하나우마 베이보다 재미있는 점도 있고, 조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와이에서 다이빙도 하고, 서핑도 하고, 쇼핑도 하고, 관광에 사진도 많이 찍고, 푹 쉬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다 좋을 수는 없던 것일까요. 아니면 저도 모르게 이렇게 하와이를 떠나고 싶지는 않아서 그랬을까요. 국제선을 타기 위해 오아후 호놀룰루로 가는 로컬 라인을 시간 맞춰 잘 탔는데, 항공기에 문제가 생겨서 기다리다가 저희를 포함해 환승이 급한 승객들 일부를 다른 항공기에 옮기는 과정에서, 저와 아내, 그리고 아내의 가방만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제 가방은 도착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흔한 일인데, 당시만 해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무척 당황했었죠. 그래도 여행을 다 마치고,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말이지, 여행 초반에 외국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죠. 저의 걱정과는 다르게 보통 가방 다 잘 찾아서 며칠에서 길어도 1주일 전후로 집으로 가방이 도착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안내직원분의 말씀을 듣고 분실신고서를 쓰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가방 없이 집에 돌아오니 정리할 게 없는 것은 좋더군요. 하와이, 저에게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