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정말 정말 억울한 순간이 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가. 누군가는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다. 길을 걷다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는 어이없게도 입덧이 그랬다. 나는 병적으로 심한 입덧인 임신오조를 겪었다. 극도로 심각한 임신 중의 구역 및 구토를 의미하는 임신 오조(hyperemesis gravidarum)의 발생률은 전체 임신의 0.3~3%로 알려져 있다. 내 주변 통틀어 나보다 심한 사람이 없었으니 입덧으론 금메달감.
사람이 신체적으로 허약해지면 정신적으로도 허약해지더라. 임신 중후기가 되도록 음식을 제대로 못 먹고 토만 헤대다 보니 멘탈이 탈탈 털렸다. 때는 입덧 때문에 두 번째로 입원하고 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켰다.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임신한 쇼핑몰 사장님들이 배가 불룩한 채로 모델일도 계속하고, 미팅도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횡무진했다. 사진 밑엔 댓글이 가득 달렸다. "언니~임신하시고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요! 엄지 척! "
멋있는 건 둘째치고 샘이나 미칠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은 임신이 별로 안 힘든가? 나만 이래? 난 새끼손가락만 한 일도 토막 내 겨우 하고 있는데. 마침 먼저 출산해 아기를 키우는 친구가 전화가 왔다. 임신 이야기로 수다 꽃을 피우던 중 친구왈, "난 임신체질인가봐, 별로 안 힘들었어. 또 하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친구가 별 뜻 없이 한 말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니, 왜 나만 이래? 내가 인생을 너무나 무탈하게 살아와서 신과 함께에 나오는 염라대왕이 나를 입덧지옥에 던진 거야? 나는 전화를 끊고 난 후, 잘 버텨온 것이 무너져 내리듯 엉엉 울어버렸다. 억울해 억울해.
그때 알았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내 친구처럼 입덧이 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건만, 나는 막달까지 토를 하는 일명 '토덧'이 왔다. 먹어도 토, 안 먹어도 토를 하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괴로운지 나의 영혼까지 멱살잡고 꺼내는 것 같았다. 토를 하루에 10번은 족히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입덧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니 횟수가 하루 5-6번으로 줄었으나 고통은 여전하다. 그래도 입덧약이 없었다면 난 애 낳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으리라 생각한다. 궁금해 찾아보니 실제로 입덧으로 죽었다는 외국 작가도 있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둘째를 가진다는 소릴 하면, 남편한테 싸대기를 날려 달라고 했다. 당시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증상을 적어놓기도 했다.
토덧 증상은 다음과 같음.
-담즙까지 토하다 보니 혀가 노란색으로 변함.
-수분이 부족해 온 피부가 하얀 비늘로 덮임
-샤워 할 때마다 물냄새 맡고 토함 등
입덧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임신초기였던 12월의 시린 겨울이었다. 학교에선 기말고사와 기말 과제를 끝으로 한 학기를 종료하는 시기이다. 당시 난 준투병생활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냈다. 중요한 기말 과제가 2개나 남았는데. 머릿속에서는 통계 프로그램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서재방에 걸어갈 수가 없어서 눈물만 삼켰다. 한 과목 이상은 A+을 받겠노라 호기롭게 시작한 학기었다. 결과적으로 대학원 석박 전체 학기 통틀어 최악의 성적표로 낙인되었다.
학교 변기는 우리 집 변기와 생긴 건 비슷한데, 토할 때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누군가 바로 전에 쓰고 간 곳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도 그렇고, 옆칸에 누가 있을까 봐 더 그렇다. 음소거로 토할 수도 없고. 어쩌다 들킨 날엔 걱정이 가득담긴 눈을 한 쌤들이 괜찮냐며 위로해준다. 학교에 화장실이 2개가 있는데, 가까운 화장실은 유독 1년은 묵혀둔 음식 쓰레기 냄새가 났다. 신기한 건 출산 후에는 아무 냄새도 안 나더라. 아무튼 그 화장실을 지나갈 때마다 숨을 멈춰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강했는지 나는 아직도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애용한다.
유독 밥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올라와서 한식은 쳐다보지도 못 했다. 전생에 서양인이었던 것일까. 그런데 연구실 어딘가에서 갑자기 밥 짓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범인은 바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우리나라에서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유견문'에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인들은 커피를 마신다'고 기술하였다. 내가 보기엔 커피는 숭늉이 맞다. 원료가 쌀이 아니라면, 도무지 이런 냄새가 날 리 없다. 나는 또다시 숨을 멈추고 조용히 밖으로 대피했다.
임신 후기로 접어들자 토덧이 좀 가라앉은 대신 무시무시한 침덧이 오셨다. 그건 마치 주식이 바닥일 거라 생각하고 샀는데, 바닥 밑에 지하 2층이 있고 3층이 있는 격이었다. 입 안에 침이 있다 싶으면 역해져서 구역질이 나온다. 침이 고이는 느낌만 들었다 하면 구역질에 토를 하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렇다고 혀를 잘라버릴수도 없지 않은가. 인터넷 보니까 종이컵을 들고 다니면서 침을 뱉었다는 사람들이 있길래, 따라 해 봤다가 점심에 먹은 음식이 올라왔다. 컵에 담긴 침 냄새가 이리 역한데 어떻게 참았단 말이지. 그래서 난 항상 티슈를 들고 다니며 침을 묻혔다. 연구실이든 강의실이든 버스 안이든 침이 조금 고인다 싶으면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냈다. 이 때, 향을 자랑하는 티슈는 절대 안 된다. 오로지 무색무취 퓨어 티슈만이 나의 역함을 발동하지 않는다. 나와 티슈야 말로 완벽한 물아일체었다.
입덧의 결과물은 이리 사랑스럽다
입덧의 장점도 있긴 하다. 입덧이 심할 수록 유산의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믿었기에 안심이 되었다. 아기천사는 '내가 여기 있어요' 하며 존재감을 사정없이 알렸다. 나는 하염없이 허약해져 가는데 뱃속의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커져있던 태아의 모습이 어찌나 의젓하던지. 몸은 힘들고 머리는 바빠 아기에 대한 애틋함을 잘 못 느끼다가도 배가 점점 커지는 귀한 경험에 마음이 차오르기도 했다.
피골이 상접한 내 몰골을 보고도 학교에 계속 나오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출산 한달 전까지는꾸역꾸역 나갔다. 한 시간 만에 패하고 집에 돌아오더라도 꾸역꾸역 나갔다. 나는 굳이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냥 하고 싶은 마음, 이 의향성이 지리한 학업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은 또 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