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 해체 및 미부양 사유서

​- 몸만 살려두었다고 부모는 아니다 -

by 날아올라


엄마가 대학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받던 어느 날,

전화를 걸어 불쑥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온도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 그래.." 하고 무미건조하게 받아칠 뿐이었다.


치료를 받고 호전되어 과거의 행동들을 뉘우치며 내게 '사랑한다'라고 말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병증 속에서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간호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병리를 이해하게 된 후, 내 안에서 엄마에 대한 분노는 휘발되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그저 정신적으로 병들어 평생을 망친 '불쌍한 한 여자'에 대한 연민 비슷한 객관적 시선뿐이었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는 내 딸로 다시 태어나서, 내가 주는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상처 없이 살다 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간호사이자 다른 생명의 엄마가 된 내가, 나를 학대한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애도였다.




진짜 절연을 위해서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 있었다. 나를 방치했던 또 다른 가해자, 아빠였다.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삼켜왔던 질문을 던졌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때렸을 때, 아빠는 왜 엄마를 치료받게 하지 않았어? 차라리 나를 보육원에 보내지 그랬어. 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냐고! 나 정말 많이 맞고 컸다고…!"


울먹이며 쏟아내는 내 절규에, 오히려 화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너희 엄마가 저렇게 된 게 나 때문인 줄 아냐? 아니야. 너희 엄마는 결혼 전부터 그랬고, 나한테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려서 한 결혼이야. 그리고 너희 오빠는 맞아서 뼈도 부러졌었어!" 그 한마디에 내 영혼은 다시 한번 살해당했다.


오빠는 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으니, 네가 당한 고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인가? 명색이 아빠라는 사람이 자식들의 상처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뼈가 부러지지 않았으니 내 영혼이 산산조각 난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잔인한 선고에, 철저히 투명 인간이 되어 내 존재마저 통째로 부정당하는 서늘한 절망을 느꼈다. 평생을 허덕이며 살려달라 외쳤던 내 비명 소리가 그에게는 단 한 번도 닿지 않았음을, 삼십 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아빠도 똑같은 가해자야. 폭력을 보고도 방치한 거, 방임도 명백한 아동학대라고! 어차피 가족이라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었어. 당신이 선택해서 한 결혼이니, 당신이 끝까지 엄마를 책임지는 게 맞아. 앞으로 제발 연락 끊고 살자. 더 이상 내 인생에 연락하지 마." 전화를 끊고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다 알고 있었구나. 난 그냥 철저히 방치된 거였구나.'


아빠는 살려달라고 매달린 아내를 온전히 살려내지도 못했고, 그 아내 밑에서 죽어가는 자식들도 지켜내지 않았다. 밥만 먹여준다고 부모일까. 내 입장에서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맞아 죽어 있었다.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매일 밤 공포에 떠는 것보다 나았을 테니까. 아빠는 나의 '몸'만 살려두었을 뿐, '영혼'은 기꺼이 죽게 내버려 뒀다.


2022년 11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던 나는 마침내 가족과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키고, 연말정산 부양가족 등록에서 이름을 지우며 행정적인 끈마저 모두 잘라냈다. 이것은 뱃속의 내 아이와 '진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임산부의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 것이 왔다.
아빠의 사망 소식을 전해준 건 다름 아닌 새언니였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새언니는 연애 시절부터 말을 놓고 지내기로 한,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새언니는 내가 가족과 연을 끊고 출산했을 때도, 혹여나 내 평화로운 일상에 누가 될까 봐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축하 문자를 보내주던 배려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멀리 광주에서 출산했을 때 내가 서현동까지 와주었던 기억이 고맙다며, 대견하고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나를 축복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3월. 우울증의 늪에 빠져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몹시 조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여보, 놀라지 말고 들어. 처남댁(새언니)한테서 내게 연락이 왔어." 현재 내 심리 상태가 위태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원인은 폐암 말기.


지난 2월 구정 무렵에 발견해 채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오빠 부부가 엄마를 모시게 되었는데,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다 내 소득 때문에 거절당해 '미부양 사유서'가 필요하다는 부탁도 함께였다. 직접 말하기 미안하고 어려웠던 새언니가 남편을 통해 어렵게 전해온 연락이었다.


언젠가 이런 연락이 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직후, 내 안에서 솟구친 첫 감정은 슬픔이나 애도가 아니었다. 기막힘과 분노였다.


가장 먼저 분노가 향한 곳은 오빠였다.

예전부터 그렇게 건강검진 좀 받게 하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아빠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게 분명했다. 엄마가 검진을 받을 때 한 번만 챙겨서 받게 했어도, 이렇게 허망하게 말기까지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더 기가 막힌 건 아빠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암 진단을 받고도 생검(조직검사)을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과거 내가 억지로 조언하고 챙겨서 가입해 둔 보험이 있었다. 생검만 받으면 암진단금을 수령해 남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아빠는 그마저도 거부한 채 떠났다. '죽는 순간까지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남겨진 가족의 무게는 안중에도 없는 아빠의 옹고집.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이기심에 나는 진심으로 넌더리가 났다.


사유서를 써달라는 부탁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새언니의 간곡한 부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서류는 그들과 법적으로,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남남이 되었음을 국가로부터 공인받는 마침표였으니까. 해당 시청으로 보낼 '가족관계 해체 및 미부양사유서' 양식을 내려받았다. 빈칸을 채워 내려가는 내 손끝으로 과거의 기억들이 활자가 되어 박혔다.


가족관계 해체 및 미부양사유서

000과 000은 가족관계 명부상 부와 모로 직계혈족에 해당하여 제가 법적인 부양의무자로 등록되어 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받은 고통이 너무 커 부양할 수 없는 사유에 대해 제출하는 바입니다.

1. 가족관계 해체 배경
결혼 전부터 어머니 000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애당초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조현병에 대하 이해가 낮았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중략 -
이러한 사유로 저희 남매는 부모님께 어떠한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없었고, 정상적인 가족관계는 불가했습니다.

2. 가족관계 해체 원인과 시점
위에 기술한 바처럼 절망적인 가정상황에서 오빠 000은 청소년 시절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님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혼자 열심히 공부하며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 중략 -
제가 이렇게 혼자 어렵게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동안 오빠 000은 부모님께 관심조차 없어 절연하게 되었고,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 제가 임신 중에 아버지, 어머니와도 절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2022년 11월이며 이후 가족의 모든 연락과 전화를 차단하였습니다.

3. 현재 부양거부에 대한 의사여부
어린 시절 어머니 000에게 당한 언어적, 신체적 폭력은 제가 지금의 나이가 되어도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마음의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 중략 -
낳기만 했다고 다 부모가 아닙니다.
'차라리 나를 보육원에 보내지 왜 이렇게 때릴까...'
절망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어린 시절은 폭력과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어머니의 병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았지만, 어느 순간 저의 정신은 피폐해졌고, 지금은 우울증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저를 갉아먹어 가면서까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도 많이 지쳤고, 이러다간 내 인생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것 같아 앞으로는 아버지, 어머니를 부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4. 결어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가정사로 공부상 수급신청자의 자녀로 되어있으나 사실상 가족관계가 해체되어 경제적으로 지원 및 연락한 사실이 없으며 앞으로도 부양하고 싶은 의사가 없습니다.
가족과 절연할 수밖에 없는 제 가정사를 헤아려주시길 바라며 가족관계 단절에 대하여 위와 같이 소명서를 제출하오니 책정 및 보장비용 징수 대상자 결정 시 고려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상기진술 내용은 거짓이 없음을 신고합니다.

00 시장 귀하


서류를 작성해 보낸 후, 통화를 하던 새언니가 내게 말했다.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그 말에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새언니의 문자가 도착했다.
"사유서 읽으니 눈물이 흐른다.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우리가 다르게 만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 잘 지내." 나를 낳아준 부모도 내팽개쳤던 내 상처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알아주고 함께 울어주었다.


'우리가 다르게 만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그 한 문장이, 서류상에 질기게 묶여 있던 천륜이라는 지독한 굴레를 내 손으로 찢어발기게 된 비극을 위로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낳아준 부모를 버릴 수 있느냐"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도 '내가 나쁜 딸인 걸까' 속삭이는 죄책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그렇게 해야지만 살 수 있었다.




피로 얽힌 서류의 잔해는 생각보다 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언니는 다시 남편을 통해 조심스레 연락을 해왔다.


문제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LH 임대주택이었다. 명의자였던 아빠가 사망하면서, 엄마가 쫓겨나지 않고 그곳에 계속 거주하려면 자녀들이 엄마에게 거주권을 위임(상속 포기)한다는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새언니는 나에게 직접 와서 서류를 작성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처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실 그 임대주택 보증금의 3분의 2는 내 돈이었다. 보증금이 오를 때마다 아빠는 나에게 연락을 했고, 결국 인상분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당장 내게 돌려줄 돈이 없고,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려니 받아주는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 돈도 많이 드니 내게 거주권 위임을 부탁한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가슴속에서 서늘한 복수심이 고개를 들었다. 과거, 엄마가 검진결과상 당뇨로 입원치료가 필요했을 때였다. 오빠에게 연락했지만, 그 절박한 SOS를 차갑게 거절했다. 혼자 발 동동 구르며 피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참담함. 오빠에게 그 기분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서류를 작성해 주지 않아 당장 엄마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을 때, 벼랑 끝에 몰린 그 막막함과 절망감을 오빠도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안 해주고 싶다"며 그 이유를 쏟아냈다.
하지만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우울증으로 뾰족해진 나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여보, 해주는 쪽으로 좋게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이 서류만 마무리되면 정말로, 다신 연락할 일 없을 거야."


남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직접 가서 서류를 작성해 주었다. 서류에 서명하며 그들에게 분명히 못을 박았다.
"오빠를 위해서 해주는 게 아니야. 그래도 나를 낳아준 분이니까,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진짜 마지막이기에 동의하는 거야."


며칠 뒤, 출근하는 나를 데려다주는 남편의 차 안에서, 오랫동안 쥐고 있던 마지막 미련마저 툭 내려놓았다. "여보. 나중에 그 집 보증금 돌려받게 되면, 내가 낸 돈은 그냥 새언니 다 쓰라고 전해줘.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하는 새언니한테, 시부모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해줘. 피땀 흘려 번 돈이지만, 이제는 그 돈에 묻은 지독한 가족의 냄새마저 남김없이 털어내고 싶어. 그깟 보증금 없이도 우리 둘만의 힘으로 충분히 단단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내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 돈이야 당신이랑 내가 또 열심히 벌면 되니까."


나의 상처를 유일하게 알아주고 함께 울어주었던 동갑내기 새언니.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가졌던 그 사람을 위한, 마지막 배려이자 완전한 결별 선언이었다.


"그리고 여보, 나 이제 전화번호 바꿀 거야. 그러니까 여보도 이 연락을 끝으로 더 이상 새언니랑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 내 상처 때문에 중간에서 당신도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고마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유난히 선명했다. 남편의 따뜻한 손을 잡고, 평생 옭아매던 지독한 사슬을 마침내 끊어냈다. 미움도, 분노도, 알량한 보증금에 대한 권리도 모두 그곳에 던져버린 채.


그렇게 나의 원가족, 그들과의 인연은 영원히 끝이 났다. 살기 위해서. 전혀 '다른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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