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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Oct 17. 2021

6시간 동안 8시간의 업무를 하는 방법

100% 손해인 거 알면서도 단축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출산 후의 복직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2시간 단축근무를 하겠다고 팀장님께 말씀드렸었다.


튼튼이를 봐주시는 베이비시터 선생님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보시려면 내가 오전 9시까지 및 오후 6시부터는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통근시간은 딱 1시간이라 10시 출근, 5시 퇴근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원하는 시간대에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를 다닌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만약 단축근무가 없었더라면 나는 결국 휴직을 쓰고 아기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 복직을 했을 거다. 사 선배들 말씀을 들어보면, 단축근무가 생긴 지가 얼마 안 됐다고 하더라. 내가 입사하고 나서 생겼다고 하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군. 


다만, 원래 받던 월급에서 2시간만큼이 사라지는 일은 상당히 큰 일이었다. 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면 좋으련만. 회사는 절대 그렇게 일을 줄여주는 곳이 아님을.


정상근무 때에도 벅차서 한 달에 두어 번은 특근을 해서 밀린 업무를 정상화시켰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2시간씩 시간이 사라지니 매일매일 일하는 기분이 뭐랄까, 숨이 막힌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들도 해치워야 하고, 2시간씩 밀려서 미해결 상태인 것들도 계속 쌓여가는 실정이다. 환장한다.


그래서 결국 나는 집으로 '일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늦은 밤에 못다 한 일을 처리한다.


5시에서 단 5분도 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정시 퇴근을 하고 나오지만, 당일 끝내야 하는 일을 마치지 않으면 기다리는 고객의 불만도 늘어나고 모든 업무들이 지체되기 시작한다. 하여, 일단 집에 와서 6시부터 8시까지 열심히 즐겁게 튼튼이와 놀아주고, 저녁도 먹고 난 뒤, 튼튼이가 잠들고 나면 다시 랩탑을 켠다.


아기가 잠든 9시 정도부터 마무리 못한 일을 두어 시간 따라잡는다.


쌓여있는 메일함의 메일을 확인하고 회신하고, 당일 끝내지 못한 업무를 하고, 5시 퇴근 이후 전화받은 요청 내용들을 처리한다.


늦은 밤, 아주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니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된다. 이렇게나마 일을 정상화시켜놓아야만 마음이 덜 조급하고, 내일 업무가 훨씬 덜 힘들어진다. 이 이유 때문에 무급으로 두어 시간 일을 더하는 것이 조금 억울하긴 하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냥 감사하며 지내기로 했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의 직장을 다니는 것도, 잠시 일을 끊고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점도,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 잔업을 할 수 있는 특성의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도, 모두 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다. 이 중 하나라도 불가능했다면 나는 일과 육아를 둘 다 유지하긴 힘들었을 거거든.


복직 후 내가 (자체적으로 한) 특근만 모아도 한 달치 월급은 나왔을 듯. 주변에서는 적당히 하라는 말도 하는데, 적당히 했다가는 일에서 페이스를 놓치게 되고, 그 무너짐이 가정과 육아에도 영향을 줄 만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한다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되었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나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강한 삶을 위해 하는 것뿐이다.


오늘도 이 글을 쓰고 나면 메일함에 쌓여있는 연락들을 확인해야지 싶다.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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