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선임 Oct 22. 2021

나는야 한의원 VVIP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

아기를 낳는 일은 여자의 온몸을 갈아 넣는 일이다.


준비 없이 찾아온 임산부의 삶에 자유롭지 못하고 점점 더 불편해지는 몸을 보며, 출산하면 해방할 수 있단 마음으로 버텼다. 하지만 웬걸, 아기를 낳으면서 내 예전 몸도 다 사라진 건가?


조리원에서 어색하게 아기를 안으면서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까지 다 결리기 시작했고, 조리원을 퇴소하곤 나서는 밤에도 낮처럼 자지 못하고 두어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면서 온 몸이 녹아내리는 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달력을 보니, 이러다가 금방 복직할 때가 올 것 같아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야 돼!'


그때부터 나는 아기가 잠든 시간이나 짬을 내어서 한의원에 가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다. 기력 회복을 위해 침이나 뜸, 부항 등을 다 맞았다. 그리고 출산 후 먹는 산후보약도 지어먹었다. 무려 반년 동안이나!


유난스럽게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내 주치의 한의사 선생님도 안타까웠는지 한약 한 재를 출산 선물로 그냥 지어주셨다. 또 한 번은 산후보약에 사향을 선물로 넣어주셨다.(사향을 넣은 보약은 비싸다. 많이.)


집에서는 짬을 내어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확실히 몸조리할 때 뼈에 바람이 든다고 외출을 안 했더니 움직일 일도 없었다. (쓰레기 버리러 한 번 도 나간 적이 없음..) 조금씩 움직여가면서 오래된 톱니바퀴에 기름칠하듯 출근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복직을 하니, 더 총체적 난국이다.


안 걷다가 하루 출퇴근하느라 두 시간씩 시간에 쫓기듯 움직이니까 발목과 무릎이 너무 시리다. 분명 한여름인데 차갑고 시리다. 원래도 출산 후라서 빠지던 머리카락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니 한 움큼씩 더 빠진다. 머리 한 번 감고 나면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안 보던 모니터와 랩탑을 보다 보니 눈도 침침하다. 이게 머선일이고..


결국 복직 후에도 산후보약을 지어먹었다. 보약은 너무 먹어서 만성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유난히 몸이 더 축 쳐져서 한의원에 다녀오겠다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 "한의원 VVIP 혜택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이미 보약도 선물 받았지 참.." 그 말에 같이 웃었다.


이제 아기도 9개월 차가 되었고, 내 몸도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확실히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은 전혀 들지 않지만, 여기저기 너무 쑤시던 올여름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 역시 시간이 약인 건가. 이제 거들떠도 안 보던 구두도 '한 번 신고 나가볼까?' 하는 소심한 자신감이 든다. 물론 무릎 아플까봐 신발장에서 꺼내지도 않았지만.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 후 몸조리할 때까지 성심성의껏 진료해주신 한의원 원장님과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부항 하나라도 더 떠주려고 신경 써주신 한의원 실장님과 다른 쌤들도 항상 감사합니다. (무슨 수상소감 같구먼) 남편 말 마따라 그저 환자일 뿐인데 VVIP급으로 대우해주셔서 내원할 때마다 몸도 마음도 치유받았었네요. 이 글을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전 13화 아기를 지키기위해서, 코로나 백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