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에티하드항공
우리 회사는 매 달 하고 싶은 비행을 신청할 수 있는 비딩 시스템이 있다. 플라이두바이나 에미래이츠는 승무원들을 여러 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로테이션식으로 스케줄을 주는 반면,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
안타깝게도 로스터(스케줄) 좋은 애들은 계속 좋고, 안 좋은 애들은 계속 안 좋다. 나는 매 달 신청한 열개의 비행이나 오프 중 1년에 한 다섯 개 정도 받는, 전자보다는 후자인 쪽인데 비행을 오래 했다 보니 스케줄에 미련을 없애려고 (?)하는 편이다.
오늘도 스케줄이 나왔는데, 평소보다 굉장히 바쁜 스케줄이 나왔다. 다행히 올 해는 내가 신청한 날짜에 여름휴가를 받았는데 연차도 시니어리티 순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전 3년은 여름 기간에 휴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올해 겨우 여름휴가를 받았는데 다시 380 크루로 되면서 내년부터 또다시 성수기인 여름 기간엔 연차를 받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 가 되어 버렸다.
승무원마다 자주 받는 스케줄이 있는데 누구는 영국을 자주 가고 누구는 동남아를 자주 가고 누구는 미국을 자주 가고 하는데 나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와 호주를 자주 받는 편이다. 작년 6월에는 로마를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올해도 신청도 안 한 로마 비행이 나와서 여행처럼 다녀올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 나. 마 마음에 들었던 유일한 비행..
이번 이탈리아 로마 비행에서 정말로 불친절한 비즈니스 클래스 동료랑 같이 일을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sorry" "thank you"같은 매직 워드를 하나도 안 쓰는 건 기본이고 표정이 안 좋다 보니 승객들한테 컴플레인을 많이 받아서 나중에 사무장이 피드백 주면서 뭐라고 했을 정도. 사무장이랑 나랑 같은 아시안이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아서 얘기를 계속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저쪽 나라 -루마니아, 벨라루스, 러시아, 몰도바 중 한 곳 출신- 크루들은 의도한 게 아니어도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화법을 쓴다고 말이 나왔다. (이상하게도 같은 동유럽이어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출신 동료들은 성격이 너무 좋다) 물론 그 출신 동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비행에서는 나도 그 동료한테서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그라운드에서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각자 할 일만 했을 정도였다.
로마에서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중에 기체 결함으로 3시간 넘는 시간이 딜레이가 됐다. 연이은 딜레이로 승객도, 승무원도, 지상직도, 파일럿도, 엔지니어도 다 지친 상태. 대부분의 손님들은 커넥션 플라잇이라 다음 비행기를 행여라도 놓칠까 봐 노심초사했고.. 다들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사무장의 허락 하에 딜레이 도중 손님이 달라는 건 웬만해선 다 줬고, 주문받을 때도 손님이랑 얘기를 많이 하려고 했다. 작년에 은퇴한 타 항공사 출신의 이탈리안 기장님, 이탈리아에서 호주로 이민을 가는 국제 커플 가족, 휴가를 보내고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미국 청년, 신혼여행을 보내고 자국으로 돌아가는 에미라티 커플이나 한국인 커플... 손님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중요한 건 좋은 첫인상을 주면 손님들은 내가 비행 도중에 혹시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럽게 넘어가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여유롭고 웃는 모습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어 좋고 손님도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상태니 재촉하지 않아서 좋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급하게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나랑 같이 일한 이 동료는 빨리빨리 하는 거에만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비스를 더 일찍 끝내서 나중엔 도와줬다) 결국엔 커플석에 앉은 손님들은 나한테만 주문할 정도였다. 비행기 조종실을 기준으로 왼쪽에 앉은 손님과 오른쪽에 앉은 손님은 담당 승무원이 다른데 그렇기 때문에 같은 비행기를 탔더라도 경험하게 되는 서비스가 천지 차이일 수 있다.
6시간 정도 걸리는 로마 비행시간을 5시간 정도로 단축해서 생각보다 빨리 아부다비에 도착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승객들이 다음 비행을 탈 수 있었다. 비행에 딜레이가 생기면 승객보다 승무원들이 더 집에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파일럿들은 딜레이 되는 시간 동안은 돈도 못 받는다는 사실.. 알아주시면 좋겠다
부정적인 사람은 자기는 잘 못 느끼지만 남들은 그 기운이 다 느껴진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다른 사람한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보너스며 로스터며 여러 가지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긍정적인 태도가 조금 사라졌던 요즘...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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