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먹밥, 파스타샐러드로 소박한 피크닉과 프로방스 라이프

6/16 일요일 테이블

by 은재

여자들은 불가에서 식구들의 배를 채워 줄 음식을 서둘러 요리했다. 돈이 좀 있는 집은 돼지고기에 감자와 양파를 넣은 요리를 만들었다. 냄비에 구운 비스킷이나 옥수수빵에 그레이비소스로 듬뿍 곁들여 냈다.

_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김승욱, 민음사)




이 말은 꼭 써야겠다. 며칠 전 3대 신문사 중 하나가 이런 기사를 냈다. ‘느닷없는 부산~헬싱키 노선… 국내 항공사들 뿔났다’. 요지는 핀에어가 부산에 북유럽행 직항 노선을 론칭하면서 우리나라 여행객들을 추가로 끌어모은다는 내용이다. 마치 부산 시민들이 인천 공항을 경유하지 않고 직항으로 유럽에 가는 것 자체가 과분하다는 듯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도시는 아직도 너무 부당하게 대접받고 있다.


7월부터 개장하는 광안리 해수욕장에 피크닉을 가기로 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정취를 마지막으로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왜 마지막이냐 하면,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바다는 내가 아는 그 바다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세련된 옷차림과 이국적 억양의 관광객들이 도착하면 부산은 저 먼 나라 같은 인상을 준다. 그전에 초여름의 투박한 바람과 파도를 즐기려고, 가까운 친구들을 모았다.


토요일 오전, 주먹밥과 파스타 샐러드 조물조물

야외 피크닉 메뉴를 선정할 때는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한다. 휴대가 간편한지? 그리고 한입에 먹을 수 있는지? 다른 친구들이 피자와 맥주를 사 오기로 했기 때문에, 친구 H와 내가 간단한 핑거푸드를 만들어 갈 예정이다. H가 푸실리 파스타로 만든 샐러드를, 내가 참치마요 주먹밥을 요리했다.


H는 호주에서 요리전문학교를 졸업한 활기 넘치는 친구. 풍부한 식재료의 나라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지, 사용하는 식재료도 다양하고 이국의 메뉴를 줄줄이 꿰고 있다. 요리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만들어온 푸실리 파스타는 기가 막히는 맛이었고, 옆에서 살살 꾀어내 레시피를 알아냈다.


푸실리 파스타 샐러드

1. 파스타 푸실리면을 포장지에 안내된 시간만큼 충분히 삶고, 시판 바질 페스토를 버무리기

2. 다른 팬에 마늘을 굽다가 쫑쫑 썰은 고추와 올리브 오일 약간에 새우를 볶아 감바스 만들기

3. 삶은 파스타면에 볶은 새우와 삶은 병아리콩, 어린잎채소 등 좋아하는 채소를 듬뿍 버무려 완성



참치마요 주먹밥

1. 아직 뜨거운 밥에 후리가케(ふりかけ), 혹은 김자반을 충분히 넣어 골고루 섞기.

2. 참치에 마요네즈를 버무리되, 마요네즈가 참치에 자작하게 젖을 정도로만 넣기.

3. 1번 밥을 동그랗게 만 뒤 손가락으로 오목한 구멍을 파고, 참치 속을 넣어 단단하게 말기


피크닉 장소까지 이동할 때 흐트러 지지 않게 야무지게 닫아야 한다. 용기는 무거운 유리용기, 플라스틱 용기보다는 일회용 종이 도시락이 좋다. 환경부에서는 추천하지 않겠지만…


토요일 2시, 돗자리와 맥주를 들고 바닷가로

해변에서 피크닉을 할 때는 돗자리를 펼칠 장소 선정이 중요하다. 우선 시끄러운 파도와 너무 가깝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이 노는 곳 근처는 아이들이 놀게 둔다. 상당히 중요한 준비물은 스피커와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이 든 컵. 아이스박스가 번거로울 때 맥주와 같이 사서 두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또 11시에서 1시 사이는 햇볕이 가장 뜨겁기 때문에 2시를 전후로 자리를 펼치면 선선한 바람과 적절한 태양 아래서 태닝 할 수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녹은 치즈를 길게 늘어뜨린 피자를 서둘러 한입 베어 문다. 방금 딴 맥주 캔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등 뒤에 숨겨 모래 탑에 고정시켰다. 일곱 명이 모였는데도 별 말이 없다. 늘어지는 파도를 보며 다이아몬드 다리를 보고 있노라면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맛있는 음식과 곧 식게 될 찹찹함이 남아있는 맥주만 들이켠다.


나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노라면 <이유 없는 방황>의 제임스 딘이라고 되는 것 마냥 지난 이십 대를 돌아보게 된다. 너무 많은 방황, 이유를 알 수 없는 곤혹스러움 때문에 왔던 거리를 다시 걷고는 했다. 그냥 이유 없이 방황하면 되었을 텐데,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방황하는 내 하루에 진저리가 났다. 회복하고 싶어서 더 많은 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토요일 4시, 볼링 한 게임치고 칵테일을 마시러

볼링을 한 게임 치고도 흥이 가시지 않으면 칵테일을 마시러 간다. 석양이 바다 너머로 지고 있었고 어떤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거리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신나는 음악을 좋아해서 펍의 스피커에 더 귀를 기울였지만. 절대 기억하지 못할 희한한 이름의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가까이 다가와 소곤거리는 친구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대도시에 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러 친구들과 몰려다닐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가족과 달리 친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나도 내 가족을 선택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 가족은 핵가족이 아닌 어떤 커뮤니티의 일부였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친구들을 불러놓고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가까운 해변에 소풍 가는 생활. 그게 이 도시의 미래였으면 좋겠다.


At 광안리 킴스볼링앤펍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로 29

At 7번가피자 광안점

부산 수영구 광안로 65

keyword
이전 04화요리 좀 한다는 소문, 밀푀유 나베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