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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Sep 21. 2020

만두박사 학술대회를 가다

물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온라인 학술대회입니다.

("논문을 고쳐서 다시 보내주세요"에서 이어집니다)


"있잖아, 나 연구 결론도 못 내겠고 해서 그냥 APSA 참석 취소할까 하는데."

"너 미쳤어?"


박사과정만 어인 6년, 이제 졸업을 앞둔 친구 (그때는 저와 함께 소새끼 말새끼 하며 하루하루를 회한으로 채우던 박사생이었지만, 지금은 하버드대학 펠로우입니다 ㅎ_ㅎ)는 제 말에 입에 물은 케밥을 내뿜으며 되물었습니다. 그는 박사를 하던 6년 동안 APSA*를 단 한 번밖에 가지 못했으며, 날고기는 연구자들도 우수수 거절당하는 곳에 아무리 끝자락 깍두기 말석이라도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그리고 그런 영광인만큼 별거 없더라도 일단 뻔뻔하게 들이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거기서 뭘 했는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마지막에 남는 건 결국 CV 한 줄이야 임마"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대학원생들은 CV에 경력사항을 남기는 걸까요? 여튼 위와 같이 먹던 음식과 음료를 뿜으며 저를 뜯어말리는 친구들이 수없이 많았던 관계로 저는 학술대회를 끝까지 완주하기로 결심했답니다. 


물론 연회비, 참가비도 미국 달러로 다 낸 후였으니 참석 취소하는 놈이 바보인 상황이긴 했습니다.


* 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의 약자로, 북미 최대 정치학회...라고 합디다. 저는 아직 정치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만, 저명한 학자들도 우수수 떨어지거나, 포스터 세션으로 밀려나는 일이 잦아 발표인으로 참가하기가 매우 힘든 학회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근데 유명세완 다르게 제 동기들 중 올해 학술대회에 발표인으로 참가한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어서(...) 이런 호들갑이 딱히 실감이 나는 건 아닙니다.




만두박사, 정치학 학술대회를 논하다


정치학 학술대회에서 연구자 발표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패널 발표는 딱 이런 느낌. 작년 3월 토론토에서 열린 International Studies Association 콘퍼런스 패널 현장입니다. (SSRC)


1) 패널 발표 (Panel presentation) - 학술 대회하면 딱 떠오르는 그것입니다. 세미나 형식으로 발표자들이 본인들의 연구성과를 콘퍼런스 페이퍼 (Conference paper) 형식으로 먼저 업로드한 후, 관객을 포함한 모두가 그걸 미리 읽었다는 전제하에 10-15분 정도의 발표를 합니다. 그런 발표를 모두 취합해 비평하는 토론자 (Discussant)가 각 발표자들에게 비평, 그리고 보완할 점을 전달한 후, 관객으로부터 질문응답 시간을 가지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콘퍼런스 페이퍼를 원래 내기로 한 내용과 크게 동떨어진 내용으로 올리는가 하면, 아예 올리지 않고 PPT 프레젠테이션으로 때우기도 합니다. 올해 APSA의 경우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그런지 발표자들, 심지어 토론자가 노쇼(!)를 한 패널도 퍽 많았습니다.


포스터 세션은 딱 이런 느낌.


2) 도떼기시장바닥 포스터 발표 (Poster presentation) - 포스터 프레젠테이션은 위와 같이 연구결과를 포스터 형식으로 만들어 설치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질의응답을 자유로이 받으며 응대하는 시스템입니다. 어쩌면 커리어 페어 부스와 비슷한 포맷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학과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학은 왠지 패널로 넣기는 좀 그런데,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긴 좀 아쉬운 것들을 포스터 세션에 몰아넣는 게 아닌가- 싶은 의혹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포스터 발표라고 다 깍두기들만 모아 놓은 건 아니라서... 저와 같이 묶인 포스터 세션에는 이름 한두 번 들어본 저명한 교수님들도 함께 묶여있었습니다. 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학자들도 종종 포스터 세션을 하고, 몹시 진지하게 임한다고 합니다. 

고백건대 저는 한동안 포스터 세션을 얕보고 심지어 하찮게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아주 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뭐라고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아주 감사한 기회를 감히 하찮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제 마음가짐을 다시 올바르게 할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만두박사 (전자) 포스터 발표에 나서다


제 전자 포스터입니다. 이쁘게 토론토 대학교 CI로 깔맞춤 했습니다 ㅎ_ㅎ


저는 이 중 포스터 발표를 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라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 만큼 포스터도 종이가 아닌 전자 포스터(iPoster)를 만들어 포스터 세션 포털에 걸어놓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커피와 함께 하는 자유로운 질의응답은 온라인 채팅으로 변경됐답니다. 여러 날 열심히 일해 포스터를 갈고닦았습니다. 새로운 데이터를 찾아 통계모델도 새로 돌려 몹시 유의미한 트렌드를 발견했습니다. 지난 위크숍때 지적받은 이론적 배경도 좀 더 깔끔하게 다듬었답니다. 


자, 이제 포스터 발표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피드백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학원생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대학원생들은 그저 CV에 경력사항을 남기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아니요, 논문을 써내야 비로소 대학원생이 밥값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전자 포스터는 어떻게든 논문으로 출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엔 여기에 들인 시간이 넘나 아까운 것...


이제 학술대회에 발표를 해 양질(?)의 피드백을 얻었으니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시 원고를 다듬어 논문을 알맞은 저널에 투고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답니다. 저와 함께 이런 상황에 해탈해 함께 낄낄 웃어준 친구 (왜 전에 팀빗 씹던 친구입니다)가 어느 어느 저널에 투고하면 좋겠다며 몇 가지 저널을 추천해 줍니다. 


그 친구가 짜준 작전에 따르면 일단 최상위 티어에 속한 저널에 넣고, 그곳에서 동료평가 피드백을 받아 투고 거절은 덤 원고를 보완하며 저널 티어를 살짝씩 낮춰 성공할 때까지 투고해 보자고 합니다. 퍽 그럴싸한 작전입니다.


만두박사의 원고는 어떻게 될까요? 만두박사는 이 원고를 누군가가 "(만두박사 2020, p.##)"를 달며 인용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요? 조만간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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