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이 쌈, 배드민턴 좀 치나?"
로이따이렝에 용케도 들어온 외국인 연구자가 궁금하다는 남부군 사령부의 저녁식사에 초청받은 어느 날 저녁, 샨주 남부군 최고사령관 짜오 N이 제게 물었습니다. 동석한 사령부 장교들의 '얼른 칠 수 있다고 말해 짜이 쌈' 하는 눈빛에 "넵! 조금 칠 줄 압니다" 대답해버렸습니다. 저는 공원에서 톡톡 쳐본 것 말곤 배드민턴을 제대로 쳐 본 적이 없습니다. 규칙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 내일 얘기도 더 나누고 배드민턴도 칩시다."
국수 그릇은 엎질러졌습니다. 이제 정말 쳐야 합니다. 옆에서 A가 "너가 친다고 한 거다" 하며 웃습니다.
그다음 날, 배드민턴 친선 경기의 날이 밝았습니다. 전투 중에 오른팔을 잃은 N은 배드민턴을 사랑했습니다. 글쓰기부터 식사까지 모든 걸 왼손으로 해결하고 외팔로 능숙하게 배드민턴을 친다는 그를 보며, 인간승리란 저런 걸 보고 말하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사령부 한편에 마련된 배드민턴장에 입성하니 이미 사령부 병사들이 미리 나와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의 유일한 여군 낭 O는 로이따이렝 최고의 배드민턴 선수라고 합니다. 저도 이제 삶에 찌들었는지 왠지 그에게서 배드민턴병(...) 냄새가 납니다.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도 했나 싶어 그런 그에게 말을 붙여보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사회에서 배드민턴 선수를 했나요?"
"허허 전혀요 저도 여기 와서 배웠어요."
듣고 보니 O는 사령부 정보과 소속이었습니다. 영상 촬영, 편집을 맡은 그는 사회에서도 카메라를 꼭 쥔 촬영 전문가였을 겁니다. 여느 군대처럼 샨주 남부군도 지원자(또는 징집병)의 특기대로 병과를 정하거든요. 일생을 사진과 영상에 바친 그가 어쩌다가 그렇게 귀신같이 배드민턴을 잘 치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배드민턴을 전혀 모르는 저도 O가 이 동네 최고의 선수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때까지 샨주 남부군 장병들과 할거 다 했으면서도 그들을 왠지 저와는 조금 결이 다른,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전사이기 전에 유튜브를 보며 낄낄 웃고, 기타도 치고, 사랑도 하고, 까라고 해서 까는(...) 저와 똑같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이 먹고 자고 놀기를 했던 샨주 남부군의 장병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요? 그들에게 평범한 삶은 어떤 걸 의미할까요?
헬멧도 없이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목숨을 건 산골 드라이브 중, 저를 대신해 오토바이를 모는 A의 부관 짜이 M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영어가 유난히 유창해서 인터뷰 등 공식 일정이 생기면 항상 저와 동행했었습니다.
"짜이 M, 있잖아, 여기 사람들에게 혁명이 다 끝나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그는 가파른 산길 올라가는데 무섭게시리 저를 잠깐 쓱 돌아봅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안될게 뭐 있어? 누구든지 꿈이 있으니까."
그날부터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틈이 나면 그들의 꿈을 물어봤습니다. '혁명이 끝나면 뭘 하고 싶어요?'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일이라 그들이 답을 잘해줄 수 있을까, 너무 뜬구름 잡는 무리한 질문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M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끝없는 전쟁을 겪은 샨주의 호랑이들도 모두 꿈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짜이 L, 혁명 다 끝나면 뭘 하고 싶어요?"
짜이 L은 유난히 요리를 잘해 요리 담당을 맡은 병사입니다. 제게 언젠가 곰발바닥 술을 담갔다며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남아 타국에서 일하다가 '야바(미치광이 약)'라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에 손을 댔고, A의 권유로 새로운 삶을 위해 샨주 남부군에 입대했습니다. 지금은 마약은 아예 끊은 지 오래고, 가끔 술만 몇 잔 합니다. L은 평소 말수가 적은 대신, 항상 음악을 끼고 다닙니다. 노래도 아주 잘 부른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거 어떻게 말하더라... 영어를 다 까먹어버려서... 아 맞아, 나는 반지, 목걸이 만드는 세공사 일을 할 거야. 지금 내가 끼고 있는 반지들 다 내가 로이따이렝에서 만든 거야. 이건 루비고, 이건 사파이어... 다 직접 만들었어. 가게를 차려서 내가 만들기도 하고 팔기도 할 거야."
짜이 K는 부서에서 제일 어린 병사입니다. 워낙 일머리가 좋고 배우는 게 빨라 A가 장교후보로 점찍어둔 병사였습니다. 원래 올해 해외 대학교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웬걸, 학교 친구를 데려와 결혼시켜달라고 그렇게 떼를 썼다고 합니다. A는 못 이긴 척 그들을 결혼시켜 주고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지어줬습니다. 기혼자는 부서에서 나가 사는 게 관례라면서요.
일과를 끝내고 L과 함께 나물을 다듬던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짜이 K는 어디서 살고 싶어요? 로이따이렝이 좋아, 아니면 양곤이 좋아?"
"아이고 나는 양곤에서 못살겠어요. 예전에 한번 가 봤는데 양곤에서 살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물가가 너무 비싸잖아. 나는 여기 믕 따이 로이따이렝에서 살 거예요. 산도 좋고,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또 여기는 버마 사람들이 없으니까 해코지당할 염려도 없고. 나는 로이따이렝이 좋아요."
짜이 H는 RCSS의 마약근절국 책임 장교입니다. 그는 저와 함께 차를 마실 때마다 풀뿌리 기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도, 공동체적인 삶,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결별한 자립자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산중에도 맑스주의자가 있었구먼!" 하고 놀리니 당황한 기색이 한가득입니다. "캐나다에선 나 같은 사람을 맑스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어느 날엔 저 보고 좋은 책을 구했다며 아주 훌륭한 맑스주의 역사학자인 홈스봄(...)책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 사람 찐이었구나- 싶습니다. 그런 그에게 물었습니다:
"짜이 H는 혁명이 끝난 후 뭘 하고 싶어요? 이 모든 게 다 끝나면."
"나는 그냥 정글로 들어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 직접 밭농사도 하면서 내가 기른 곡식이며 채소를 따다 먹기도 하고 그렇게 살 거야. 도시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런 곳에서 살 거야. 그게 제일 좋지 않겠어?" 과연 H 다운 아주 아름다운 꿈입니다.
짜이 C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하다 최근에 들어온 병사입니다. 미얀마 혁명과 샨주 혁명에 두 발을 담근 그에게 혁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는 혁명 후 어떤 삶을 그리고 있을까요? 언젠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를 쿡쿡 찔러 물어봤습니다:
"짜이 C, 이 모든 게 다 끝나면 뭐할 거야?"
"끝나기나 할까?" C가 웃으며 되물었습니다.
"에이,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지!"
"하하 아이고... 나는 혁명이 끝난다면 개인투자자로 일하고 싶어. 미얀마 주식 말고 미국 뉴욕증시에서 거래할 거야. 나스닥이랑. 주식 말고도 암호화폐에도 관심이 있고, 부동산, 산림, 광업투자... 분야는 무궁무진해! 투자자로 일하면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고, 저기 태국 디지털 노매드처럼 어디든지 살기 좋은 곳에서 놀러 가듯 일할 수도 있으니까. 아마 키프로스쯤이 좋지 않을까? 거기는 투자자들이 일하기 좋다던데." 한참동엔 제게 꿈을 나눠준 C는 곁에 있던 H와 함께 암호화폐에 대해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 기술 자체는 훌륭하다면서요.
가파른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위, 뭐라도 꽈악 잡으며 흘러내리는 엉덩이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도 모르고 광란의 질주를 하는 M. 그는 원래 미얀마 상위권 대학에서 법학 전공을 하던 친구입니다. 원래 변호사가 꿈이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졸업을 하지 못하고 대신 어렸을 때부터 틈틈이 일을 돕던 RCSS에 입대했습니다. 이제 대학교로 돌아가기엔 자기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한숨을 쉬는 M은 저보다 한 살 아래 동생입니다(...) 그런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M, 이 모든 게 끝나면 뭘 하고 싶어? 혁명이 끝나면 말이야"
짜이 M이 브레이크를 살살 잡으며 웃더니 대답합니다.
"음... 나는 그냥 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운 건 이제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