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박사 Jun 20. 2022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샨주의 비극

제가 로이따이렝에 도착한 후 며칠이 지난날의 일입니다. 한가했던 마을이 조금 더 북적거리고 활기가 돕니다. 동네 분위기가 달라져 주변에 물어보니 샨주 북부에서 북부동맹과 싸우던 여단들이 총퇴각해 휴식과 재보급을 위해 로이따이렝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동부대가 차출돼 북부로 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고 놀지 않으면, 국숫집, 꼬치집에 모여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중 많은 병사들은 제가 지내던 부서에도 찾아와 로이따이렝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원래 전투 보직 병사들은 허가를 받아야 접촉할 수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제게 일러준 주변 상급 장교들이 굳이 제지하지 않습니다. 저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굳이 허가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그들과 어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만, 전투 이야기는 피했습니다. 한 병사가 그저 "지옥"이라 표현한 그 상황을 병사들이 굳이 떠올리지 않았으면 해서요. 그렇게 놀던 중 한 병사가 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통역을 청해 친근하게 물었습니다:


"짜이 쌈, 한국인과 우리는 참 비슷한 거 같지? 우리 둘 다 남북으로 나뉘어서 싸우고 말이야"


"그러게. 사는 모습도, 좋아하는 맛도 비슷하고, 둘로 갈라진 것도 비슷하네"


그리 대답하곤 모인 병사들에게 한국전쟁은 참으로 처절한 전쟁이었다고, 그에 비하면 어쩌면 샨족 사람들은 우리 한국인들보단 심성이 나은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고 부연설명을 해 줬습니다.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서로가 상대편을 지지한다고 믿은 민간인들을 줄을 세워 쏴 죽이고, 마을마다 큰 구덩이가 시체로 가득 찰 정도로 많은 노약자와 아이, 그리고 청년들이 죽었다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죽었어?" 그 말을 듣던 한 병사가 제게 물어봤습니다.


"제대로 된 기록은 없지만.. 보통 2백만에서 3백만 명 사이의 사람이 죽었다고들 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도 요즘 들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어." 그 얘기를 듣곤 동석한 장교가 영어로 말했습니다. "한번 전선이 왔다 갔다 하면 마을 사람들 중에 누가 북군 지지자인지, 남군 지지자인지 솎아내서 심문을 하곤 해. 그리고 상대편에게 정보제공을 한 사람이다, 지지자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거야."


그의 목소리와 눈빛엔 씁쓸함이 묻어났습니다.


"버마 공산당이 한창일 때 그 짓을 참 잘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러고 있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도저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어"


한때 서로 같은 '샨주 군'이라며 RCSS (남군), SSPP (북군) 가리지 않고 입대를 하는 등 분쟁 중에도 일정 부분 낭만적인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로이따이렝에서 본 오늘은 그런 낭만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남군에게 북군은 믿을 수 없는 대상, 또는 눈앞의 이득을 위해 민족과 혁명을 팔아넘긴 사람들로 이야기됐습니다. 


"지들이 병사들 월급을 못 주니까 와족으로부터 마약을 받아다 배낭 가득 채워주고 마을 사람들한테 팔라고 한다지? 우리가 완벽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는 정글에 나가면 싸워 이길 생각만 하지, 주민들에게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한 남군 여단장이 제게 한 말입니다. 샨주 북부에서 격전을 벌이다 후퇴해 자기 여단과 함께 로이따이렝으로 돌아온 그는 북군과의 통합을 간절히 바라지만, 북부동맹으로 인해 와주연합군에 종속된 지금의 북군, 그리고 그런 북군과 수십 년간 갈등해온 남군은 이제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고 얘기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북군이 남군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할 겁니다. 남군과 북군은 서로가 땃마도(미얀마 군부)와 협력해서 전쟁을 치른다며 날 선 비난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일례로 몇 년 전에는 북부동맹이 샨주 남부군이 땃마도의 화력지원을 받아 고지전을 펼치고 있다 비난했는데, 지금은 샨주 남부군이 북부동맹이 땃마도의 지원으로 고속도로망을 통해 중화기를 신속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북부동맹의 TNLA 병사들. 전쟁은 2015년, TNLA가 무제로 향하던 남부군 보급 행렬을 기습하며 시작됐습니다 /Frontier Myanmar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제가 만난 남군 장교들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해 난감해했습니다. 다만 샨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에 큰 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 제게 기회가 되면 북군 인사들도 만나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논문에 적혀야 할 진실은 남, 북군의 입장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겠느냐면서요. 연구자의 눈을 빌려 남, 북군 간의 오해를 풀고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하지만 국수 그릇은 이미 엎어졌고, 그릇 속 국수가락엔 흙이 잔뜩 묻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라" 


언젠가 남아시아에서 수도승을 하다 승복을 벗고 입대한 L이 내무실에 대자로 누워있던 제게 건넨 말입니다. 뜬금없이 말을 꺼낸 것을 보아, 아마 외부인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난 페이스북에 내가 군복 입은 사진도 안 올려. 내가 RCSS에 있는 건 내 제일 친한 친구 몇 명 외엔 아무도 몰라. 우리 가족 전체가 SSPP 지지자야. 북군 본부 근처에 살거든. 내 삼촌은 북군에 입대해서 거기서 일해. 만약 부모님이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게 되시면... 나는 아마 고향에 다시는 못 돌아갈 거야."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비극


그때쯤 만난 T는 최근에 최전방에서 돌아온 소위입니다. 이제 29살이 된 그는 휘하 병사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제가 그를 처음 본 날도 병사들과 함께 고기를 구우며 쌀술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쟤 북군에서 항복해 내려온 애야" 어느 날 A가 알려줬습니다. 호기심이 돋아 쌀술 한 병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봐도 좋다는 그는 자기가 귀순한 경위를 굉장히 솔직하게 얘기해줬습니다.


"저는 거기서 소대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소대장이에요. 북군에 있을 땐 최전방에서 항상 와족 장교들 지휘를 받았습니다. 그들 명령을 받들어 같은 말을 쓰는 샨 형제들을 죽이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곤 통역이 끝나길 기다린 후, 쌀술을 털어 넣고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그 후에 또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쿠데타 일어나고 좀 있다가 미얀마 군부가 북군과 협상을 할 때 일입니다. 제 휘하 병사들이 협상하러 온 땃마도 장교들이 탄 헬기에 대공사격을 했었어요. 협상을 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서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아무도 몰랐습니다. 저도 들은 게 없었어요. 그날, 지휘관들이 내 병사들을 체포해서 땃마도 장교들에게 사과하며 내 병사들을 죽이겠다고 했었습니다. 땃마도 장교들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대신 내 병사들이 피떡이 되도록 매질했습니다." 


그때 T는 다른 민족의 이익을 위해 동족의 목숨을 빼앗는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날로 바로 북군을 나와 남군에 합류했습니다. "상사에게 내 계획을 말씀드리자 '좋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네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네가 굳이 이곳에 있지 않더라도 좋다. 다만 초병들에게 나가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로 바로 정글로 빠져나왔습니다."


남군에서도 북군 형제들을 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이 입에 맴돕니다. 차마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연병장에 도열한 샨주 남부군 병사들


아무리 여러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연합한 '북부동맹'이고, '와족' 병사들이 북군에 대다수 들어왔다지만, 여러 장교들과 병사들이 해 주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남군과 북군이 서로를 죽이려 싸우는 판이 실상에 가까웠습니다. 최전방에서 돌아온 남군 지휘관들은 '와족' 장교들이 아닌 '북군' 장교들의 기동전에 혀를 내둘렀고, 매일같이 죽음의 문턱 앞에 섰던 초급 장교들과 병사들은 '같은 샨족 형제'들을 쏴야 한다는 것에 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진정한 연방제니, 민주주의니 다 아름답고 좋은 목표라 생각해" 언젠가 영어 연습을 하겠다며 다시 찾아온 L이 한 말입니다. 그는 유난히 저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목표는 남군과 북군이 화해하고, 샨주가 하나로 통일하는 거야. 그게 제일 시급한 문제인 것 같아."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제가 물었습니다.


"글쎄. 어려운 문제야. 많이 어려워." L이 답했습니다.


그들은 왜 싸워야 하는 걸까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우리네처럼 그들도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 06화 쿤사: 마약왕, 또는 민족해방 투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