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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Sep 29. 2022

인문학 전공을 게임 캐릭터에 비유하면

던전에 그냥 들어가지 마라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반, 세상이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다음 말처럼.  


"a revolutionary product comes along that changes everything"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혁신적인 제품)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지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해."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 후로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주로 인문계열을 졸업한 내 주위 지인들이 사용하는 말이었는데, 이 말을 하고 나고 난 뒤 "지금이라도 진로를 옮겨야 하나?"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것이 킬포다.

 

'사람이 기술이 있어야 해'라는 말의 그 '기술'이 어떤 기술인지는 대충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대략 뭘 납땜하고 고치고 이런 기술뿐만이 아닌 흔히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이라 불리는 관련 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전문 지식들에 대한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2010년 이후 미국의 인문학 전공자는 그대로인 데 반해 STEM 전공자는 50% 가까이 증가했다. 소프트웨어 기술 중심의 산업과 기업들이 큰 시장 가치를 창출하면서, 노동 시장에서 과학 기술 전공자에 대한 평가가 후해졌고 반면 인문학 전공자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해졌다.


그렇다고 문이과란 틀을 벗어나 우리 모두가 전부 공학을 전공하고 과학을 연구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주어진 탤런트도 다르고 적성도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흥미도 재능도 전혀 없는데 불구하고 STEM이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무작정 이 분야에 도전한다면 인생의 쓴 맛만 맛보고 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사실 이건 이공계에 속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복잡화되면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기술'의 종류가 우선 너무 많아졌다. 인공지능(AI)도 기술이고 석유정제도 기술이며 핵융합발전도 수소자동차도 유전자분석도 반도체도 신소재도 항공우주도 전부 다 기술이다.


또한 배우고 익히는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나만 평생 몇 십년동안 연구해도 모자란다. 때문에 같은 이공계라 할지라도 무엇을 전공하냐에 따라 이후 테크트리가 극명하게 갈린다.


학제간 통합 이슈가 뜨거운 것은 인문계나 이공계나 마찬가지다. 이런 기술들이 전부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고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시켜주지만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건 인문계 뿐만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인문계 졸업자들이 말하는 '기술을 갖고 싶다'라는 것이 지금 당장 반도체 관련 학과에 다시 들어가 졸업을 하고 삼성전자나 TSMC에 입사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실현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 전체에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중요한 기술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 시기에, 문과의 전문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던전에 그냥 들어가려는 문과생들


온라인 게임에서 우리가 현질을 하면서 좋은 아이템을 캐릭터에 착용시키는 것은 그 아이템이 내 캐릭터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고 나중에 강한 몬스터와 만나도 더 잘 싸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템과 능력치가 모자른다 생각하면 레벨을 차근차근히 높이고 레벨업을 해 능력치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높은 레벨은 모든 RPG게임의 목적이자 근본이다. 좋은 아이템도 레벨이 높아야 서로 호응이 맞는다. 그래야 나중에 최종보스를 만나도 게임을 깨고 엔딩을 볼 수 있다..


이공계를 졸업한 사람은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한 신진 용사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기에 열심히 지식을 닦고 연구에 매진하면서 아이템의 착용 효과도 더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인문계는 다르다. 졸업해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아이템이 주어지지 않는다.(일부 자격증은 잠시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아이템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한다? 레벨이라도 빨리 높여야만 한다.


문과생에게 있어 레벨업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은 무엇일까. 많은 수단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외국어요, 그중에서도 '영어'다. 여기서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는 단순한 토익토플 점수가 아니라 외국인들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회화능력을 포함한다.


본인이 인문계를 나왔는데 영어를 등한시한다?
그런데 말로는 '나는 이공계를 못나와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이번 인생은 망했다'라고 노래를 부른다?


영어 실력 없이 문과생이 사회에 나간다는 것은 아이템도 없이 저레벨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힘들게 던전 보내놨더니 잡몹들에게 허무하게 죽으면 얼마나 열받나.


그런데 가상의 게임할때는 그렇게 열받아 하면서 정작 본인의 리얼 인생게임에는 관대하다.


이런곳을 그냥 들어간다고?



영어와 레벨업


사실 귀에 딱지가 생길정도로 많이 들었을 '영어'에 대해 솔직히 나도 진부하고 재미없기 때문에 말하기 싫다. 그래도 어쩌겠나 진짜 중요한데. 도저히 건너 뛸 수가 없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어쩔 수 없다. 영어를 쓰는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미국이 영어를 쓰게 됐고, 그 미국이 지금 세계유일한 패권국가로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나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영어의 중요성은 나라를 불문한다. 일본어나 중국어 제2외국어를 잘해도 좋지만 이것은 우선 영어를 이미 잘한다는 가정하에 더 좋은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이 일본 취업을 해도 영어가 중요하고, 중국에 취업을 해도 영어가 중요하다.


영어를 잘하면 기회가 정말로 많이 열린다. 이 '많이 열린다'는 것은 그냥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취준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좁은 한국만 낑낑 거리며 쳐다볼 때, 영미권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 모든 나라가 그 대상이다. 영국인이면 영국에만 취직하는게 아닌 미국에도, 남아공에도, 호주에도, 홍콩에도 심지어 인도나 필리핀에도 본인만 원하면 나가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정보의 취득성도 압도적으로 많다. 인터넷 문서의 90%가 영어로 쓰여져 있다. 파일럿들이 읽어야 하는 메뉴얼도 다 영어다. 당장 나도 영어를 아예 못했다면 두바이에서 파일럿으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곳 두바이도 아랍어가 주 언어긴 하지만 전에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전례도 있고 사실상 영어가 공용어다.  두바이가 중동의 허브이자 국제도시로 쉽게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적극적인 영어사용이 크게 한몫했다. 아랍어만 쓰였다면 나도 이곳에 못 살았을 것이다.


나는 주위에서 잘 나가는 인문계 엘리트들 치고 영어 못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다. 심지어 이공계를 졸업한 엔지니어들도 잘 나가는 분들은 다 영어를 잘 한다.


그래도 영어는 국제적으로 봤을 때 쉬운 언어에 속한다고 하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좋게 생각하자. 영어는 중국어처럼 성조도 없고, 독일어처럼 남성명사 여성명사가 따로 있고 이에 따라 앞에 붙는 정관사가 다르지도 않다. 다른 언어에 비하면 영어는 불규칙 표현도 굉장히 적은 편이고.


물론 영어만 잘한다고 인생이 막 순탄해지고 각 기업에서 다 모셔갈라고 하며 모든 인생의 고민들이 다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이공계 STEM을 전공한 학생에게 문과생이 비벼보려면 영어라도 '훨씬' 그리고 '압도적으로' 잘해야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영어가 좋은 레벨업 수단이라면 그렇다면 문과생이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정녕 아예 없을까? 물론 그렇진 않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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