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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빤쮸 Jul 17. 2020

0717 _ 회사를 떠나다.

만 20여 년을 함께한 회사라는, 그곳

사실 이 쪽 직업을 시작하고 각 회사를 다닌 내용은 지금 보는 보험료 납입 내역과는 조금 다르다. 서류상으로 보이지 않는 내역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회사에서 일의 시작은 1999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예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었을 때로 대신 인건비를 후하게 쳐주었다. 당시 대학 졸업 전이라 휴학하면서 알바로 시작했던 일치 고는 상당한 급여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99년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해서 2001년까지 일을 하고 2002년에 한 해를 쉬고, 다시 2003년 초반에 복귀해서 정식으로 직장 보험 가입을 한 것이 2004년인 것 같다, 서류상으로는.
그리고 2004년부터는 계약직도 4대 보험을 가입해야 해서 당해는 그렇게 일을 하고 그다음 해, 2005년에 경력직으로 입사를 하게 됐다. 첫 정직원이 된 해였다. 그 당시 인사담당이 초봉을 줄이기 위해 네고하듯 내 경력을 훌렁 날려버렸는데, 그땐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되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기에,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코를 베였다.
다시 서류를 쭈욱 훑어 올라가다 보면, 2012년에 입사한 회사에서 2013년 7월까지 일하고 다음 직장으로 옮기기 전 5개월 정도의 간극이 있는데, 이건 당시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직원들에게 말도 없이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던 결과다. 세상에나. 결국 그렇게 부도덕한(?) 회사를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며칠 안에 옮겼지만 결국 그 보험료를 회사에서 책임지지 않아 내가 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사장은 막내 200만 원 좀 안 되는 월급도 못 주면서 본인은 임패리얼 팰리스 호텔 피트니스 클럽을 다니던 양반으로 지금 같아서는 어떻게든 받아내거나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게 했을 텐데, 역시 앉아서 보기 좋게 당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회사 내에 제안이 있어 투입 인력 경력 증빙을 하기 위한 서류로 저 보험 자격득실 확인내역서를 뗐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회사, 바로 전의 회사 자회사를 만들며 이전한 곳이니 앞에 회사 시작 시점을 본다면, 2015년 5월 18일 시작된 자격은 2020년 7월 상실된다. 앞에 이런저런 일의 시작과 이직 시 불합리한 내용들을 얘기했던 것은 사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회사를 다닌 지 만 20년이라는 것과 이직하면서 짧게는 이틀, 길게는 15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 소요됐다는 점에 새삼 나 자신조차도 놀라서 해본 얘기다. 물론 무서운 카드값도 그 짧은 이직 기간에 보탬이 됐겠지만, 20여 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자기 연민까지는 아니고 어지간히 쉬지도 못했네 정도다.
코로나 시대다. 그리고 늙은 나이에 꾸준히 일했던 것처럼 꾸준히 사랑과 마음을 다해 맺은 생명의 신비한 결실을 다음 달이면 마주하게 된다. 미친 짓 같지만 회사는 이제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아서 어제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니, 생각보다 쉽게 한 가지로 압축될 수도 있겠다. 회사의 특성을 알기에 비난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단 1도 없다. 권한이 없는 무한 책임, 정해진 결과에 강요되는 책임, 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들. 책임으로 시작해서 책임으로 끝나니, 이유는 ‘책임’이라는 단 한 단어인 것 같다.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즐겨 듣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얼마 전 모친상을 겪은 김어준이 모친을 소화하며 이야기한 프로그램 인트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한,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책임을 제대로 질 줄 아는 삶이라면, 뭐 두려울 게 있겠는가?
긴 20여 년의 시간을 회사라는 다양한 조직과 함께 했기에 그리고 배운 것도 많았기에 그간 함께 해왔던 모든 회사에게 졸라 땡큐’

그리고 길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휴식으로 그다음을 준비해야겠다. 나에게 제대로 위로해주고 싶다. 어떻게 제대로 위로해줄 수 있는지, 이번 주까지는 최선을 다해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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