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그저 예쁘기만 한 도시가 아니라고요!
북미 대륙의 서쪽 끝단, 태평양 해안가에 있는 캐나다의 항구도시 밴쿠버. 겨울에도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온화한 기후 때문인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난 캐나다 이주 한인들에게, 캐나다 최대 도시인 동부의 토론토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정착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밴쿠버는 또한 지난 2010년, 한국의 자랑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사상 최초로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 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밴쿠버라는 도시가 한국에도 많이 홍보가 되어, 실제 사이즈나 영향력(?)에 비해 고국에서 북미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시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국의 많은 사람들이 밴쿠버를 대도시로 잘못(?) 알고들 계십니다만, 밴쿠버(City of Vancouver)는 사실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물론 인구수로 따지면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밴쿠버와 그 주변의 여러 지역들을 다 합친 광역 밴쿠버가 그렇다는 것이고, 밴쿠버 시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의 중소도시(?)에 더 가깝습니다.
밴쿠버가 얼마나 작으냐 하면,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66만 2천 명으로 100만은 고사하고 70만도 안됩니다. 인구 940만이 넘는 서울시와는 비교도 안되죠. 서울 송파구의 인구가 65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의 인구만으로도 캐나다 전체에서 8번째로 큰 도시라 하니… 하하. (광역 밴쿠버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260만 명이 조금 넘으니, 서울 인구의 28% 정도 됩니다.)
캐나다는 그래도 땅은 넓지 않냐고요? 네 맞습니다. 광역 밴쿠버의 전체 땅면적은 2,878 km²로 어마무시하게 넓습니다. 하지만 주변 지역을 제외한 밴쿠버 시만의 면적을 살펴보면 겨우 123.63 km² 정도로, 605.23 km² 인 서울시 면적의 1/5 밖에 되지 않습니다. 좀 더 찾아보니 경기도 성남시 보다도 작고, 서울의 서초구, 강남구와 송파구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더군요.
밴쿠버의 경제 규모는 어떨까요? 광역 밴쿠버 전체의 GDP는 2023년 기준으로 1,580억 달러로 캐나다 전체에서 세 번째로 많습니다. 얼핏 보면 꽤 많은 것 같지만 아직은 수도권 전체도 아닌 서울시 단독 GDP의 1/5 수준밖에 안 됩니다. 밴쿠버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에는 무역, 천연자원, 관광업, 건설, 그리고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덕션 산업등이 있습니다. 태평양에 접한 항구라는 특성상 무역업과 천연자원은 여전히 강세이지만 제조업도 거의 없고, 금융업도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캐나다 금융의 중심은 단연코 동부의 토론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밴쿠버가 북미 전체에서 LA와 뉴욕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제작이 이루어지는 도시이며, “북쪽의 할리우드 (Hollywood North)”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이는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주정부의 주도로 할리우드 영화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라고 합니다. 일단 환율 덕분에 미국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을 할 수 있는 데다가, BC 주정부에서 세금 혜택도 주고, 영화 관련 인력도 적극적으로 많이 양성해 놓았기 때문에 언제든 필요한 인력을 쉽게 구할 수도 있으니, 제작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밴쿠버에서는 일 년 내내 곳곳에서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운이 좋으면 할리우드 스타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신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지난 2017년 줄리아 로버츠와 오웬 윌슨이 출연한 영화 “원더 (Wonder)”를 여름 방학 동안 촬영을 해서, 영화 내내 학교의 이곳저곳이 많이 등장해서 아주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아마존을 비롯한 많은 IT 기업들이 밴쿠버에 지사를 내면서 진출하고 있고,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도 밴쿠버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밴쿠버 산업 구조 자체가 지식 산업 위주로 변하면서,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이 보여서 희망적입니다. 캐나다 통계청 자료를 보니, 불과 10년 전인 2014년까지만 해도 BC주의 중위 소득은 캐나다 10개 주 중에서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만, 2021년 자료를 보니 캐나다 10개 주 전체에서, 석유가 나는 부유한 앨버타 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으하하! 신 선생 살아생전에 BC주가 소득으로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 주를 이기는 것을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이민 생활 25년 중에서 아직은 토론토에서 산 기간이 더 길고, 토론토에서의 추억도 애정도 감사할 일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더 아름답고, 춥지 않아서 좋아하는 달리기도 일 년 내내 할 수 있고, 아이들과의 추억이 곳곳에 깃든 밴쿠버가 이제는 더 정이 갑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예쁘기만 한 관광도시가 아닌, 지식 산업의 중심 도시로 진화하고 있는 밴쿠버를 격하게 응원합니다. 우리 밴쿠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