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 Pie Aug 25. 2023

어머니와 묵주

성모님의 선물

정확히 일 년 전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흔들릴 때도 많지만 저는 그래도 좀 더 믿어보렵니다.


August 25, 2022


어머니 건강에 대한 자식들의 염려가 최고조에 이르러 주책없이 눈물만 흐르던 지난 8월 초, 아침 식사를 마치신 어머니가 그 전날밤 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외출을 하시려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 골목에 지붕이 오픈된 형태의(그래서 쉽게 올라탈 수 있는?) 아주 긴 버스(또는 트럭?)가 지나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는, 버스가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보시곤 쫓아 뛰어가셔서 운전기사에게 "다리가 아파서 그러니 나 좀 태워주시오!" 라며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더니, 대뜸 차창을 통해 묵주를 건네주고선 버스를 몰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자리도 많은데 태워주지는 않고 묵주만 던져주고 간 기사를 보며, 그 기사는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하시다가 잠에서 깨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어머니가 쓰시던 묵주를 하나 받아서 앞으로 그걸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 달라고 했죠. 어머니가 쓰시던 묵주가 여러 개 있기는 한데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없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커서 휴대가 불편하고, 어떤 것은 너무 오래 써서 실밥이 거의 풀려있거나 묵주알이 몇 개 빠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너무 여성스러운(?) 디자인이라서 마음에 안 들더군요. 소박하면서 튼튼한 나무 묵주가 신 선생 같은 중년 남자에겐 딱 좋은데 말입니다. (꼭 기도도 안 하는 거뜰이 묵주 탓만… -_-;; ) 그래도 그중 가장 나아 보이는 걸로 하나 가졌는데, 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좀 걸리셨나 봅니다. 그래서 본당 성물 판매소에도 가보셨다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그런지 운영을 안 하고 있더랍니다.


캐나다로 돌아오기 전날, 마지막으로 아이들 데리고 어머니와 식사하는 자리, 가방 속에서 작은 파우치 하나를 발견하신 어머니는

"아참, 오늘 성당에서 은퇴하시는 주임 신부님 이임식이 있었는데 신자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나눠주시더라."

"그게 뭔데요?"

"몰라, 네가 함 열어봐."

그 파우치 속에는 신 선생이 딱 원하던, 디자인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마음에 아주 쏙 드는 나무묵주가 하나 들어있었습니다.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 어머니과 함께 나누는 식탁에서 이렇게 뜻밖의 선물을 받고 나니, 마치 성모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