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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Sep 18. 2023

눈물 콧물 첫 축구 경기

13대 빵이라니!

아내가 드디어 명실상부한 사커맘(Soccer Mom)이 되었습니다. 달리기나 태권도처럼 개인 종목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어쩐지 단체 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아쉬웠던 첫째 요요(가명, 11세)와는 달리 둘째 요둘이(가명, 8세)는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지난여름 어느 날, 녀석이 뜬금없이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녀석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부랴부랴 동네 축구 클럽을 알아보고 등록해서 지난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신 선생이 사는 동네에는 중국인들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삽니다. (10년 전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주할 때 일부러 동양인들이 많은 곳을 찾아서 정착한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 가격과 직장과의 거리등을 고려해서 정하고 나서보니 그렇더군요.) 그래서인지 요둘이가 가입한 축구 클럽에도 주로 아시아계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다들 하나같이 얼굴이며 팔다리가 얇고 하얀 것을 보니 축구는 고사하고 야외 활동 자체를 별로 안 해본 듯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마음이 좀 놓이더군요. 하하. 축구를 처음 배우는 요둘이는 클럽에서 자기 혼자만 제일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요둘이 정도면 기술이나 체력이 아주 양호한 편에 드는 것 같습니다.

Photo by Flying Pie

네, 물론 편견입니다만, 공부 잘하는 서양 아이들이 별로 없듯이, 운동 잘하는 동양 아이들도 별로 없습니다. 하하. 아시아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취미로(만) 시키니까요. 운동을 공부만큼, 때로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서양인들에 비해서, 동양인 부모들은 운동이든 뭐든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시키는 경향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신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보면, 인기가 좋은 미식축구부나 농구부, 축구부, 조정부 같은 팀들은 주로 유럽계 (aka 백인) 아이들로 구성이 되어있고, 그중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도 주로 그렇습니다. 반면 학교 오케스트라나 재즈 밴드, 컴퓨터 코딩이나 로보틱스 같은 클럽에는 주로 아시아계 범생이들이 많이 모이는 걸 보면 누구나 본인이 속한 문화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토요일인 어제, 드디어 다른 클럽과의 첫 리그 경기가 있었습니다. 요둘이의 첫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온 가족이 출동했죠. 상대팀이 도착하기 전, 몸풀기를 하고 자체 연습경기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아직 발기술은 전혀 없지만 셔틀런을 할 때 보니 요둘이의 달리기는 팀 내에서 독보적입니다.

‘오, 우리 집안에서 어떻게 이런 녀석이 나왔지? 동네 사람들, 저기 제일 빠른 아이가 울아들입니다! 으하하하!’ - Photo by Flying Pie

빠른 달리기 덕분인지 처음엔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요둘이도 슬슬 자신감을 갖는 듯 보였습니다. 수비하다 제쳐져도 바로 쫓아가서 과감히 태클도 하고 아주 신이 나 보였습니다.


요둘이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드디어 약속 시간보다 좀 늦게 상대팀이 도착했는데, “우와, 쟤네들은 뭐야?” 싶더군요. 3학년 팀이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다들 우리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강력한 킥이며 능숙하게 볼을 다루는 모습들이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최소한 4-5학년은 되는 아이들 같이 보이길래 우리 팀 코치가 확인을 했는데 3학년 팀이 맞더랍니다. 게다가 대체 어느 동네 팀인지 선수 전원이 이탈리아계 아이들이라더군요. 아이고,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 생애 첫 시합 상대가 이탈리아 팀이라니! 걸음마를 뗄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두세 살이 되면 유아팀에 들어가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는 그 이탈리아 전사들 말입니다. 작고 올망졸망한 우리 팀 아이들을 보다가, 성인처럼 강력한 슛을 쏘아대며 포효하는 상대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을 보는 듯했습니다.

Photo by Flying Pie

결과야 뭐… 10:0 까지 세다가 손가락이 모자라서 포기했습니다. 하하. 이후로도 추가로 몇 골을 더 헌납했으니 아마 최소한 13:0 이상으로 진 것 같습니다. 아직 발기술도 없고, 자신의 포지션이나 전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요둘이는 경기 내내 온 운동장을 휘저으며 공만 쫓아다니다가 지쳐서 교체되어 나왔습니다. 잔뜩 울상이 되어 망연자실 잔여 경기를 지켜봤던 요둘이는 하루 종일 우울해하다가 결국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 품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첫 패배의 아픔을 뼈저리게 맛보았습니다.


혹시나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그만두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녀석이 약이 많이 올랐는지 그만두겠다는 말은 안 하더군요. 요둘이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아빠입장에선 아이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이 주어진 것 같아서 오히려 잘됐습니다. 하하. 그리고 처음 시작을 이렇게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이 겸손하게 했으니, 이제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은 거…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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