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다 보니, 집에서 아이들 수학 교육에 신경을 좀 쓰는 편입니다. 하지만 다음 학년 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선행학습은 제 교육 철학과는 맞지 않아서 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폭넓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주말에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이 도전할 만한 수학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일 년에 한 번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 경시대회 문제들은, 학교에서 하는 사칙연산 위주의 정형화된 문제들과는 달리, 주어진 그림 퍼즐을 풀어내거나, 패턴을 찾아서 예측을 해야 하는 등, 그래도 나름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깊은 사고를 하게끔 도와주는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지난봄, 요요(당시 5학년)와 요둘이(2학년)는 캐나다의 모 기관에서 주최하는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를 했습니다. 요요는 코로나 팬데믹 전에 한번 참가한 경험도 있고 해서 담담했는데, 난생처음 참가하는 요둘이는 그 전날부터 많이 긴장이 되었나 봅니다. 급기야 당일 아침에는 무섭다면서 포기하고 싶다며 눈물까지 보이더군요.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겨우 잘 달래서 데리고 가서 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실력은 학년차를 감안하고 봐도 형인 요요가 조금 나은 편인데, 그날은 요둘이의 컨디션이 좋았는지, 아니면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줬는지, 세상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와버렸습니다!
요둘이가 참가한 2학년 부문은 캐나다 전국에서 수학에서 방귀 좀 뀐다는 아이들 500여 명이 참여했는데, 전국 석차 24위를 해버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밴쿠버 지역 참가자들 중에서는 1등을 하는 바람에 무려 “금메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으니 학교에서는 모르는 일인데, 팔불출 아빠가 참지 못하고 요둘이 담임에게 알리는 바람에, 요둘이는 학교 2학년 전체에서 축하를 받으며 잠시동안이지만 일약 수학천재 스타가 되어 한동안 구름 위를 날아다녔죠. 하하. 아, 오해는 마시길. 저희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다행히 수학을 좋아하고 제법 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수학에 남다른 뛰어난 재능이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교육열 좀 있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간다면 아마 중위권을 겨우 유지할 정도라 생각합니다.
평생에 두 번 있기는 어려울 이런 좋은 결과가 발표된 지난 4월 중순 이후, 요둘이는 목이 빠져라 금메달을 기다리고 있지만 10월이 된 아직도 메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초, 기다리다 못한 아빠가 주최 측에 문의 이메일을 보냈더니, 시상은 지역 사무실 소관이니 그곳에 문의하랍니다. 그래서 지역 사무실을 찾아보니 어떤 학원 같아 보였습니다. (네, 캐나다도 특히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에서는 주로 아시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많은 학원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웹페이지에 전화번호도 없고, 비공개 게시판을 이용해서 문의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었는데… 내용이 구질구질하니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일단 답장을 잘 안 해주더군요. 한참만에 겨우 연락이 닿아서 아이 성적을 인증하고, 주소를 보내줄 때만 해도 늦어도 1주일이면 메달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배송 주소를 묻는 이메일에 답장을 안 했답니다. 혹시나 해서 지메일을 샅샅이 다시 훑었지만 주소를 묻는 그런 메일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메일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쪽에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잖아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니 별 문제 삼지 않고 빨리 보내달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못 받았습니다. 학기 초라 학원이 바쁘답니다.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고…) 시간이 좀 필요하다 해서 기다리면 아무 연락도 없이 또 열흘이 훌쩍 지나갑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성적 확인 했으면 그냥 인증서와 기념품 메달 하나 보내주면 되는데… 이게 이렇게 심각하고 오래 걸릴 일인지… 너무 화가 나서 앞으로 주관 단체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그 단체 페이스 북 페이지에, 그리고 해당 학원의 구글 리뷰에도 이 사실을 올리겠다고 하니까 비로소 일요일인데도 변명으로 일관한 답장이 옵니다.
보나 마나 조악한 수준의 장난감 같은 메달일 텐데… 아마 제 일 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평소 감정 소모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김종국 근손실만큼이나 싫어하는 신 선생은 웬만하면 싸우지 않고 피하는 편인데, 아이가 실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번만은 좋은 게 좋은 걸로 넘어가 지지가 않습니다. 아, 정말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이런 아드레날린 러쉬!
활활 타오르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나가서 숨이 꼴딱 넘어가도록 한참을 달리고 왔더니 조금 살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 요둘이가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메달을 받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