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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19. 2016

한 지붕 세 연인

41-도라 캐링턴

도라 캐링턴, 리톤 스트래치, 1916

일에 열중하는 모습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도라 캐링턴은 그림의 모델인 리톤 스트래치를 사랑하였다. 리톤 스트래치는 비평가이자 전기작가였으므로, 책을 읽고 쓰는 것은 그의 일이다. 연인이 누워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으니 그녀의 눈에는 한껏 사랑스러웠으리라.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려고 이렇게 화폭에 담았다.


이들은 20세기초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분방했던 지식인 커뮤니티였던 불룸즈버리 그룹의 멤버였다.  캐링턴이  버지니아 울프의 애쉬햄하우스에서 그녀와 함께 지낼 때 처음 서로 만났다. 이들은 13살 나이 차이가 났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들 관계의 시작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 스트래치가 캐링턴이 마음에 들어 기습키스를 시도했고, 그림에서도 인상적으로 보이는 그의 수염 감촉에 놀란 그녀가 그날밤 그 보복으로 수염을 자르려고 몰래 잠자는 그의 침대에 기어올라 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뜨는 바람에 그만 마주친 그의 눈동자에 반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1917년부터 스트래치가 죽을 때까지 쭉 함께 살았다.


하지만 캐링턴은 1921년 그가 아닌 랄프 패트리지와 결혼하였다. 스트래치가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패트리지와의 결혼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들간의 삼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서 이루어졌다. 스트래치는 동성애자로서 성적으로 패트리지를 비롯해 다른 젊은 남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다. 결국 캐링턴은 이들 두 남자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 수밖에 없었다. 스트래치와는 이른바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면서. 심지어 그녀는 신혼여행을 가서도 스트래치에게 편지를 보내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토로하였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캐링턴>이라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캐링턴 역시 성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구가하여 종종 다른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성들과 어울렸다. 20세기초에 이들의 애정 행각은 지금 접해도 당혹스럽다. 문화예술을 창작하는 이들의 창조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도 범속하지 않은 비범함이 필요한가 보다.


리톤 스트래치는 그동안 영웅숭배적 접근을 보여 왔던 전기문학에서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한 사실주의적 기술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1932년 51세에 위암으로 사망하였으며, 캐링턴은  스트래치가 죽자 두 달 후에 자살함으로써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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