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쿠즈마 페트로프 보드킨
여느 가정집 모습이다. 가운데 서있는 여자 아이는 다소 놀란 모습으로 경직되어 있고, 딸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두 팔로 감싸안은 어머니도 경계하는 눈빛을 옆으로 돌리고 있다. 여인의 시선이 가닿는 곳은 남편이다. 남편은 창가에 붙어서 창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 뒷모습이다. 창밖이 어둡고 방안 불빛이 반사되어 눈을 창에 바짝 대고 손을 모아 반사빛을 차단시키며 밖을 내다보고 있다. 중앙의 벽시계로는 밤 9시 반을 넘긴 시각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화가가 러시아 출신이고 작품 제작년도가 1934년인 것으로 보아 그 무렵의 시대적 상황은 스탈린 집권기의 한창 폭압적인 철권정치가 자행되던 시절이다. 제목이 경고(Alarm)이다. 비밀경찰이 출동이라도 했나. 무언가 바깥 동정이 심상치 않은 상황인 듯하다. 당시의 정세는 내무인민위원부 산하의 별동단이 사회적 위험 분자로 인정한 사람을 법적 절차도 없이 임의로 체포해서 최고 5년까지 구속하거나 강제 노역장에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구속되었거나 강제 노역장에 보내진 사람은 재판도 청구하지 못하였고, 1920년대 말기와 1930년대 말기까지 강제 노역장에 끌려간 사람 규모가 350만 명에서 1,250만 명 사이에 이르렀다 한다. 무시무시한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린 아이는 아기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우리도 한때 그 비슷한 폭압적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평범한 가정의 실내 정경인듯 보이지만 당시의 불안과 공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페트로프 보드킨(Kuzma Petrov-Vodkin: 1878-1939)은 러시아 흐발린스크 태생으로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나 지역유지의 후원으로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다. 모스크바 미술조각건축학교로 옮겨 그곳에서 발렌틴 세로프나 아이작 레비탄, 콘스탄틴 코로프 밑에서 수학하였다. 초기에 데생에서 구면체 접근법을 보여 주기도 하고, 중간에 이콘화에서 사용되던 비잔틴풍의 작품도 있지만, 사회체제 변화와 함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가하였다. 1932년에 기존의 다양한 예술가단체를 통합한 레닌그라드예술가동맹의 초대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붉은 말 목욕시키기> 등이 있다. 말년에는 저작 활동까지도 하였다. 사후 1960년말까지 거의 잊혀졌다가 1970년대부터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상트뻬쩨르부르그 러시아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상설전시하는 전시실을 만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