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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10. 2016

한순간에 삶이 무너질 때

42 - 보테로

페르난도 보테로, <지진>, 2000, 캔버스에 유채, 195 x 127cm

자연재해는 무섭다. 인간의 교만함을 일순간에 깨우치도록 만든다. 태풍이나 홍수,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등이 갑자기 발생하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미리 예보를 하기도 하고 사전에 방재 준비도 하지만 예고없이 들이닥치는 재해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


보테로의 <지진>은 그가 68세 무렵에 제작한 것이다. 같은 제목의 그림 한 점이 더 있는데 그것은 1년전인 1999년에 그린 것이다.  1999년 1월 보테로의 고국 콜럼비아에서는 큰 지진이 나 수 천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같은 재해 상황이 노구의 화가에게도 영향을 주어, 두 점의 작품을 그리게 만들었다. 지진의 참상을 화폭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보테로 화풍의 특성으로 참혹함이 어느 정도 중화되었다. 그렇다고 특유의 유머러스한 유쾌함이 유지되고 있지는 않다.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바위나 목재, 기왓장 들이 와르르 떨어져 내리는 순간을 포착하였다. 건물들이 좌우로 흔들리고, 조각나서 무너지는 교회 건물 상부의 요동치는 종이 위급함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한 건물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여인이 창으로 몸을 내밀어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옆 건물의 시계 바늘과 검은 하늘로 보아 이 참사는 한밤중에 일어난 모양이다.


보테로의 그림은 창의 용도 중 하나로 창이 구조요청을 보내는 통로로도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내 삶이 흔들릴 때 도움을 달라고 청할 데는 있는지. 한순간에 삶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갑자기 더 이상 상상하기 싫어진다. 다만 그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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