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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Oct 18. 2016

내밀한 영원

75-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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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목욕통, 1886, 종이에 파스텔, 70 x 70 cm,  힐스테드 미술관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린 드가의 누드 그림은 마치 남의 욕실을 몰래 훔쳐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준다.  낮은 목욕통 안에 들어가 씻고 있는 여인이 몸을 구부려 손에 쥔 수건으로 목욕통 안의 물을 적시고 있는 순간을 그렸다. 왼쪽 상단으로 커튼이 보이고  그 사이 가운데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다. 이 작품은 드가가 1886년 제8차이자 마지막인 인상주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제작한 일련의 누드 연작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드가의 목욕하는 여인 누드화는 창으로 들여다 보는 구도는 아니다. 일부 그림들에서 화면에 창이 보이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잘려 있거나 하단으로만 보이는 주변적 구성요소로 등장한다. 그의 그림에서 창은 잘해야 빛이 들어오는 광원으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관객의 시선은 창을 들여다 보거나 엿보는 시선이 아니라 화가와 마찬가지로 이미 욕실 안에 들어와 있다. 창문을 투과한 빛이 여인의 구부린 등에 반사되어 관객의 눈을 찌른다.


    목욕하는 여인들은 화가나 관객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아무런 꺼리낌없이 목욕을 하거나 다 마친 다음 닦고 말리는 동작들을 우아하지 못한 자세까지도 포함하여 다양하게 취하고 있다. 아무런 감정이입 없이 여인들을 대상화하여 그린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적 품위가 결여된 동물적 묘사에 가까운 표현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드가의 여성혐오 성향까지도 거론한다.어쨌거나 그림의 시선은 드가 자신이 말하였듯이  "누군가 열쇠구멍으로 들여다 보는 것같이" 내밀한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이제 영원이 되었다.


    드가에게 누드는 초기 작품에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서 중심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어쩌면 무희나 도시생활을 다룬 소재들보다도 그런 측면이 더 강할지 모른다. 누드는 드가의 50여년 가까운 화업 평생 동안 새로운 생각들을 시험하고 화풍을 발전시키는 데 주요하게 쓰인 장르였다. 특별히 드가는 드로잉이나 유화에 덧붙여 파스텔화를 좋아하였다.  이는 파스텔이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고 마르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였다. 누드 연작들이 대부분 파스텔로 그려진 것은 이처럼 여인들이 목욕하거나 목욕하고 나서 취하는 다양한 동작들의 순간들을 바로 그려내는 데 이만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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