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뷔야르
널직한 야외 테라스에서 한 여인이 의자에 편안히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나무 숲이 무성한 바깥 풍광이 여유로운 정경을 만들고 있다. 책을 보고 있는 여인은 프랑스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뷔야르의 그림을 판매해 주던 화상 조스 헤셀의 부인 루시이다. 뷔야르는 헤셀 부부의 집을 가끔 방문하였다. 그림에 나오는 집은 조스 헤셀이 세잔의 그림을 사는 과정에서 클로 세잔의 집을 매입한 것이다. 거기에서 뷔야르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런 과정에서 제작되었다. 뷔야르는 여기에서도 그렇지만 종종 인물보다는 다채로운 색상의 현란한 배경을 더 중요하게 다루곤 하였다.
뷔야르가 루시 헤셀을 그린 그림은 이것 말고도 아주 많다. 예컨대 쇼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숄을 두른 모습, 저녁 방 안에 있는 모습, 살롱에 있는 모습, 집안에서 책을 읽는 모습, 해변에서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 20여 개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이들 헤셀 부부를 같이 그린 그림도 있다. <작은 방의 조스와 루시 헤셀>이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화상의 방답게 배경의 벽에 여러 개의 그림 액자들이 촘촘히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0여 년에 가까울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화가와 화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들 관계가 돈독한 측면도 있겠지만, 화가의 그림이 필요한 화상 입장에서 별도의 모델을 구할 필요없이 가족을 통해 바로 그림 제작을 요구하고 화가도 이를 간편하게 수용한 결과로도 보인다.
그래도 거래하는 화상 부인의 인물화를 이렇게까지 많이 그리는 것은 조금 예외적이다. 뷔야르가 그린 인물들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초기에는 가족이나 친구, 주위 예술가 들 위주로 그렸다가 중간에는 아내 미시아를 비롯한 뮤즈가 등장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새로운 후원자로서 베르네임 죄느 화랑과 연결되면서 화랑의 선임 파트너였던 조스 헤셀의 아내 루시가 그림의 중심 모델이 된다. 그녀는 뷔야르의 지지자이자 친밀한 친구 사이를 뛰어넘어 연인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