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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래빗 Apr 10. 2023

끈끈한 모임, 감동의 선물

나의 퇴사일기, D+56

회사 다닐 때 매주 한 번씩 점심을 같이 먹는 계모임이 있었다.

한국인은 밥 먹으면서 서로 친해지는 것이 국룰인데 코로나19 이후로 사람들이 각자 점심을 먹는 문화가 생긴 탓에 인간관계가 약간 단절됨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나에게 그나마 사회성을 유지시켜준 아주 고마운 모임이었다.


나는 퇴사를 했지만 이 모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과는 단순히 회사 사람이라는 관계를 넘은, 약간은 친구같기도 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두 번째로 참석하는 모임이었다. 퇴사한 직후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오느라 그간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지난주부터 다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마침 육아휴직 중인 친한 언니도 나온다고 해서 스페인에서 산 소소한 기념품을 들고 모임에 나섰다. 날씨도 무척이나 포근해서 바깥 나들이를 하기 좋은 타이밍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모임 장소는 당연하게도 회사 근처였는데, 나 빼고는 모두 회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가는 길이 꽤나 어색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 같은 느낌도 났다.


매일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회사를 출근했던 걸까. 매일 이 출근길을 오르며 묵묵히 회사생활을 잘 버텨줬던 나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일찍 집을 나선 탓에 점심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먼저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점심을 먹으러 나선 회사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기분이 좋은걸까, 아니면 날씨 때문일까. 사람들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보였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이런 생활을 했는데…’


점심 메뉴는 샐러드와 파스타.


집에 있으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도 간단한 요리 아닌 요리를 해서 먹는데, 오늘은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으면서 한편으론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자주 약속을 잡고 구내식당 대신 밖에서 많이 사 먹었는데, 회사를 그만둔 그 두 달 사이에 바깥에서 먹는 음식이 낯설어졌다.


늘상 있던 일이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밥을 먹는데 언니가 선물이라며 쇼핑백 한 꾸러미를 나에게 건넸다. 왠지 지금 이 선물을 풀어보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것 같은 아주 쎄한(?) 느낌이 들었지만, 모두들 올망졸망한 눈으로 선물을 뜯었을 때의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얼른 쇼핑백에서 박스를 꺼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박스를 보자마자 뭔가 울컥하였다. 

박스에는 ‘Doby is free.’라는 문구와 함께 도비가 그려져 있었다.


박스에 있는 스티커가 귀엽다 :)


해리포터를 본 사람들은 다 겠지만 도비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요정이다. 도비는 원래 말포이 가문의 집요정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편에서 해리에게 도움을 주고, 해리가 꾀를 부려 말포이 가문에게서 도비를 해방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TMI : 난 해리포터 팬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신나게 글을 쓰고 있다.)


‘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보니 한편으로는 귀엽고 웃기면서 동시에 내가 진짜 퇴사한게 맞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박스 안에는 예쁘게 돌돌 말려있는 수건 3장이 놓여 있었고, 수건에는 각각 모임 이름과 함께 아래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OO이는 자유예요.’

‘OO이는 다 계획이 있구나!’

‘OO아 꽃길만 걷자!’


회사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있어도 거의 눈물을 보인 적 없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보통 일로 만난 사이는 일이 끝나면 관계도 단절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이상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닌 나에게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나의 앞날에 성공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이라니.

정말 고마운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10년의 회사생활에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소중하고 끈끈한 관계를 얻었으니 말이다.


밥을 먹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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