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D-118
회사에 입사한 지 만 10년이 넘었지만, 그간 무슨 의미있는 일을 했을까 고민해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 삶에는 특별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
매일 아침 콩나물 시루에 들어있는 콩나물같이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하철을 타고, 직장인 필수템인 카페인이 듬뿍 담긴 커피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면서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고, 나른하지만 바쁜 오후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 된다.
퇴근해서는 낮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TV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본다. 이런 반복적인 삶을 사는게 지루하고 싫으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쩌다 한 번씩 작고 소중한 내 연차를 쓸 때면, 쉬는게 좋으면서도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회색빛같이 무미건조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에 나도 물들어 버렸나보다.
퇴사 시점을 정해놓은 지금, 싫지만 익숙해졌던 것들을 보내준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금액은 적지만 안정적으로 생기던 수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에 대한 당위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부모님, 친구 등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당연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조직에 얽매여있는 것이 싫으면서도 동시에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큰 안정감을 느껴왔던 것 같기도 하다.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 조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진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홀로 서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두려운 감정과 동시에 나는 요즘 내 인생 제2막을 설계하며 행복한 기분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회사를 퇴사하면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돌보지 못했지만 별탈 없이(?) 회사를 다니게 해준 내 고마움 몸뚱아리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고, 가끔씩 끄적였던 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려보고 싶다.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실행해가는 즐거움도 맛보고 싶고, 세계 방방곡곡 내가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을 만끽하는 시간도 갖고 싶다. 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공부도 하고싶다. 하고 싶었던 걸 하나 하나씩 할 계획을 짜는 지금 심장이 몽글몽글 기분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