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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8

설날, 시가에서 얻은 깨달음

by Flying Shrimpy
단상이 짧은 생각(短想)이 아니라 끊어진 생각(斷想)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말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뜻이다.


얼마 전, 2025년 새해 다짐에 관한 짧은 글을 썼다(2025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사실 공개된 공간이라 쓰지 못한 작은 다짐이 하나 더 있었다.

'남편의 가족을 이유 없이 미워하지 않을 것.'


나는 (어머님의 표현에 의하면) 차가운 며느리다.

시부모님께 깍듯하지만, 다정하진 않다. 자주 보지 못하는 시누이 분들과는 더 데면데면하다.


그렇게 지내온 데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같은 말과 행동도 시부모님이나 시누이가 하면 이상하게 내 원가족, 나아가 남이 하는 것보다 더 미울 때가 많았다.

둘째, 신혼 초반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한 것이 이어지다 보니 습관이 된 것.

결혼과 동시에 시가가 내 가족의 범위에 들어오면서 인지 부조화가 왔다. 내 부모님과도 바빠서 잘 못 만나는데 그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서 생판 남이던 분들의 생신과 각종 집안 행사를 챙기라고...? 명절 연휴마다 만나야 한다고...? 전화도 주기적으로 드리라고...?

이런저런 며느리의 도리를 요구하시는 시부모님과, 그런 것은 구구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하지 않으려는 나 사이에 한동안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선을 그어야 시간이 지나면 그 중간 어느 즈음에서 타협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했고, 그게 몇 년 이어지니 습관이 되어 마음속에 이미 벽이 생겨버렸다.


그러다 오늘, 아기가 태어난 후 첫 설을 맞았다.


그 사이 시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남편 외에도 아기라는 교집합이 추가로 생겼다. 우리 모두 아기의 건강과 무탈을 바라고, 아기의 재롱에 기뻐하면서, 아기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공감했다.

내가 경찰조사 등으로 퇴근이 늦어졌을 때 시부모님께 SOS를 쳐서 급히 육아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도 분명히 두 분의 언행은 그대로인데, 이제 그게 그렇게 밉지 않았다.

고성 -> 두 분 연세되면 귀가 잘 안 들린다던데 그럼 자연스럽게 자기 목소리도 커질 수 있지.

아들 자랑 -> 자기가 돈 열심히 벌테니 쉬고 싶은 만큼 쉬라고 해준 우리 남편, 잘나긴 했지.

트로트 사랑 -> 두 분 집인데 두 분 취향에 맞는 음악 듣는 게 맞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자 잠시 흠칫했다가, 헛웃음이 났다.

그래, 내 마음가짐만 바꾸면 되는 것인데.

그동안 나, 섀도우 복싱(Shadow Boxing)하고 있었던 걸까.




유독 마음이 힘든 날마다 다이어리에 "모든 것은 내 마음에 있다."라는 글을 반복해서 썼는데, 정작 그 뜻은 잘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늦게나마 알아차렸으니, 새해에는 시가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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