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앙마이, 무해한 풍경

아이들과 함께한 순간

by Flying Shrimpy


지난 1월, 치앙마이로 혼자 1주일 간 여행을 다녀왔다.


퇴사 전후 몸과 마음 건강이 좋지 않아 양가 부모님과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녀왔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출발하기 직전 일기에는 '오늘도 잠을 거의 못 잤다,' '사라지고 싶다,' '아무도 힘들게 하려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렇게 힘든 걸 보면 다 내 탓이다.'라는 등의 내용 투성이었는데, 치앙마이에서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너무 행복하다는 글로 빽빽했다.


이번에는 코끼리 보호소를 포함한 근교 투어도, 좋아하는 요가도 하지 않았고 그저 먹고, 커피 마시고, 마사지받고, 산책하고, 수공예품을 구경하면서 다녔는데 일주일이 훌쩍 갔다.




특히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눈에 선한 순간은 모두 아이들과 관련된 무해한 풍경이다.


1. Kalm Village 2층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돌~두 돌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 아기가 우다다다 지나갔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 '엄마 아빠는 어디 갔지?'라는 생각이 들어 두리번거렸더니, 저 멀리 다른 벤치에 아기 엄마가 반쯤 누워 햇볕을 쬐면서 느긋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기가 뛰다가 몇 번 넘어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더 놀랄 뿐 아기는 울지도 않고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다.

나라면, 아기가 집 밖 건물에서 뛰다가 넘어지고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 놀고 있는데 주시하지 않고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나도 아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유난 떨지 않고 덤덤하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뛰어넘는 어떤 새로운 경지라, '말로만 듣던 프랑스 육아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아기가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프랑스인 모녀였다).


2. 역시 Kalm Village 근처 골목을 지나가는데, 마침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었는지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 남매가 술래잡기를 하면서 뛰어놀고 있었다. 낯선 외모의 내가 지나가자 둘이서 잠시 나를 중간에 두고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다 둘 중 누나가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 맑으면서도 장난기 어린 눈동자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머쓱하게 웃자 셋이서 동시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고 골목을 나오면서 같이 사진이라도 찍을걸 하고 아쉬웠지만, 그런 장면은 눈과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그 아이들의 부모라면 낯선 외국인과의 셀피가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아, 프랑스 육아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아기를 낳기 전에는 딩크도 고려할 만큼, 아이들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나니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생동감, 태어나 처음 보는 것에 경탄하는 표정 등이 아이의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세상에 대한 해상도가 몇 배는 올라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상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