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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 떡볶이

by 수평선너머

9월 16일로 수술이 하루 미뤄졌다.

하루가 더 생겼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수술 전날 오후 두시 반에서 세시 사이에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연차를 낸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세브란스까지는 차로 한 시간 남짓, 막힐 때는 두 시간이 걸린다. 아내와 나는 조금 이르게 출발하기로 했다. 점심 전에 병원에 도착하고, 인근에서 식사를 마친 뒤, 천천히 입원 수속을 밟기로 했다.


오전 11시

24인치 캐리어와 집에서 쓰던 베개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운전석에 앉았고, 나는 옆자리에 탔다. 차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갈 즈음에 문득 세브란스 병원을 추천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검진 때문에 세브란스 자주 갔었는데, 날 좋을 때는 병원에 일찍 가서 주변을 산책했어. 은마아파트까지 가는 길이 산책하기 꽤 좋아. 아파트 지하상가에 맛집도 많아.’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초가을이었다. 아직 더위가 시원하게 물러서지는 않았지만 제법 걸을 만한 날씨였다. 병원에 도착해 주차를 마친 뒤, 아내와 함께 병원 밖을 나섰다. 은마아파트까지는 걸어서 삼십분 남짓이었고, 입원 전의 마지막 바깥 산책이었다.


나는 오래된 도심의 길을 좋아한다.

사람 둘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고, 전봇대와 가로수가 중간중간 길을 막는 그 불편한 길을 걷노라면 이상하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의 길은 반듯하고 넓다. 전봇대는 보이지 않고 다섯 명은 족히 나란히 걸을 수 있다. 깔끔하고 편안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삭막하고 쓸쓸한 냄새가 난다.


세브란스에서 은마아파트로 이어지는 길은 두 세계의 중간쯤에 있었다. 넓고 깨끗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길가의 가로수는 오래되어 굵었고, 그늘이 길 위로 쏟아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그늘의 느낌도 좋았다.


그 길을 걸으며 평일의 9월을 느꼈다. 학교에서는 지금 새로운 선생님과 아이들의 첫 만남이 이뤄지고 있겠지? 이제 학교 생각은 당분간 내려놓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 생각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천천히 걸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상징하는 이름이자,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재건축의 상징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내 관심은 그런 이야기보다 은마아파트의 지하상가에 있었다.


강남은 계획도시다.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은 있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전통시장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시장을 대신하는 공간이 아파트 지하상가에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은마아파트의 지하상가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4천 세대가 넘는 거대한 단지의 아래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숨어 있다. 생선 가게도 있고, 고기를 파는 정육점도 있다. 갓 부친 전의 고소한 냄새가 뒤섞인 복도와 곳곳에 있는 오래된 간판들까지… 평범한 아파트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뜻밖의 시장이 펼쳐진다고 했다. 그 풍경이 궁금했다.


지하상가를 내려가는 문을 열자, 뜨거운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튀김아저씨’라는 파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름 냄새 사이로 떡볶이의 양념 냄새 그리고 간간이 섞여있는 순대 특유의 냄새가 났다. 냄새만으로도 시장이었다.


떡집, 두부집, 반찬가게가 이어졌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왼편에는 인절미, 꿀송편 같은 떡들이, 오른쪽에는 나물과 연근조림, 생선 조림 같은 반찬들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풍경 속에서 문득 어릴 적 갔던 시장이 떠올랐다.


엄마를 따라 쫓아다니다 먹던 떡볶이도 떠올랐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은 떡볶이와 봉지를 입으로 뜯고 떡을 하나씩 밀어 올려 먹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엄마한테는 아직 갑상선암 걸렸다고 얘기도 못했는데… 괜히 걱정할까 봐 이야기 못했다. 아니, 나 자신을 감당하기도 벅차서였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간판의 돈까스 집과 각종 과일이 진열되어 있는 과일 집, 채소 가게, 생선 가게, 정육점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한 바퀴를 돌아 결국 도착한 곳은 처음 보았던 분식집이었다.


점심으로 떡볶이와 모둠튀김을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가야 비로소 조리가 시작되는 튀김은 추가로 시킬 정도로 바삭하고 맛있었다. 떡볶이는 평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남은 것은 떡볶이였다. 평범하게 맵고 달던 그 맛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입원실은 6인실이었다. 다행히 창가에 배정을 받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보호자 면회가 허가되지 않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인 탓에 아내는 얼마 머무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만했다.


준비해 온 짐을 풀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베개 위에 집에서 따로 챙겨 온 내 베개를 올려놓았다.


창밖 하늘은 맑았다. 맑은 하늘 아래 서울의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적어도 일주일은 보내야 하는구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도 아까 먹었던 떡볶이가 자꾸 떠올랐다. 그뿐만아니라 온갖 떡볶이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시장의 떡볶이, 친구와 자취방에서 배달로 시켜 먹던 즉석 떡볶이, 알바하면서 주방누나한테 배운 해물 떡볶이, 반드시 쿨피스와 먹어야 하는 매운 떡볶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편의점 떡볶이, 술집에서 안주로 먹던 떡볶이 등등


엄마, 학창 시절 친구들, 지나간 연애, 혼자 보냈던 시간들.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며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왔다.


불안했다. 아니 겁이 났다. 입원이라니? 정말로 내가 수술을 받는구나. 갑자기 모든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상하게 죽음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6인실 병동의 위암 환자와 췌장암 환자 등 다른 분들이 들으면 화를 낼 것 같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단어가 맴돌았다.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주변에 이야기했고, 나의 병을 알게 된 이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모두 남을 위한 것이었지, 정작 나는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병실의 불이 꺼지고 낯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낯설었던 공간이 집에서 가져온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니 잊혀졌다. 떠올랐던 떡볶이는 잊혀졌지만 같이 떠올랐던 사람들과의 수많은 순간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다. 그 멈출 줄 모르는 장면들 속에서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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