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11시 정도에 시작할 거 같아요. 오늘 3번째 순서입니다.”
병원에서 잠을 자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온갖 상념으로 복잡한 가운데 겨우 잠에 들면 병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잠이 깼다.
입원 당일 병원에서 일회용 안대와 귀마개를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귀마개를 뚫고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커튼을 통해 개인 공간이 분리되지만 그래도 6인실은 6인실이었다. 커튼 너머로 들리는 코 고는 소리와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밤새 끙끙대는 소리는 병실을 옮길까라는 고민을 던져주었다.
같은 생각이었을까? 대각선 병상의 환자는 아침에 찾아온 간호사에게 2인실 예약을 문의하고 있었다. 2인실이나 1인실로 옮기는 것 마저도 해당 병실이 비어있는 경우만 가능했다. 모든 병실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가운데 7시를 조금 넘은 시간, 11시에 수술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곧 있으면 수술이 시작되는구나.’
“아마 10시 정도 되면 수술실로 오라는 연락이 올 거예요. 환자분은 걸으실 수 있으니까, 보라색 옷 입은 조무사 분 따라서 가시면 됩니다. 압박 스타킹 드릴 건데 수술실 연락 오면 그때 신으세요.”
주말 저녁의 3시간은 매우 빠르게 흐른다. 하지만 이럴 때의 3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유튜브나 웹툰, 넷플릭스 온갖 것을 기웃거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확인해 보니 겨우 10여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결국 찾아보는 것은 네이버의 갑상선암 환자 카페였다.
‘수술 후기’, ‘수술 당일부터 퇴원까지’ 등등 수술과 관련된 글들을 차례차례 읽다 보니 그제야 겨우 1시간 정도가 흘렀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는 연차를 내고 온다고 했었다.
“수술은 열한 시 정도에 할 거 같다고 하네. 한 3-4시간 걸린다고 했던 거 같아.”
“응 좀 일찍 출발해서 같이 있을까?”
“아냐. 어차피 수술 끝나고나 같이 있을 수 있대. 출근 시간에 차 막히니까 점심 먹고 천천히 와.”
“기분은 어때?”
“그냥 뭐 담담하지. 오늘 수술하는구나? 밀렸던 숙제 이제 끝내는구나? 오히려 속 시원해.”
아니었다.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티 낼 수가 없었다. 담담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두려움을 아내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병동을 돌아다녔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이름과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벽면을 지나 탕비실을 보았고, 티비가 있는 휴게실을 보았다. 2인실과 1인실 병실을 열린 문 틈으로 구경하고, 샤워실을 보았다. 복도 끝에 다다라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니 중학교가 있었다. 텅 비어있는 운동장 사이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수많은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수술실로 오라는 시간이 다가왔다.
내 인적사항과 정보가 담긴 투명가방을 든 보라색 옷을 입은 조무사분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술실에 도착하니 수술실 간호사 한 분이 다가와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했다.
“이름이 뭔가요? 생년월일은요? 무슨 수술받으러 오셨어요?”
“네, 000입니다. 00년 00월 00일이요. 갑상선 전절제 수술 하러 왔어요.”
“갑상선 전절제랑 왼쪽 림프절 곽청술도 이야기 들으셨죠?”
“네, 맞아요.”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는 수술 대기실로 안내받아 누웠다. 상의를 탈의하고, 그 위에 탈의한 옷을 덮었다. 수술 대기실은 굉장히 추웠다. 다행히도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일회용 핫팩 이불을 제공했고, 그 온기에 추위를 금방 잊을 수 있었다.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원한 병원이 기독교 재단이라 그런지 성경의 말이 적혀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그 말을 몇 십 번 따라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전신 마취는 처음인데 수술 후에 깨어나는 거겠지?’
‘수술 중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까?’
‘수술은 잘 되는 거겠지? 그래도 갑상선암 수술로 손에 꼽히는 곳인데…’
여러 상념으로 힘들어하는 와중에 한 분이 다가와 조용히 혹시 기도드려도 되냐고 나의 허락을 물으셨다. 수술복을 입은 목사님이셨다. 내 손을 잡아주며 내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한 명 두 명 대기실에 있던 수술침대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누운 채로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그래도 검사하면서 몇 번 봤다고 익숙한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고, 환한 수술 조명 사이로 6-7명의 수술인력이 보였다. 나 하나의 수술을 위해 이렇게 많은 전문 인력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커다란 산소마스크를 쓰고 숨을 몇 번 쉬어보는 사이 나는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입원 병실에서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살았구나. 죽지 않고 살았구나.’
간호사가 와서 아내와 나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3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몸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심호흡하세요. 깊게 후하고 내쉬세요.”
간호사의 말을 따라 하려 했지만 무엇인가 답답했다.
“전신마취하면,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어서 폐가 활동을 안 해요. 심호흡 안 하시면 폐에 물 차고 폐렴 올 수도 있어요. 꼭 하셔야 해요.”
“기침도 하시면 안 돼요. 수술 부위에 출혈 생길 수도 있어요. 정 못 참으시겠으면 손을 목에 살짝 가져다 대고 기침은 부드럽게 하려고 하세요.”
“수술은 잘 됐습니다.”
여러 주의 사항을 들은 끝에야 듣고 싶었던 말이 귀에 남았다. 목에 꽂혀있는 기다란 관과 그 끝에 달린 배액주머니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잘 되었다니 다행스러우면서도 여러 주의 사항에 두려운 감정도 같이 올라왔다.
“목은 좀 어때?”
아내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 목소리… 어떻게 됐을까?’
“나 어떻게 병실로 돌아온 거야?”
“다행이다. 걱정했었는데 목소리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그래? 나는 말할 때 조금 불편하고 살짝 변한 거 같은데?”
“아니야. 내가 들을 때는 괜찮아. 다행이다.”
“보호자 면회는 30분만 가능해요. 그 이후에는 나가셔야 해요.”
이야기 사이로 간호사의 말이 이어졌다. 매정한 간호사의 말에 수술 후의 짧은 소회를 나누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은 제약사항이 많다. 물을 대신 떠주거나 기본적인 간병을 조무사가 해주기에 간병인이 필요 없는 장점이 있지만 면회 제약 등이 있기에 환자와 오랜 시간 함께 있고 싶다면 일반 병동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침대에 앉았다.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창가 자리라는 것이 이럴 때 참 좋다. 생각을 비우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마취 기운이 남아서일까? 몸에서 아픈 신호를 보내는 기관은 없었고, 두터운 밴드로 감싸진 목과 그 옆으로 나온 배액관이 주는 불편함만이 남아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에만 집중하며 몸의 감각을 느끼려고 애썼다.
“식사입니다.”
오후 6시였다. 지난밤 6시 금식 이후 정확히 24시간 만에 밥을 먹는다. 첫 식사의 구성은 알찼다. 이 정도를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알찼는데, 이 정도를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흰쌀죽이 가득 담긴 그릇을 중심으로 가자미 생선찜과 뭇국이 있었으며, 동치미, 연근조림, 이름 모를 채소 찜과 후식으로 바나나까지 있었다.
음식을 받아 막상 입안에 넣으려니 긴장이 되었다. 사실 식도 앞에 존재하는 기관인 갑상선을 제거한 것일 뿐이지 식도는 그대로일 것이다. 음식은 그 식도를 통과할 뿐이지 외부의 상처는 음식을 먹는 것에는 어떤 지장도 없을 것이다라는 사고과정을 돌리지만 왠지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 것이 두렵다.
숟가락을 들었다. 손 끝이 살짝 떨렸다. 기분 탓인지 숟가락에 담긴 죽에서 하얀 김이 희미하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입으로 가져가 삼켰다. 목 안쪽이 살짝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맛이었다. 뜨겁지도 않았고, 짜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맛있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그런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죽이 목구멍을 통과해서 위장으로 내려가는 순간 내 몸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살았구나. 정말로 살았구나’
죽을 반쯤 비웠을 때야 비로소 다른 반찬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담백한 작은 흰 살 조각, 물컹한 이름 모를 나물과 새콤한 동치미를 하나하나 천천히 먹었다. 연금조림은 조금 달았다. 부드러운 음식들 가운데 단단한 연금조림을 씹는 행위가 조금 어색했다.
‘먹는다.’는 행위를 이렇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행한 적이 있었던가? 입에서 목으로 식도로 위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가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질 줄을 그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죽 한 그릇을 박박 긁어먹었고… 깊게 심호흡하는 것을 멈추었으며, 그제야 내 모습을 천천히 살펴볼 용기가 생겼다. 환자복을 입고 목에는 두꺼운 밴드가 붙어있으며, 그 옆에는 기다란 관이 꽂혀있는 기괴한 모습의 내가… 그래도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