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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의 병원생활, 구원자는 커피였다.

무지방식 5일째 아침, 밥을 받는 순간 미쳐버릴 것 같았다.

by 수평선너머

커피였다. 생뚱맞지만 커피였다. 10일의 병원 생활 동안 나를 구원한 건 단언컨대 커피였다.



수술 다음날부터 나는 활발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걷는 데 무리는 없었으며, 말하는 데도 큰 지장은 없었다. 링거를 맞느라 링거대를 질질 끌어야 했고, 목소리는 작은 소리로 조금만 길게 말을 해도 금세 잠겼지만 그 정도면 꽤 양호한 편이었다.


내 앞에는 위를 절반이나 제거한 60대 위암 환자가, 옆에는 재발로 2번째 수술을 받는 30대 췌장암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들보다는 내 상황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뭐지. 타인의 불행에 위로를 느낀 건가? 그 순간 스스로가 조금 싫어졌다. 병원은 사람을 참 좀스럽게 만든다.


아침 7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갑상선호르몬 약을 먹었다. 뭐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게 이 병원에서 많은 지 모르겠다. 7시 30분을 조금 넘어가는 시간 아침밥이 나왔다. 조무사분이 내 침대 위 간이 테이블로 밥을 가져다주셨다.


흰밥, 감잣국, 고기와 파프리카 볶음, 흰 살 생선, 콩나물 무침, 김치와 단호박 샐러드가 나왔다. 생각보다 정갈해 보이는 밥상에 기대를 품고 밥을 먹었다.



놀랍게도 맛있었다! 병원밥이 맛없다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음식을 하나하나 음미했고, 깔끔히 비워냈다. 단호박 샐러드가 특히 일품이었다. 입안에 넣는 순간 녹았으며,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나는 그날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맛있게 먹었고, 어마무시한 양의 약도 잘 먹었다. 이대로라면 남은 날들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착각은 이틀도 가지 못했다. 3일째 아침, 처음에는 맛있었던 병원밥이 맛 없어지기 시작했다. 5일째 아침, 밥을 받는 순간부터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내가 받은 식판에는 무지방식 상식이라는 쪽지가 항상 함께 붙어있었다. 그 쪽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이하면 ‘이 환자에게는 지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밥을 줘야 해’였다.


나는 갑상선뿐만 아니라 왼쪽의 림프절을 함께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수술을 받아본 이들은 수술 부위 인근에 관을 꽂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보통의 갑상선 수술보다 큰 규모의 수술을 받았고, 이는 배액관이라 불리는 관을 꽂게 만들었다.


왼쪽 림프절이 제거되면서 내부에 상처가 생겨났다. 상처가 아무는 동안 몸속에서 진물이 나오는데 그 진물을 배액관을 통해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진물이 몸속에 있으면 상처가 아무는 기간이 길어진다. 관을 꽂는것이 내부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내 퇴원일도 배액관을 통해 나오는 진물이 줄어들면 결정된다. 아직은 열심히 배액관을 통해 액이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지방이 포함된 음식이 중요해진다. 림프관 근처에는 입에서 섭취된 지방이 흐르는 지방관이 있다. 보통 갑상선 수술을 하면, 지방관이 미세하게 손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지방을 섭취하게 되면 뿌연 지방이 배액관에 섞여 나온다. 이 또한 내부 상처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방관이 손상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초기 회복기에는 지방 소화 과정이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일정 기간 무지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퇴원 전까지 배액관을 통해 나오는 액체의 양과 색을 관찰하였고, 이런 무지방식은 나를 미치게 했다.


지방의 소중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무지방식 요리는 맛이 있는데 맛이 없다.


병원에 일주일 이상 입원하면서 주간 식단표를 보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다. 저녁 메뉴에 ‘함박스테이크’가 보이는 순간 아침부터 나는 저녁을 기다린다.


그 인고의 시간 끝에 맞이하는 함박스테이크는 맛이 없었다.


다진 고기를 기름에 구워서 나온 형태의 요리를 함박스테이크라고 부르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 단순한 이치가 무지방식을 만나게 되면 바뀌게 된다. 조리방식은 더 이상 구이가 아닌 찜으로 바뀐다. 기름 한 방울 없이 쪄진 고기는 부드럽지만 고소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다 환자식답게 염분까지 적다. 함박스테이크의 탈을 쓴 저염식 다진 고기 찜을 먹으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난 180도의 고온의 기름에 구워진 겉이 바삭하고 탄력 있는 고기를 원한 것이지, 쪄져서 물컹하고 물기가 감도는 이런 고기를 하루 종일 목놓아 기다린 게 아니었다.


‘닭갈비’, ‘떡갈비’, ‘바베큐폭찹’ 등등 이름에 낚여 번번이 기대하고 번번이 실망한다. 무지방 음식을 대관절 어떻게 먹고살라는 것인가?


그렇게 수술받고 5일째의 아침도 무지방식으로 받는 순간 나는 잠시 정신을 놓았다. 그리고 그 정신 놓음이 지금의 글을 만들었다. 내 글 1화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월요일에 입원을 했고, 지금은 다른 월요일이다.’


그 미쳐버릴 것 같은 월요일이 ‘만들어 놓고 2년 동안 잊고 있었던 브런치’에 접속해서 글을 쓰게 만들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자다가도 떠올랐고, 그 음식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5일째 무지방식 식단이 이어지자, 음식을 먹는 재미가 사라졌다. 학교 생활을 할 때도 매달 식단표를 출력해서 교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붙여놓았다. 아침에 등교하면 식단표의 메뉴를 보면서 오전 수업을 버텨냈다. 그렇게 음식을 사랑했는데, 무미건조한 병원 생활은 먹는 재미까지 뺏어가고 있었다.


병원의 무지방, 저염 식단에 먹는 낙이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 '초등학교 교사에 어울리는 자질'이 무엇이 있냐를 생각할 때면 항상 1순위로 꼽는 게 ‘초등학생 입맛’이었다. 꼬마 돈까스와 크림수프, 용가리 치킨을 사랑하는 나에게 심심한 맛의 병원 식단은 너무나 힘들었다. 강하고 자극적인 맛이 그리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어찌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나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 지방을 제한해야 해서 ‘라떼’류는 마시지도 못하고 ‘아메리카노’만 허락받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었다. 좀 더 일찍 묻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월요일 오후, 수술을 담당한 의사의 회진시간이었다.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배액관량이 줄어야 퇴원이 가능할 텐데, 좀처럼 줄지가 않네요. 수요일까지 상황 좀 더 살펴봐야 될 거 같아요. 많이 답답하시죠?”

“아뇨, 괜찮습니다.”

“더 궁금하신 것은 없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아! 혹시 커피 마셔도 되나요?”

“아, 물론이죠. 지방류 없는 아메리카노는 하루 1잔 정도는 괜찮아요.


의사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가디건을 환자복 위에 걸쳐 입고는 병원 내부에 존재하는 투썸플레이스로 달려갔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아니 아메리카노 한 잔 언능 주시오!”

달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고 짜지도 않은 그 쓴맛이 무지방식으로 지친 나를 달래주었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커피 향, 입안에 맴도는 씁쓰레한 그 맛이 내 입안을 황홀하게 만들어주었다.


한 모금, 한 모금을 마시며 눈을 감고 음미했다. 재미를 잃었던 내 입안이 쓴 맛으로 재미를 찾았다. 카페인의 각성이 날 기분 좋게 했던 것일까? 이 상태라면 무지방식을 며칠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안에는 환자복이었지만 가디건을 걸치고 찾아간 카페는 내가 병실에 갇혀있는 환자가 아니라 잠시 외출을 나온 일반인인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커피는 병원에 갇힌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였다. 그날 이후로 아침을 먹고 나면 투썸플레이스로 달려갔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왔다. 그 한잔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를 것이다. 커피는 그때도, 지금도 나를 구원한다. 아프다고 해서 입맛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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